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관고동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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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천 관고동 석불입상은 이천시 관고동에 위치한 고려 시대의 석불 여래입상이다. 머리는 나발에 작은 육계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아랫배에 붙인 모습이다. 몸체에 비해 손이 크게 표현되었고, 콧마루와 손가락 부위는 마멸되어 시멘트로 보강되었다. 등에는 두광 장식을 부착했던 흔적이 있으며, 주변에서 석괴와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원래 불당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규격화된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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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관고동 석불입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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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고동 입상석불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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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관고동 입상석불 |
국가 | 대한민국 이천시 |
유형 | 향토유적 |
지정 번호 | 6 |
지정일 | 1986년 4월 14일 |
주소 |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산 39-3 |
시대 | 알 수 없음 |
소유 | 법왕정사 |
참고 | 알 수 없음 |
웹사이트 | 이천시 문화관광 웹사이트 |
2. 특징
이 석불은 전체적으로 규모가 큰 여래입상(如來立像)이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게 표현된 점이 눈에 띄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목의 삼도(三道)는 다소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2] 얼굴의 눈, 코, 귀가 모두 길게 표현되었는데, 이는 이천 자석리 석불입상의 얼굴과 유사한 특징이다.[3] 또한 몸체에 비해 팔이 길고 손이 큰 편으로, 다소 비례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이는 부처의 신체적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 방식 중 하나이다.[3]
2. 1. 세부 묘사
이 석불(石佛)은 규모가 큰 여래입상(如來立像)이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작은 육계를 가지고 있다. 육계는 부처의 정수리에 마치 혹처럼 솟아 있는 부분으로,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한다. 이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성인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었던 상투 모양에서 유래하였다고 추정된다. 특징적으로 머리가 신체에 비해서 크게 표현되었다.[2] 귀는 매우 커서 양 어깨까지 길게 흘러내렸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나 다소 도식화된 느낌을 준다. 상대적으로 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눈, 코, 귀가 모두 길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이천 자석리 석불입상의 얼굴 표현과 유사하다.[3]법의(法衣)는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通肩) 방식으로 입었다. 옷주름인 의문(衣文)은 가슴에서부터 원견을 이루다가 양 무릎 부분에서 타원형으로 변하며 발밑까지 닿아 있다.
오른손은 옆으로 곧게 펴서 내리고, 왼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향한 채 손목을 구부려 아랫배에 붙이고 있다. 특징적으로 몸체에 비해 손이 큰 편이다. 과도하게 긴 팔과 큰 손은 비례가 맞지 않아 어색하게 보일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부처의 신체적 특징으로 여겨 조각이나 회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3]
3. 현재 상태
콧마루와 손가락 일부는 마멸되어 시멘트로 보강되었다. 등 복판에는 10cm가량의 사각 구멍이 있는데, 이는 두광(頭光) 장식을 부착했던 자리로 추정된다. 불상의 발 부분은 땅에 매몰되어 있다. 주변에서 석괴(石塊)와 기와 조각(와편, 瓦片)이 출토되어, 원래 불당(佛堂) 건물이 있었던 자리임을 알 수 있다.[4]
4. 제작 연대
규격화된 수법으로 미루어, 불교 조각의 쇠퇴기인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5. 사진
6. 현장 안내문
관고리 입상석불
이천시의 향토유적 제6호(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185-5)
이천시에서 기치미고개에 이르는 도로변 좌측, 옛부터 미륵골이라고 불리던 산골짜기 안의 밭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 석불은 규모가 큰 여래입상으로 현 위치가 원래에 매몰되었던 곳이라 한다.
머리는 소발에 작은 육계를 가지고 있으며 상호는 하해이다. 귀는 매우 커서 양어깨에까지 길게 흘러내렸고, 목에는 3도가 뚜렷하나 도식화된 느낌이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에서부터 의문이 원후를 이루다가 양무릎 부분에서 타원형을 이루어 발 밑에까지 닿아 있다. 오른손은 옆으로 곧게 펴서 내리고, 왼손은 밖으로 향하여 배 앞부분에서 구부렸는데, 동체에 비해 손이 큰 편이다. 콧마루와 손가락 부위는 일부가 마멸되어 시멘트로 보강했고, 등 복판에는 10cm 가량의 사각구멍이 뚫려 있는데, 두광 장식을 만들어 부착해 놓았던 자리인 듯 싶다. 주위에는 석괴와 와편이 출토된 바 있어 원래는 불당 건물이 설치되었던 자리임을 알 수 있다. 규격화된 수법으로 미루어, 불교조각의 쇠퇴기인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불의 규모는 전체높이 4m, 어깨폭 1.1m, 허리둘레 1.17m이다.
참조
[1]
웹인용
시 지정 문화재 - 문화관광
https://www.icheon.g[...]
2021-08-05
[2]
서적
한국사지총람(상)
https://www.worldcat[...]
문화재청
2010-00-00
[3]
웹인용
"[폰으로 만난 문화 & 역사 22] 이천시 향토유적 제6호 ‘관고리입상석불(官庫里立像石佛)’"
http://hangiltimes.c[...]
2021-08-05
[4]
웹인용
역사와 숨결이 살아있는 문화유적과의 만남
https://memory.libra[...]
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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