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종 (1905년)
1. 개요
이원종은 1905년 11월 10일 경기도 안산군 와리면 초지리(현 안산시 상록구 초지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흥군 군자면 초지리 구장을 역임했고, 안산금융조합 주사, 초지식산계 주사 등을 맡았다. 또한 부군면협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대륙상공주식회사와 히카리모터스 등 여러 기업에서 감사 및 이사로 활동했다.
-
지방 입법자 -
노노무라 류타로
일본 효고현 의원이었던 노노무라 류타로는 정치자금 논란 후 과장된 기자회견으로 화제가 되어 의원직을 사임하고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 -
지방 입법자 -
이한복 (춘천 기업인)
1924년 춘천에서 태어난 기업인 이한복은 언론, 상공업,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며 춘천 지역 발전과 사회 공헌에 힘썼으나, 일제강점기 활동 이력과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실종된 상태이다. -
지방 입법부 -
지방의회
지방의회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의 입법 기관으로, 지역 법률 제정 및 정부 감시 기능을 수행하며, 국가별 법률 및 정치 시스템에 따라 구성, 권한, 운영 방식이 다양하다. -
지방 입법부 -
도쿄도의회
도쿄도의회는 도쿄도의 의결기관으로, 선거로 선출된 127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4년 임기를 갖는 의원들이 활동하고 과거 성희롱 논란과 잦은 해산 결정 등의 사건이 있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이원종은 1905년 11월 10일 경기도 안산군 와리면 초지리(현 안산시 상록구 초지동)에서 이민선과 경주 배씨 배영선(裵永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6대조 이성석 대에 한성부 북부에 정착했고, 5대조 이한운이 한성부 종로방 세심대로 이사했다. 다시 양 조부 이재응, 생 조부 이재성 형제가 한성부 세심대에서 안산군 초지리로 와서 정착했다. 후에 이원종은 경기도 안산군 와리면 초지리 312번지에서 경성부 종로구 훈정동 66번지로 이주하였다.
그는 대한제국 당시 보통학교 훈도를 역임한 이원황, 기업인 이원용의 친동생이고, 주사를 역임한 이원흥의 이복 동생이었다. 기업인 이천응은 그의 매부였고, 강화군수, 김포군수, 가평군수, 연기군 전의면장 등을 역임한 이원찬은 그의 6촌 형이었다.
1927년 시흥군 군자면 초지리 구장(區長)을 역임했고, 1928년 9월 29일 경기도 파주군 청석면 산남리의 공유수면매립 권리를 오성선(吳性善)과 공동으로 인수하였다. 1929년 12월 30일 안산 원시단연저축조합(元時斷煙貯蓄組合)에 참여하여 서기로 선출되었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33년 10월 1일 국세조사기념장 수여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1935년 부군면협의회 의원 지방 선거에 시흥군 군자면 면협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38년 10월 8일 시흥군 군자면 초지리에 초지식산계(草芝殖產契)와 안산금융조합(安山金融組合)을 설립하는데 참여, 초지식산계 주사, 안산금융조합 주사를 맡았다.
1939년 2월 27일 대륙상공주식회사의 감사 신현구, 이두용이 퇴임하고 이원종과 이원영이 감사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그의 친형 이원용이 대륙상공주식회사 대표이사 취체역이 되었다. 12월 4일 주식회사 히카리모터스에서 취체역 이원찬, 노상기를 해임하고, 이원종과 이순용을 취체역으로 선임했다. 1941년 11월 7일 경성부 종로4정목 49번지에 있는 여객운송 및 자전거 판매회사 대륙상공주식회사 감사가 되었다. 대표는 형제 이원용이고 이사는 누이 이정원, 매부 이천응, 감사 중에는 그의 형제 이원영이 있었다. 같은 날 경성부 장사동 233번지에 있는 자동차 수선 및 자동차부품 판매회사 히카리모터스의 이사가 되었다. 매부 이천응이 대표이사 취체역이고, 이사 중에는 그의 형제 이원용, 감사는 소완규, 이원영, 지배인은 이명규였다.
2.1. 초기 생애와 가계
이원종은 1905년 11월 10일 경기도 안산군 와리면 초지리(현 안산시 상록구 초지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 말~대한제국 시기 인천부 주사, 인천감리서 주사, 안산군 주사를 역임한 이민선이고, 어머니는 경주 배씨(慶州裵氏)로 배영선(裵永善)의 딸이다.
대한제국 당시 보통학교 훈도를 역임한 이원황, 기업인 이원용은 그의 친형이고, 주사를 역임한 이원흥은 그의 이복 형이었다. 기업인 이천응은 그의 매부였고, 강화군수, 김포군수, 가평군수, 연기군 전의면장 등을 역임한 이원찬은 그의 6촌 형이었다.
그의 가계는 6대조 이성석 대에 한성부 북부에 정착했고, 5대조 이한운이 한성부 종로방 세심대로 이사했다. 다시 양 조부 이재응, 생 조부 이재성 형제가 한성부 세심대에서 안산군 초지리로 와서 정착했다.
후에 이원종은 경기도 안산군 와리면 초지리 312번지에서 경성부 종로구 훈정동 66번지로 이주하였다.
2.2. 초기 활동
1927년 시흥군 군자면 초지리 구장(區長)을 역임했다. 1928년 9월 29일 경기도 파주군 청석면 산남리의 공유수면매립 권리를 오성선(吳性善), 이원종(李源琮)이 공동으로 인수하였다.
1929년 12월 30일 시흥군 군자면 원시리 이대규(李大圭) 등이 농촌 경제 손실과 가계의 담배값 지출을 줄이고자 저축 운동을 하자, 안산 원시단연저축조합(元時斷煙貯蓄組合)에 참여하여 서기로 선출되었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33년 10월 1일 국세조사기념장 수여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1935년 부군면협의회 의원 지방 선거에 시흥군 군자면 면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38년 10월 8일 시흥군 군자면 초지리에 초지식산계(草芝殖產契)와 안산금융조합(安山金融組合)을 설립하는데 참여했다. 그는 초지식산계 주사, 안산금융조합 주사를 맡았고, 심희택(沈喜澤)은 초지식산계 부주사, 안산금융조합 부주사에 선임되었다.
2.3. 기업 활동
1939년 2월 27일 대륙상공주식회사의 감사 신현구, 이두용이 퇴임하고 이원종과 이원영이 감사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그의 친형 이원용이 대륙상공주식회사 대표이사 취체역이 되었다. 12월 4일 주식회사 히카리모터스에서 취체역 이원찬, 노상기를 해임하고, 이원종과 이순용을 취체역으로 선임했다.
1941년 11월 7일 경성부 종로4정목 49번지에 있는 여객운송 및 자전거 판매회사 대륙상공주식회사 감사가 되었다. 대표는 형제 이원용이고 이사는 누이 이정원, 매부 이천응, 감사 중에는 그의 형제 이원영이 있었다. 같은 날 경성부 장사동 233번지에 있는 자동차 수선 및 자동차부품 판매회사 히카리모터스의 이사가 되었다. 매부 이천응이 대표이사 취체역이고, 이사 중에는 그의 형제 이원용, 감사는 소완규, 이원영, 지배인은 이명규였다.
3. 가족 관계
부인은 진주 류씨이나, 친정아버지와 선조 기록, 사망년월일은 모두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