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범 (18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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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원범은 1882년 2월 5일 경기도 양주군 진벌면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고려 강계원수 이의의 19대손이다. 1935년, 1939년, 1943년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1941년 우곡원범으로 창씨개명했다. 광복 후 1946년 미 군정의 포고령으로 면협의원에서 해임되었다. 묘소는 금곡리에 있었으나 화장 후 이장되었다.

이원범 (18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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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882년(고종 19) 2월 5일 경기도 양주군 진벌면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녹현(祿顯)이고, 아버지는 윤선(胤善)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선공감 감역 김태근(金泰根)의 딸이다. 고려 강계원수 이의(李山+疑 또는 李草+疑)의 19대손이다. 부인은 이천인(利川徐氏) 서정인(徐貞姻)으로 원서(源西)의 딸이다. 혹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영철(永喆)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14년 연상의 친형 이원영은 군인으로, 대한제국 고종 때 교관을 역임했다. 그의 초기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다.

1925년 양주군내 수해가 발생하자, 1925년 9월 20일 양주군내 지역유지들이 모여 장연철의 주도로 양주군수재회를 조직했다. 이때 이원영, 이원문, 이중선 등이 수해구제회에 참여했다. 당시 진접면의 이원영은 수해성금 2원, 이원문(李源文), 이중선(李重善)은 각 1원을 기탁했다. 이원영은 그의 형이고, 이원문은 그의 6촌 형, 이중선은 그의 숙부였다.

1935년 5월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그해 5월 30일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39년 5월 14일에는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원 후보자로 출마하지 않았다. 5월 14일의 입후보자 명단에는 없다. 1939년 5월 17일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원 후보자로 출마했고 선거일은 그해 5월 20일이었다. 1939년 5월 21일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5월 23일 진접면 면협의원에 최종 당선되었다.

1941년 우곡원범으로 창씨개명하였다. 창씨개명한 월일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941년 당시 조선신문사에서 편찬한 창씨명감에 수록되었다.

1943년 진접면 면협의회의원 후보로 출마, 그해 6월 2일 진접면 면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때는 일본식 이름인 하타니 겐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광복 후 1946년 3월 14일 미 군정이 포고령 60호를 내려 부군면협의회를 해산하면서 면협의원에서 해임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금곡리 샘골(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샘골) 자좌(子坐)에 안장되었으나, 후일 화장하여 이장하였다. 화장 및 이장 시점은 알려진 것이 없다. 샘골 자좌에 있던 그의 장남 이완근(李完根)의 묘 역시 화장되어 타지역으로 이장되었다.

2.1. 초기 생애

이원범은 1882년 2월 5일 경기도 양주군 진벌면 금곡리(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윤선(胤善), 어머니는 안동 김씨선공감 감역 김태근(金泰根)의 딸이다. 고려 강계원수 이의의 19대손이다. 부인은 이천인(利川徐氏) 서정인(徐貞姻)이다. 14년 연상의 친형 이원영은 군인이었다.

1925년 양주군내 수해가 발생했을 때, 이원영 등과 함께 양주군수재회에 참여하여 성금을 기탁했다. 1935년1939년, 1943년에는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41년 우곡원범으로 창씨개명하였다. 광복 후 1946년 3월 14일 미 군정의 포고령으로 부군면협의회가 해산되면서 면협의원에서 해임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금곡리 샘골(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샘골)에 있었으나, 후일 화장되어 이장되었다.

2.2. 면협의회 의원 활동

1935년 5월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그해 5월 30일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39년 5월 17일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원 후보자로 다시 출마했고 5월 21일 양주군 진접면 면협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5월 23일 진접면 면협의원에 최종 당선되었다. 1943년 진접면 면협의회의원 후보로도 출마, 그해 6월 2일 진접면 면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때는 일본식 이름인 하타니 겐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광복 후 1946년 3월 14일 미 군정이 포고령 60호를 내려 부군면협의회를 해산하면서 면협의원에서 해임되었다.

2.3. 창씨개명

1941년 우곡원범으로 창씨개명하였다. 창씨개명한 월일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941년 당시 조선신문사에서 편찬한 창씨명감에 수록되었다. 1943년 진접면 면협의회의원 후보로 출마, 그해 6월 2일 진접면 면의원에 당선되었을때 일본식 이름인 하타니 겐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2.4. 해방 이후

이원범은 해방 이후 1946년 3월 14일 미 군정이 포고령 60호를 내려 부군면협의회를 해산하면서 면협의원에서 해임되었다.

3. 가족 관계

* 부인 : 서정인/徐貞姻한국어 (1884년 12월 7일 ~ 1962년 2월 27일), 이천인(利川人)
* 아들 : 이완근(李完根, 1909년 8월 6일 ~ 1971년 6월 10일), 진접면의회 의원
* 며느리 : 서정자/徐正子한국어, 이천인(利川人), 서상집(徐商執)의 딸

4. 평가

4.1. 긍정적 평가

4.2. 부정적 평가

5. 기타

아들 이완근은 1956년부터 1960년까지 제2대 진접면 면의원을 지냈다. 이완근은 1956년 8월 8일 시읍면의회 선거에서 양주군 진접면 면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43년 3월 5일 수원여자고등학교 합격자 명단에 羽谷炳順(하야시야마 헤이준)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羽谷炳順은 그의 일족으로 추정되나, 그와의 정확한 촌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