이구수
1. 개요
이구수는 일제강점기 소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고성군 지역구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월북했다. 이후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묘소는 평양시 용성구역 용궁1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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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이씨 -
이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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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이씨 -
이근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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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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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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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경상남도) 출신 -
이희성 (1924년)
이희성(1924년~2022년)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무직공무원으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군수사령부 정보참모, 사단장, 국방부 기획국장, 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중앙정보부 부장서리,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 세력에 협조하여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는 등 신군부 집권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고성군 (경상남도) 출신 -
허문도
허문도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신군부에 발탁되어 언론 통폐합을 주도하고 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2. 생애
소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에서 경상남도 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월북하였다. 월북 이후에는 1956년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59년경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이주하였다. 사후 평양직할시 용성구역의 재북 인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2.1. 초기 생애
최종 학력은 소학교 졸업이다.
2.2. 정치 활동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에서 경상남도 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이후 한국 전쟁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월북했다.
1956년 7월에는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을 지냈으며, 1959년 3월경에는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거처를 옮겼다. 묘소는 평양직할시 용성구역 용궁1동에 있는 재북 인사(납북 및 월북 인사) 묘역에 있다.
2.3. 월북 이후 활동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후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월북했다.
1956년 7월에는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59년 3월경에는 함경북도 무산으로 이주하였다.
2.4. 사망 및 묘소
묘소는 평양시 용성구역 용궁1동에 있는 재북 인사(납북 및 월북 인사) 묘역이다.
4. 관련 사건
1948년 5월 10일 경상남도 고성군 선거구에서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한국 전쟁 중 월북하였다.
4.1. 국회 프락치 사건
1949년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 이후 1956년 7월에는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59년 3월경에는 함경북도 무산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묘소는 평양시 용성구역 용궁1동에 있는 재북 인사(납북 및 월북 인사) 묘역에 있다.
5. 같이 보기
* 대한민국 제헌 국회
* 국회 프락치 사건
* 월북
*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 재북인사의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