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카와현 제1구
1. 개요
이시카와현 제1구는 1994년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 가나자와시를 지역구로 하는 일본 중의원 소선거구이다. 오쿠다 케이와가 중선거구 시절부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후 그의 아들 오쿠다 켄과 하세 히로시가 자민당과 민주당 후보로 경쟁했다. 2021년 선거에서는 고모리 타쿠로가 당선되었고, 2024년 선거에서는 고모리가 재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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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현의 선거구 -
이시카와현 선거구
이시카와현 선거구는 이시카와현 전 지역을 관할하는 참의원 선거구로, 정원은 2명이며 3년마다 1명을 선출하고, 전통적으로 자민당 지지 기반이 강한 보수 성향을 띠며 2018년 선거구 통폐합 논의가 있었다. -
이시카와현의 선거구 -
이시카와현 제2구
이시카와현 제2구는 고마쓰시, 가가시 등을 포함하는 중의원 소선거구로,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지역구였으나 그의 은퇴 후에는 사사키 하지메 의원이 대표하며, 자민당 강세 지역이지만 최근 야당의 도전 등으로 정치적 역학 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
일본 중의원 선거구 -
에히메현 제2구
에히메현 제2구는 일본 에히메현의 중의원 선거구로, 마쓰야마시 일부, 이마바리시, 도온시, 오치군, 이요군을 포함하며 과거 자유민주당 텃밭이었으나 2024년 총선에서 입헌민주당이 승리하며 변화를 겪었고,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의원이 장기간 당선되었던 지역이다. -
일본 중의원 선거구 -
에히메현 제3구
에히메현 제3구는 일본 에히메현의 중의원 선거구로, 과거에는 에히메현 동부 지역을 관할했으나 선거구 개정 이후 관할 지역이 크게 변경되었고, 정당 간 경쟁이 치열한 지역이다.
2. 지역
3. 역사
중선거구제 시절부터 오쿠다 케이와 의원이 이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다. 1996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에도 오쿠다 케이와 의원이 당선되었으나, 잦은 당적 변경과 모리 요시로의 중앙 정치 영향력 확대로 인해 그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1998년 오쿠다 케이와 의원 사망 후, 아들 오쿠다 켄이 지역구를 이어받았다. 자민당은 하세 히로시를 영입하여 오쿠다 켄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2012년, 2014년, 2017년 총선에서 하세 히로시가 압승하며 자민당의 지지 기반을 굳혔다. 2021년 총선에서는 하세 히로시의 불출마 선언과 함께 자민당 고모리 타쿠로 후보가 당선되었다 . 2024년 총선에서는 고모리 타쿠로가 재선되었으나, 국민민주당 고다케 가이가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다양한 정당이 경쟁하는 구도로 변화했다.
3.1. 오쿠다 가문과 하세 히로시의 경쟁
오쿠다 케이와는 중선거구제 시절부터 중앙 정치에서 활약하며 이시카와현 제1구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당선되었으나, 신진당 해산 등으로 여러 정당을 거치면서, 그리고 중선거구 시절부터의 라이벌이었던 모리 요시로가 중앙에서 존재감을 높이면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1998년 오쿠다 케이와가 사망하자 아들인 오쿠다 켄이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한편 자민당은 모리 요시로의 주도로 지역 출신 프로레슬러이자 참의원 의원이었던 하세 히로시를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부터 옹립했다. 이후 하세 히로시와 오쿠다 켄은 매번 치열한 선거전을 벌였다. 민주당에 대한 강한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하세 히로시가 오쿠다 켄에게 약 5만 2천 표 차이로 크게 이겼다. 2014년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다나카 미에코가 출마했지만 하세 히로시에게 패배했다 . 2017년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하세 히로시가 희망의 당에서 출마한 다나카 미에코에게 큰 차이로 압승했다 .
3.2. 자민당의 우세와 새로운 변화
2010년대 이후, 하세 히로시의 활약으로 이시카와현 제1구는 자민당의 강세 지역이 되었다. 2012년의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하세가 차점자인 오쿠다 켄에게 약 5만 2천 표 차이로 압승하며 비례 부활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2014년의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다나카 미에코가 출마했지만 하세에게 패배했다 . 2017년의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하세가 희망의 당에서 출마한 다나카에게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차이로 압승했다 .
2021년의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하세는 이시카와현 지사 선거 출마 준비를 위해 중의원 선거 불출마를 표명했다 . 자민당은 후계자로 전 대장·재무관료인 고모리 타쿠로를 옹립했고, 야당의 신인 3명을 상대로 완승하여 첫 당선되었다 .
2024년의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후보자 6명의 혼전 속에서 고모리가 승리했지만, 4위로 낙선한 국민민주당의 고다케 가이가 비례대표로 부활했다.
4. 역대 중의원 의원
| 선거명 | 년도 | 당선자 | 정당 | 비고 |
|---|---|---|---|---|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6년 | 오쿠다 케이와 | 신진당 | |
| 제41회 중의원 의원 보궐선거 | 1998년 | 오쿠다 켄 | 민주당 | 오쿠다 케이와의 사망에 따른 보궐선거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0년 | 하세 히로시 | 자유민주당 | |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3년 | 오쿠다 켄 | 민주당 | |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5년 | 하세 히로시 | 자유민주당 | |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9년 | 오쿠다 켄 | 민주당 | |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2년 | 하세 히로시 | 자유민주당 | |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4년 | |||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7년 | |||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1년 | 고모리 타쿠로 | ||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4년 |
5. 역대 선거 결과
중선거구제 시절부터 중앙 정계에서 활약한 오쿠다 케이와가 이 지역구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쿠다 케이와가 당선되었으나, 신진당 해산 등으로 정당을 옮겨다니고, 중선거구 시절부터의 라이벌이었던 모리 요시로가 중앙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영향력이 감소했다. 1998년 오쿠다 케이와가 사망하자, 아들인 오쿠다 켄이 지반을 물려받았다.
자민당은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부터 모리 요시로의 주도로 지역 출신 프로레슬러이자 참의원 의원이었던 하세 히로시를 공천했다. 이후 하세 히로시와 오쿠다 켄 사이에 격렬한 선거전이 매번 펼쳐졌다.
| 선거명 | 년도 | 당선자 | 정당 | 비고 |
|---|---|---|---|---|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6년 | 오쿠다 케이와 | 신진당 | |
| 제41회 중의원 의원 보궐 선거 | 1998년 | 오쿠다 켄 | 민주당 | 오쿠다 케이와의 사망에 따른 보궐선거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0년 | 하세 히로시 | 자민당 | |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3년 | 오쿠다 켄 | 민주당 | |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5년 | 하세 히로시 | 자민당 | |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9년 | 오쿠다 켄 | 민주당 | |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2년 | 하세 히로시 | 자민당 | |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4년 | 하세 히로시 | 자민당 | |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7년 | 하세 히로시 | 자민당 | |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1년 | 코모리 타쿠로 | 자민당 | |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4년 | 코모리 타쿠로 | 자민당 |
5.1. 2024년
2024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후보자 6명이 출마한 혼전 속에서 자민당 소속 고모리가 재선에 성공했다. 국민민주당의 고다케 가이는 4위로 낙선했지만, 비례대표로 부활 당선되었다.
5.2. 2021년
2021년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하세 히로시는 이듬해 이시카와현 지사 선거 출마 준비를 위해 중의원 선거 불출마를 표명했다. 자민당은 후계자로 전 대장·재무관료인 고모리 타쿠로를 옹립했고, 야당의 신인 3명을 상대로 완승하여 첫 당선되었다.
5.5. 2012년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강한 역풍 속에서 하세 히로시가 자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차점인 오쿠다 켄에게 약 5만 2천 표 차로 압승하며 비례 부활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5.8. 2003년
1998년 아버지 오쿠다 케이와의 사망으로 지반을 물려받은 오쿠다 켄이 2003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한편, 자민당은 하세 히로시를 옹립하여, 이후 오쿠다 켄과 하세 히로시 간의 치열한 선거전이 매번 펼쳐졌다.
| 선거명 | 년도 | 당선자 | 정당 | 비고 |
|---|---|---|---|---|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3년 | 오쿠다 켄 | 민주당 |
5.9. 2000년
2000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모리 요시로의 주도로 이시카와현 출신의 참의원 의원이자 프로레슬러였던 하세 히로시를 옹립했다. 그 결과, 하세 히로시가 첫 당선되었고, 오쿠다 켄은 낙선했지만 비례대표제를 통해 부활했다.
5.10. 1998년 보궐선거
오쿠다 케이와의 사망으로 1998년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는 그의 아들인 오쿠다 켄이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첫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