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쿠라 가쓰미
1. 개요
이타쿠라 가쓰미는 선대 번주 이타쿠라 가쓰아키의 장남으로, 후쿠시마 번의 마지막 번주이다. 1866년 아버지의 은거로 가문을 상속받아 에도 시내 단속을 맡았으나,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에 항복하고 은거했다. 이후 가독은 이타쿠라 가쓰타쓰에게 넘어갔으며, 1924년에 사망했다.
| 씨명 | 이타쿠라 씨 |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다이쇼 시대 |
| 출생 | 가에이 4년 3월 21일 ( 1851년 4월 22일) |
| 사망 | 다이쇼 13년 (1924년) 11월 20일 |
| 다른 이름 | 가쓰히사 |
| 관위 | 종5위하·가이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모치 → 요시노부 |
| 번 | 무쓰후쿠시마번 번주 |
| 씨족 | 이타쿠라 씨 |
| 부모 | 이타쿠라 가쓰아키、노무라 씨 |
| 형제자매 | 가쓰미、가쓰히데、사카이 다다쓰네 정실 등 |
| 배우자 | 오카베 나가히로 딸·스다레코 |
| 배우자 | 와타나베 아쓰타다 딸 |
| 양자 | 가쓰타쓰 |
| 직책 | 후쿠시마번 번주 (이타쿠라 가문) |
|---|---|
| 대수 | 11대 |
| 임기 | 1866년 ~ 186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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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번주 -
이타쿠라 가쓰사토 (3대)
이타쿠라 가쓰사토는 가와치국 탄난번주 다카기 마사치카의 차남으로 이타쿠라 시게야스의 양자가 되어 후쿠시마번의 번주가 되었으며, 오사카 가반을 역임하고 1743년에 사망했다. -
후쿠시마번주 -
이타쿠라 가쓰나가
이타쿠라 가쓰나가는 에도 시대 시게마사류 이타쿠라 가문의 당주이자 안나카 번의 번주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문을 상속받아 오사카 가반으로 궁핍해진 번 재정을 재건하려 노력했으며, 그의 묘소는 아이치현 니시오 시 조엔지에 있다. -
보신 전쟁 관련자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
보신 전쟁 관련자 -
소네 아라스케
소네 아라스케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대한제국 통감으로서 한국 병합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한국의 국권 침탈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는다. -
1851년 출생 -
더럼 스티븐스
더럼 스티븐스는 미국의 외교관으로, 주일 미국 공사관 서기관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여 일본 외무성에서 일했으며, 대한제국 외부 고문으로 친일 행보를 보이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 한인에게 피격되어 사망, 한국 역사에서 비판받는 인물이다. -
1851년 출생 -
프란츠 폰 리스트
프란츠 폰 리스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형법학자이자 국제법 학자로, 목적형주의를 주창하며 형벌의 목적을 범죄 예방 및 재활, 사회적 보호로 설정하여 20세기 형벌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개선 불가능한 범죄자에 대한 극단적인 처벌 주장은 비판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2.1. 가독 상속과 막부 말기의 활동
게이오 2년(1866년) 5월 2일, 아버지 이타쿠라 가쓰아키의 은거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에도 막부로부터 에도 시내 단속을 명받았다. 게이오 4년(1868년) 3월 1일, 중신 시부카와 교노스케(후의 이타쿠라 가쓰타쓰)를 상경시켜 신정부에 공순의 자세를 보였다. 신정부의 명령에 따라 번주 가쓰미는 에도에서 후쿠시마로 돌아와 아이즈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오우 진무 총독 참모·소장 다이고 다다타카를 받아들여 오우 군사국을 설치했다. 그러나 오우에쓰 열번 동맹 결성에 따라 사쿠파로 돌아서게 되었다. 윤4월 20일, 세라 슈조 암살에 후쿠시마 번사도 가담했다.
메이지 원년(1868년) 7월 29일, 신정부군에 의한 니혼마쓰 성 공략을 받아 후쿠시마 성을 개성하고 요네자와로 피난했다. 같은 해 9월 15일, 아버지 가쓰아키와 함께 신정부에 항복했다. 같은 해 9월 20일, 성 아래에서 근신을 명받았다. 10월, 도쿄로 옮겨 근신했다. 같은 해 12월 7일, 신정부로부터 은거를 명받았다. 같은 해 12월 18일, 이타쿠라 가쓰사다(11대 가쓰나가의 차남)의 장남 가쓰타쓰가 가독을 상속했다. 메이지 2년(1869년) 9월 28일, 죄를 묻지 않고 은거하는 것을 용서받았다.
2.2. 보신 전쟁과 후쿠시마 번
1868년 3월 1일, 중신 시부카와 교노스케(후의 이타쿠라 가쓰타쓰)를 상경시켜 신정부에 공순의 자세를 보였다. 신정부의 명령에 따라 번주 가쓰미는 에도에서 후쿠시마로 돌아와 아이즈 정벌 준비에 들어갔다. 오우 진무 총독 참모·소장 다이고 다다타카를 받아들여 오우 군사국을 설치했다. 그러나 오우에쓰 열번 동맹 결성에 따라 사쿠파로 돌아서게 되었다. 윤4월 20일, 세라 슈조 암살에 후쿠시마 번사도 가담했다.
1868년 7월 29일, 신정부군에 의한 니혼마쓰 성 공략을 받아 후쿠시마 성을 개성하고 요네자와로 피난했다. 같은 해 9월 15일, 아버지 가쓰아키와 함께 신정부에 항복했다. 같은 해 9월 20일, 성 아래에서 근신을 명받았다. 10월, 도쿄로 옮겨 근신했다.
2.3. 항복과 은거
1868년 3월 1일, 중신 시부카와 교노스케(후의 이타쿠라 가쓰타쓰)를 상경시켜 신정부에 공순의 자세를 보였다. 신정부의 명령에 따라 번주 가쓰미는 에도에서 후쿠시마로 돌아와 아이즈 정벌 준비에 들어갔다. 오우 진무 총독 참모·소장 다이고 다다타카를 받아들여 오우 군사국을 설치했다. 그러나 오우에쓰 열번 동맹 결성에 따라 사쿠파로 돌아서게 되었다. 윤4월 20일, 세라 슈조 암살에 후쿠시마 번사도 가담했다.
1868년 7월 29일, 신정부군에 의한 니혼마쓰 성 공략을 받아 후쿠시마 성을 개성하고 요네자와로 피난했다. 같은 해 9월 15일, 아버지 가쓰아키와 함께 신정부에 항복했다. 9월 20일, 성 아래에서 근신을 명받았다. 10월, 도쿄로 옮겨 근신했다. 12월 7일, 신정부로부터 은거를 명받았다. 12월 18일, 이타쿠라 가쓰사다(11대 가쓰나가의 차남)의 장남 가쓰타쓰가 가독을 상속했다. 1869년 9월 28일, 죄를 묻지 않고 은거하는 것을 용서받았다.
3. 가계
| 구분 | 내용 |
|---|---|
| 아버지 | 이타쿠라 가쓰아키 |
| 어머니 | 노무라 씨 (측실) |
| 정실 | 오카베 나가히로의 딸 렌시 |
| 계실 | 와타나베 도다다의 딸 후지코 |
| 양자 | 이타쿠라 가쓰타쓰 (이타쿠라 가쓰사다의 장남) |
3.1. 부모
* 아버지: 이타쿠라 가쓰아키
* 어머니: 노무라 씨 (측실)
3.2. 배우자
* 정실: 오카베 나가히로의 딸 렌시
* 계실: 와타나베 도다다의 딸 후지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