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밀 마후아드
1. 개요
자밀 마후아드는 에콰도르의 정치인으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에콰도르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레바논과 독일 혼혈로,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 이수 후 대학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경제 위기를 겪었으며, 미국 달러를 도입하는 개혁을 추진했으나, 빈부 격차 심화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 또한, 페루와의 국경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퇴임 후에는 횡령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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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이름 | 호르헤 하밀 마후아드 비트 |
|---|---|
| 출생일 | 1949년 7월 29일 |
| 출생지 | 로하 |
| 배우자 | 1971년 타티아나 칼데론과 결혼 |
| 자녀 | 파올라 마후아드 칼데론 |
| 정당 | 인민 민주주의 |
| 모교 | 에콰도르 가톨릭 폰티피시아 대학교 |
| 에콰도르 대통령 | 임기 시작: 1998년 8월 10일 임기 종료: 2000년 1월 21일 |
|---|---|
| 이전 | 파비안 알라르콘 |
| 이후 | 구스타보 노보아 |
| 키토 수도 시장 | 임기 시작: 1992년 8월 10일 임기 종료: 1998년 8월 10일 |
| 이전 | 로드리고 파스 |
| 이후 | 로케 세비야 |
| 부통령 | 구스타보 노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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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의 대통령 -
라파엘 코레아
라파엘 코레아는 에콰도르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퇴임 후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에콰도르의 대통령 -
레닌 모레노
레닌 모레노는 에콰도르의 정치인으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하며, 장애인 권익 향상에 힘썼지만 보수 정책 추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실패, 치안 악화, 부패 의혹 등으로 비판받고 재선에 실패했다. -
1949년 출생 -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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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출생 -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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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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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생애와 경력
로하에서 태어났으며, 레바논과 독일계 혈통이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미국 국무부가 주도한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미국 달러를 도입했으며,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은행 계좌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빈민층들이 환전 과정에서 손실을 본 반면, 부유층들은 이득을 봤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임기는 불황으로 점철되었으며,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인플레이션이 60%에 달했다.
대통령 시절 페루와의 역사적인 평화 협정을 체결해 국경 문제를 해결했다. 에콰도르는 리우데자네이루 협정으로 초래된 분쟁 지역의 영유권을 포기하였으며, 페루 또한 1km2의 영역을 에콰도르에 양도하였다. 협정은 1998년 10월 26일 페루에서 체결되었다.
경제 프로그램을 주도한 알베르토 다히크 전 부통령은 "미심쩍은 기금 이용 혐의"를 받고 해외로 망명했으며, 파비안 알라르콘 전 대통령은 1,000개 이상의 가짜 일자리들을 숨긴 혐의로 체포되었다. 마후아드 본인도 대선 기간 동안 마약 밀매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몇몇 은행가들도 연루되었다.
현재 그는 캠브리지 CMI 국제그룹의 수석고문이다.
2014년 5월 사법재판소는 그를 횡령 혐의로 징역 12년 형을 선고했다.
2.1. 학력 및 초기 활동
하버드 대학교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1989년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무부 후원의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장학생이었다. 대학에서 도덕 및 정치를 가르치기도 했다.
2.2. 정치 경력
1988년 대선에 처음으로 도전했으나 5위로 낙선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키토 시장을 역임했다. 1998년 대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당선되었으며, 낙선한 알바로 노보아는 재검표를 신청했으나 관련 기관으로부터 거부당했다.
1998년 ~ 1999년 재정 위기를 포함해 임기 중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으며, 이에 국방 예산을 60% 삭감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998년 10월 60%에 달하던 지지율은 2000년 1월 6%로 주저앉았다. 1999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의 일원으로 미국 달러를 도입했다.
하지만 결국 원주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루시오 구티에레스가 이끄는 군부 쿠데타까지 겹치면서 실각했다.
3. 대통령 재임 (1998-2000)
로하 출신인 마후아드는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당선되었으나, 낙선한 알바로 노보아는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관련 기관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취임 당시 60%에 달했던 지지율은 2000년 1월 6%로 급락했다.
그의 경제 정책을 이끌었던 알베르토 다히크 전 부통령은 "미심쩍은 기금 이용 혐의"로 해외 도피했고, 파비안 알라르콘 전 대통령은 1,000개 이상의 가짜 일자리를 만든 혐의로 체포되었다. 마후아드 자신도 대선 기간 중 마약 밀매업자로부터 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았으며, 여기에는 여러 은행가들도 연루되었다.
3.1. 경제 정책 및 달러화 도입
1998년 ~ 1999년 재정 위기 당시, 국방 예산을 60%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1999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미국 달러를 도입했다.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미국 달러를 도입하고,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은행 계좌를 동결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빈민층이 환전 과정에서 손실을 본 반면, 부유층은 이득을 보면서 큰 논란을 야기했다. 마후아드의 임기 동안 경제는 크게 위축되었고, 인플레이션은 최대 60%에 달했다.
3.2. 페루와의 평화 협정
대통령 시절 페루와의 역사적인 평화 협정을 체결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국경 분쟁을 해결했다. 에콰도르는 리오 프로토콜에 따라 분쟁 지역에 대한 주권을 포기했고, 그 대가로 페루는 1km²의 영토 소유권을 에콰도르에 양도했다. 이 협정은 1998년 10월 26일 페루에서 체결되었다.
4.1. 법적 문제
알베르토 다히크 전 부통령은 "미심쩍은 기금 이용 혐의"를 받고 해외로 망명했으며, 파비안 알라르콘 전 대통령은 1,000개 이상의 가짜 일자리들을 숨긴 혐의로 체포되었다. 마후아드 본인도 대선 기간 동안 마약 밀매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으며, 여기에는 몇몇 은행가들도 연루되었다. 2014년 5월 사법재판소는 그를 횡령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