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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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동환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었다.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1941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고, 1942년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 대학) 상과를 졸업했다. 체신부 우정국장, 서울특별시 내무국장, 내무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주일본 대한민국 대표부 공사, 주오스트레일리아 대한민국 대사 등을 지냈다. 주일본 대표부 공사 재임 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고, 퇴임 후에는 진해화학 사장, 내외경제 이사, 동아무역 고문 등을 역임했다. 1991년에 사망했다.

이동환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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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1941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고 1942년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 상과를 졸업했다. 해방 후 체신부 우정국장, 1958년 서울특별시 내무국장을 지냈다. 1960년 내무부 차관, 1961년 주일본 대한민국 대표부 공사, 1962년 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1971년 진해화학 사장, 1973년 내외경제 이사, 1990년 동아무역 고문 등을 지냈다. 1991년 사망했다.

2.1.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원산공립상업학교와 경성고등상업학교를 거쳐 1940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1942년 히토쓰바시 대학(도쿄상과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에 들어갔다. 김동조는 경성고등상업학교 동기였다. 조선총독부 강원도와 우편국 등에서 근무했다.

2.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60년 내무부 차관을 역임했다. (1960년 3월 29일 ~ 1960년 8월 26일) 1961년에는 다이헤이 마사요시 내각관방장관이나 고사카 젠타로 외무대신과 동문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주일본 대한민국 대표부 최고 대표·공사를 역임하며, 대학 선배인 아다치 타다시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등과 접촉하여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1962년오스트레일리아 대사를 역임했다.

2.3. 퇴임 이후

1971년 진해화학 사장, 1973년 내외경제 이사를 지냈다. 1990년 동아무역 고문을 역임했다. 1991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