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창
1. 개요
장윤창은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로, 인창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78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4강,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기여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스파이크 서브를 전략적으로 시도했으며, 고려증권 배구단에서 활약하며 국내 최고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은퇴 후 배구 행정가, KOVO 경기감독관, 경기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멕시코시티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뉴델리 아시안 게임 동메달,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5위, 서울 아시안 게임 은메달 등의 경력이 있다. 아들 장민국은 농구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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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 장씨 -
장지량 (1924년)
장지량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공군 창설에 기여했으며, 공군참모총장, 외교관, 대한중석광업 사장,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1997년 대한민국 성우회 회장을 지내다 2015년에 사망했다. -
흥덕 장씨 -
장신영
장신영은 2001년 전국 춘향 선발대회에서 현을 수상하고 연기 활동을 시작하여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1960년 출생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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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출생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3. 생애 및 경력
배구 선수로서 처음에는 세터였으나 이후 라이트로 전향하였다. 인창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78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4강 진출과 제8회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스파이크 서브를 전략적으로 시도한 선수였다. 1983년 고려증권에 입단하여 1984년 제1회 대통령배 실업배구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고, 초대 MVP와 Best 6에 선정되었다. 이후 1994년 은퇴할 때까지 고려증권의 5회 우승을 견인하며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은퇴 이후에는 배구 행정가, KOVO 경기감독관, 경기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3.1. 선수 경력
배구 선수로서 처음에는 세터로 시작했으나, 이후 라이트로 전향하였다. 인창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78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4강 진출과 제8회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스파이크 서브를 전략적으로 시도한 선수였다.
1983년 고려증권에 입단하여 1984년 제1회 대통령배 실업배구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고, 초대 MVP와 Best 6에 선정되었다. 이후 1994년 은퇴할 때까지 고려증권의 5회 우승을 견인하며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3.1.1. 주요 국제 대회 경력
| | 결과 | |
|---|---|
| 1978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 4위 |
| 1978년 방콕 아시안 게임 | 금메달 |
| 1979년 멕시코시티 유니버시아드 | 금메달 |
|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 동메달 |
| 1984년 LA 올림픽 | 5위 |
|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 은메달 |
| 1988년 서울 올림픽 |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