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1883년)
1. 개요
이호선은 1883년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대장동에서 태어났으며, 대한제국 시기 조선사관학교에서 수학했으나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측량술을 배워 측지기사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기수로 근무했으며, 해방 후에는 낙생면장을 역임하고 조선연료협회 창립에 참여했다. 2018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으로 묘소가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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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지학자 -
빌러브로어트 스넬리우스
빌러브로어트 스넬리우스는 네덜란드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삼각 측량법으로 지구 자오선 호의 길이를 실측하고 굴절의 법칙을 발견했으며, 원주율 π를 계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
19세기 한국 사람 -
손병희
손병희는 조선 말 동학의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종교인, 독립운동가로서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며 인내천 사상을 강조했다. -
19세기 한국 사람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1888년 출생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1888년 출생 -
프리츠 제르니커
프리츠 제르니커는 위상차 현미경 발명 및 제르니커 다항식 개발을 통해 광학 분야에 기여하여 195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물리학자이다.
2. 생애
출생지는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대장동이고, 본적지는 경기도 광주이다. 아버지는 재인(在寅)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이영기(李永基)의 딸이다.
그의 15대조 충좌위부사정 혹은 호군을 역임한 이경연 혹은 그의 손자 병마절도사 이지방의 대에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낙생면 일대에 정착했다. 이호선의 7대조 이상우는 포천에 있던 일가 이영구의 양자로 입양됐으나, 상우의 손자이자 인수의 아들 광석, 중석이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낙생면 일대의 분묘를 수호하려고 다시 경기도 포천 일동면에서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대장리로 이주하여 자리잡았다. 고조부 이한택은 정조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대한민국 인사록에 의하면 그는 대한제국 때 조선사관학교(朝鮮士官學校)에서 수학했다. 그러나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측량술을 배워 측지기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가 군인의 길을 포기한 사유는 알려진 것이 없다.
1911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 기수(技手)가 되고 그해 9월 30일 토지조사국 기수에 재임명되어, 1912년, 1913년, 1914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 기수(技手)로 있었다. 1914년부터 1915년, 1916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지과 기수(技手)였다. 1916년 11월 15일 7급봉으로 승급했다. 1917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수로 재직 중이었다.
1945년 해방 후 낙생면장이 되었다. 9월 19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 119번지에서 조직한 조선연료협회(朝鮮燃料協會) 창립에 참여하고, 석탄부 위원에 선출되었다. 1947년 당시에는 광주군농회 회원이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에도 낙생면장에 유임, 1949년에는 광주군 후생협회 지부장(厚生協會 支部長), 성인교육협회 지부장(成人敎育協會支部長), 미산협회 낙생면 분구장(米產協會樂生面 分區長) 등을 역임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대장리(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절골(寺谷) 초입 쌍봉(雙峰)부락에 매장되었다가, 2018년 10월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산19-63번지 무두만현(無頭滿峴) 고개 자좌(子坐)로 이장되었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이호선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대장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본적은 경기도 광주이다. 그의 15대조 이경연 혹은 그의 손자 이지방 대에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낙생면 일대에 정착했다. 대한제국 때 조선사관학교(朝鮮士官學校)에서 수학했으나,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측량술을 배워 측지기사로 활동했다.
1911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 기수(技手)가 되고 그해 9월 30일 토지조사국 기수에 재임명되어, 1912년, 1913년, 1914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 기수(技手)로 있었다. 1914년부터 1915년, 1916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지과 기수(技手)였다. 1916년 11월 15일 7급봉으로 승급했다. 1917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수로 재직 중이었다.
2.2. 해방 이후 활동
1945년 해방 후 낙생면장이 되었다. 9월 19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 119번지에서 조직한 조선연료협회(朝鮮燃料協會) 창립에 참여하고, 석탄부 위원에 선출되었다. 1947년 당시에는 광주군농회 회원이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에도 낙생면장에 유임, 1949년에는 광주군 후생협회 지부장(厚生協會 支部長), 성인교육협회 지부장(成人敎育協會支部長), 미산협회 낙생면 분구장(米產協會樂生面 分區長) 등을 역임했다.
3. 가계
3.1. 가족 관계
* 아버지 : 이재인(李在寅, 1848년 2월 15일 ~ 1930년 5월 1일)
* 어머니 : 고성이씨/Goseongissiko-Latn(固城李氏, 1852년 3월 19일 ~ 1914년 8월 16일), 이영기(李永基)의 딸
* 동생 : 이택선(李宅善), 초명은 기선(沂善)
* 부인 : 해주정씨/Haejujeongssiko-Latn(海州鄭氏, 1878년 10월 1일생 혹은 10월 17일생 ~ 1932년 9월 26일), 정경부(慶溥)의 딸
* 부인 : 충주지씨/Chungjujissiko-Latn(忠州池氏, 1889년 8월 27일 ~ 1957년 1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