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트 크레머
1. 개요
잉그리트 크레머는 동독의 다이빙 선수이자 코치이다. 1960년과 1964년 하계 올림픽에서 독일 연합팀 소속으로 출전하여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196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동독 소속으로 참가했다. 1958년과 1962년 유럽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했으며, 은퇴 후에는 다이빙 코치로 활동했다. 1960년과 1964년 동독 올해의 스포츠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1975년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이름 | 잉그리트 크레머 |
|---|---|
| 원어명 | Ingrid Krämer |
| 출생일 | 1943년 7월 29일 |
| 출생지 | 드레스덴 |
| 국적 | 독일 |
| 직업 | 다이빙 선수 |
| 소속 | SC Einheit Dresden; SC Empor Rostock |
| 상훈 |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 헌액 (1975) |
| 키 | 1.58m |
|---|---|
| 몸무게 | 56kg |
| 종목 | 다이빙 |
|---|---|
| 올림픽 | 금메달, 1960년 로마, 3m 스프링보드 금메달, 1960년 로마, 10m 플랫폼 금메달, 1964년 도쿄, 3m 스프링보드 은메달, 1964년 도쿄, 10m 플랫폼 |
| 유럽 선수권 대회 | 금메달, 1962년 라이프치히, 3m 스프링보드 금메달, 1962년 라이프치히, 10m 플랫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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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참가 선수 -
클라우스 디비아시
클라우스 디비아시는 이탈리아의 다이빙 선수로, 1968년부터 1976년까지 3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총 5개의 올림픽 메달과 4개의 FINA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메달을 획득했다. -
독일의 여자 다이빙 선수 -
하니 레보른
하니 레보른은 [주요 주제]이다. -
1968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참가 선수 -
버나드 라이트슨
버나드 라이트슨은 미국의 다이빙 선수로, 1966년 NCAA 챔피언, 1967년 범아메리카 게임 금메달, 1968년 멕시코 시티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84년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68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참가 선수 -
클라우스 디비아시
클라우스 디비아시는 이탈리아의 다이빙 선수로, 1968년부터 1976년까지 3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총 5개의 올림픽 메달과 4개의 FINA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메달을 획득했다.
2. 선수 경력
크레머는 1960년 하계 올림픽과 1964년 하계 올림픽에 독일 연합팀 소속으로 출전하여 다이빙 선수로 활동했다. 1960년 올림픽에서는 스프링보드와 플랫폼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고, 1964년 올림픽에서는 독일 선수단 기수를 맡았으며 스프링보드 금메달, 플랫폼 은메달을 획득했다. 1968년 하계 올림픽에는 동독 소속으로 출전하여 3m 스프링보드에서 5위를 기록했다.
1958년 유럽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는 스프링보드 4위, 플랫폼 8위를 기록했고, 1962년 유럽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는 두 종목 모두 우승했다.
1968년 올림픽 이후 은퇴한 크레머는 마르티나 야슈케, 베아테 얀, 얀 헴펠, 미하엘 큉, 하이코 마이어, 안네트 겜 등을 지도하며 성공적인 다이빙 코치로 활동했다. 독일 통일 이후에는 은행원으로 일했다.
2.1. 올림픽
1960년 하계 올림픽과 1964년 하계 올림픽에 독일 연합팀 소속으로 출전했다. 1960년 올림픽에서는 스프링보드와 플랫폼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2관왕을 차지했다. 1964년 올림픽에서는 독일 선수단 기수를 맡았으며, '엥겔-크레머'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여 스프링보드 금메달, 플랫폼 다이빙 은메달을 획득했다. 1968년 하계 올림픽에는 동독 소속으로 '굴빈'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여 3m 스프링보드에서 5위를 기록했다.
2.2. 유럽 선수권 대회
1958년 유럽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스프링보드 4위, 플랫폼 8위를 기록했고, 1962년 유럽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는 스프링보드와 플랫폼 모두 우승했다.
3. 코치 경력
1968년 하계 올림픽 이후 은퇴한 크레머는 다이빙 코치로 전향하여 마르티나 야슈케, 베아테 얀, 얀 헴펠, 미하엘 큉, 하이코 마이어, 안네트 겜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독일 통일 이후에는 은행원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