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 (위위)
1. 개요
이수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무고의 난 진압에 기여하여 우후에 봉해졌다. 정화 2년(기원전 91년) 여태자가 반란을 일으킨 후 도주하여 자결했을 때, 이수는 여태자를 생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 위위 신분으로 장안을 무단으로 벗어나 이광리를 배웅하고 방사를 죽이려 한 죄로 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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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0년 사망 -
유굴리
유굴리는 전한의 관료로, 무고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승상까지 올랐으나 이광리와 함께 창읍왕 유박을 황태자로 옹립하려다 모함으로 요참형에 처해진 비극적인 인물이다. -
기원전 90년 사망 -
유곤치
유곤치는 전한 시대 중산나라의 왕으로, 기원전 54년 또는 기원전 53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44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유보가 중산왕이 되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한 여태자는 호(湖)로 달아나 한 민가에 숨어 살았는데, 발각되어 포위되고 말았고, 탈출할 수 없게 되자 목을 맸다. 병졸 장부창은 문을 걷어차 열었고, 신안령사(新安令史) 이수가 급히 줄을 끌러 여태자를 거두었으나, 이미 숨진 후였다. 비록 생포하지는 못하였으나, 공로를 인정받아 이수는 우후(邘侯)에 봉해지고 식읍 150호를 받았다.
이듬해, 위위 신분으로써 함부로 장안을 빠져나와 이광리를 배웅하고, 또 사람을 시켜 방사를 죽이려 한 죄로 주살되었다.
2.1. 여태자의 난 진압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 당시 여태자 유거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여태자가 호(湖) 지역 민가에 숨어 살다가 발각되어 자결했을 때, 병졸 장부창과 함께 여태자가 있던 곳의 문을 열었고, 신안령사(新安令史)로서 여태자를 생포하려 했다. 비록 여태자는 자결했지만, 이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후(邘侯)에 봉해지고 식읍 150호를 받았다.
2.2. 죽음
기원전 90년, 이수는 위위 신분으로써 함부로 장안을 빠져나와 이광리를 배웅하고, 또 사람을 시켜 방사를 죽이려 한 죄로 주살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권력 암투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3. 평가
4. 출전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권17 경무소선원성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권19하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 下·권63 무오자전(武五子傳)에 이수(李壽)의 출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수는 기원전 90년에 노박덕의 뒤를 이어 전한의 위위가 되었다. 또한 기원전 91년 9월에는 전한의 우후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