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 (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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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수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무고의 난 진압에 기여하여 우후에 봉해졌다. 정화 2년(기원전 91년) 여태자가 반란을 일으킨 후 도주하여 자결했을 때, 이수는 여태자를 생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 위위 신분으로 장안을 무단으로 벗어나 이광리를 배웅하고 방사를 죽이려 한 죄로 주살되었다.

이수 (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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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한 여태자는 (湖)로 달아나 한 민가에 숨어 살았는데, 발각되어 포위되고 말았고, 탈출할 수 없게 되자 목을 맸다. 병졸 장부창은 문을 걷어차 열었고, 신안령사(新安令史) 이수가 급히 줄을 끌러 여태자를 거두었으나, 이미 숨진 후였다. 비록 생포하지는 못하였으나, 공로를 인정받아 이수는 (邘侯)에 봉해지고 식읍 150호를 받았다.

이듬해, 위위 신분으로써 함부로 장안을 빠져나와 이광리를 배웅하고, 또 사람을 시켜 방사를 죽이려 한 죄로 주살되었다.

2.1. 여태자의 난 진압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고의 난 당시 여태자 유거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여태자가 호(湖) 지역 민가에 숨어 살다가 발각되어 자결했을 때, 병졸 장부창과 함께 여태자가 있던 곳의 문을 열었고, 신안령사(新安令史)로서 여태자를 생포하려 했다. 비록 여태자는 자결했지만, 이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후(邘侯)에 봉해지고 식읍 150호를 받았다.

2.2. 죽음

기원전 90년, 이수는 위위 신분으로써 함부로 장안을 빠져나와 이광리를 배웅하고, 또 사람을 시켜 방사를 죽이려 한 죄로 주살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권력 암투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3. 평가

4. 출전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권17 경무소선원성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권19하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 下·권63 무오자전(武五子傳)에 이수(李壽)의 출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수는 기원전 90년에 노박덕의 뒤를 이어 전한위위가 되었다. 또한 기원전 91년 9월에는 전한의 우후를 지냈다.

5. 역임 관직

5.1. 전한

5.2. 우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