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도립리 육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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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천 도립리 육괴정은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이후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한 정자이다. 처음에는 초당이었으나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는 팔작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은 본당과 담장, 대문을 갖춘 사당 형태를 띤다. 육괴정이라는 이름은 김안국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다지기 위해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데서 유래했으며, 현재는 3그루가 남아있다. 본당에는 엄유윤의 충신정문 등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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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도립리 육괴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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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이천시 |
유형 | 향토유적 |
지정 번호 | 13 |
지정일 | 1986년 4월 14일 |
주소 |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735 |
2. 역사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류들이 몰락하자, 난을 피해 낙향한 엄용순이 육괴정을 건립하였다.[1] 처음에는 초당이었으나 수차례 중건을 거쳤다.[1] 육괴정이란 이름은 모재 김안국 등 여섯 선비가 정자 앞에 못을 파고 연을 심은 뒤, 각각 느티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는 데서 유래했다.[1]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연못은 메워지고 느티나무 6그루 중 3그루는 고사하여 후손들이 다시 심었다.[1] 현재 건물은 정자가 아닌 사당 형태이며, 내부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엄유윤의 충신정문과 《남당 엄선생》, 《육괴정 서》, 《육괴정중수기》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1]
2. 1. 건립 배경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지치주의와 이상 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했고,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엄용순이 정자를 건립하였다.[1]처음에는 초당이었으나 그 후 수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1]
육괴정이란 이름은 모재 김안국을 비롯한 가은, 오경, 임내신, 성두문,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각 한 그루씩 모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연못은 메워지고, 6그루의 느티나무 중 3그루가 고사하여 후손들이 다시 심어 지금도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1]
2. 2. 명칭 유래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을 비롯하여 규정 가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성두문,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각 한 그루씩 모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1]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연못은 메워지고, 6그루의 느티나무 중 3그루가 고사하여 후손들이 다시 심어 지금도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1]2. 3. 변천 과정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지치주의와 이상 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했고,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엄용순이 정자를 건립하였다.[1] 처음에는 초당이었으나 그 후 수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1]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을 비롯하여 규정 가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성두문,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각 한 그루씩 모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1]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연못은 메워지고, 6그루의 느티나무 중 3그루가 고사하여 후손들이 다시 심어 지금도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1]
지금의 건물은 팔작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은 본당과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으로 되어 있어 정자가 아닌 사당의 형태이다. 본당의 규모는 정면 9m, 측면 3.78m이다.[1]
본당 안에는 엄용순의 손자(孫)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엄유윤의 충신정문을 비롯하여 《남당 엄선생》, 《육괴정 서》, 《육괴정중수기》 등의 현액이 함께 걸려있다.[1]
3. 구조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지치주의와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했고,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엄용순이 정자를 건립하였다.[1] 처음에는 초당이었으나 그 후 수차례 중건되었다.[1]
육괴정이란 이름은 모재 김안국, 규정 가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성두문,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각 한 그루씩 모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연못은 메워지고, 6그루 중 3그루가 고사하여 후손들이 다시 심었다.[1]
3. 1. 건물 구조
육괴정은 팔작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은 본당,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자가 아닌 사당 형태이다.[1] 본당 규모는 정면 9m, 측면 3.78m이다.[1]본당 안에는 엄용순의 손자이자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엄유윤의 충신정문을 비롯하여 《남당 엄선생》, 《육괴정 서》, 《육괴정중수기》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1]
3. 2. 내부 현판
본당 안에는 엄용순의 손자(孫)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엄유윤의 충신정문을 비롯하여 《남당 엄선생》, 《육괴정 서》, 《육괴정중수기》 등의 현판이 함께 걸려있다.[1]4. 사진
5. 관련 인물
엄용순은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류들이 몰락하자, 난을 피해 낙향하여 육괴정을 건립하였다.[1] 김안국은 육괴정 모임에 함께한 조선 전기 명현 여섯 선비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연을 심었다.[1] 엄유윤은 엄용순의 손자로, 임진왜란 때 순절하였다.[1]
5. 1. 엄용순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지치주의와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하자, 난을 피해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한 정자이다.[1] 처음에는 초당이었으나 그 후 수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1]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김안국, 규정 가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성두문,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각 한 그루씩 모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1]5. 2. 김안국
모재 김안국은 이천 도립리 육괴정 모임에 함께한 조선 전기 명현 여섯 선비 중 한 명이다. 나머지 선비는 규정 가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성두문, 엄용순이다. 이들은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연을 심고, 각자 느티나무 한 그루씩을 심었다.[1]5. 3. 엄유윤
본당 안에는 엄용순의 손자(孫)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엄유윤의 충신정문과 《남당 엄선생》, 《육괴정 서》, 《육괴정중수기》 등의 현판이 함께 걸려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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