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창
1. 개요
장부창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여태자의 난 진압 과정에서 공을 세워 제후에 봉해졌다.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으로 여태자가 도주하여 자결했을 때, 장부창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여태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기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제후에 봉해졌으며, 후원 2년(기원전 87년) 도적에게 피살되었다.
-
기원전 87년 사망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기원전 87년 사망 -
효소태후
효소태후는 전한 무제의 후궁으로 소제의 어머니이며, 무제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낳았으나 외척의 발호를 우려한 무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소제가 즉위한 후 태후로 추존되었다. -
전한의 공신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전한의 공신후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열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열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한 여태자는 호(湖)로 달아나 한 민가에 숨어 살았는데, 발각되어 포위되었다. 탈출할 수 없게 되자 여태자는 목을 맸다. 병졸 장부창은 문을 걷어차 열었고, 이수가 급히 줄을 끌러 여태자를 거두었으나, 이미 숨진 후였다. 비록 생포하지는 못하였으나, 공로를 인정받아 장부창은 제후(題侯)에 봉해지고 식읍 858호를 받았다.
후원 2년(기원전 87년), 도적에게 피살되었다.
2.1. 여태자의 난 진압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한 여태자는 호(湖)로 달아나 한 민가에 숨어 살았는데, 발각되어 포위되었다. 탈출할 수 없게 되자 여태자는 목을 맸다. 병졸 장부창은 문을 걷어차 열었고, 이수가 급히 줄을 끌러 여태자를 거두었으나, 이미 숨진 후였다. 비록 생포하지는 못하였으나, 공로를 인정받아 장부창은 제후(題侯)에 봉해지고 식읍 858호를 받았다.
후원 2년(기원전 87년), 도적에게 피살되었다.
2.2. 제후 책봉과 죽음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한 여태자가 호로 달아나 한 민가에 숨어 살았는데, 발각되어 포위되었고 탈출할 수 없게 되자 목을 맸다. 병졸 장부창은 문을 걷어차 열었고, 이수가 급히 줄을 끌러 여태자를 거두었으나, 이미 숨진 후였다. 비록 생포하지는 못하였으나, 공로를 인정받아 장부창은 제후에 봉해지고 식읍 858호를 받았다.
후원 2년(기원전 87년), 도적에게 피살되었다.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2. 부정적 평가
4. 출전
* 반고, 《한서》 권17 경무소선원성공신표·권63 무오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