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장 롤랭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 롤랭(Jean Rollin, 1938년 11월 3일 ~ 2010년 12월 15일)은 프랑스의 영화 감독, 작가이다. 주로 뱀파이어, 성, 묘지, 피 등의 소재를 활용하여 에로틱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초기작 《뱀파이어의 강간》(1968년)을 시작으로 《리빙 데드 걸》(1982년)과 같은 컬트 영화를 만들었다. 롤랭은 저서 활동도 활발히 하였으며, 2010년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출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뇌이쉬르센 출신 - 클로드 브라쇠르
    클로드 브라쇠르는 193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배우로, 15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1960년대 봅슬레이 선수, 파리-다카르 랠리 우승 경력도 있고, 영화 《라 붐》 시리즈에 출연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2020년 사망했다.
  • 뇌이쉬르센 출신 - 장폴 벨몽도
    장폴 벨몽도는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배우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액션 배우로서 프랑스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영화 제작자이다.
  • 공포 영화 감독 - 브라이언 드 팔마
    브라이언 드 팔마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향을 받아 서스펜스와 독특한 편집 기법이 돋보이는 영화들을 연출하며 `캐리`, `스카페이스`, `언터처블`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으나, 폭력적인 묘사와 여성 혐오적 시각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는 뉴 할리우드 세대의 미국 영화 감독이다.
  • 공포 영화 감독 - 로저 코먼
    로저 코먼은 300편 이상의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고 50편 이상을 연출한 미국의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로, 특히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픽처스(AIP)를 통해 공상과학, 공포 영화 등을 제작하고, 뉴 월드 픽처스를 설립하여 독립 영화 제작 및 배급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등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영향을 끼쳐 '로저 코먼 영화 학교'라는 유산을 남겼다.
  • 프랑스의 영화 각본가 - 로베르 브레송
    로베르 브레송은 아마추어 배우를 '모델'로 활용하는 독자적인 연출, 가톨릭 신앙에 영향받은 구원과 영혼에 대한 주제,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영화 감독이다.
  • 프랑스의 영화 각본가 - 에릭 로메르
    에릭 로메르는 프랑스 뉴웨이브의 중심 인물이자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그리고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 등의 연작을 통해 인간관계와 감정의 미묘함을 탐구한 영화감독, 영화 평론가, 소설가이다.
장 롤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장 롤랭
본명장 미셸 롤랭 로트 르 젠틸
출생일1938년 11월 3일
출생지프랑스, 오드센주, 뇌이쉬르센
사망일2010년 12월 15일
사망지프랑스, 파리
배우자시몬 롤랭
자녀2명
직업감독, 배우, 작가
활동 기간1957년–2010년
공식 웹사이트공식 사이트
다른 이름

2. 초기 생애

장 롤랭은 프랑스 뇌이쉬르센(현재 오드센)에서 태어났다.[2] 아버지 클로드 루이 르네 롤랭-로스-르 장티유는 배우이자 극장 연출가였으며, 클로드 마틴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어머니 데니즈(결혼 전 성은 르프로이)는 예술가들의 모델이었다.[2] 그의 이복형제 올리비에 롤랭은 배우였으며, "올리비에 마르탱"이라는 예명으로 롤랭의 영화 몇 편에 출연했다. 어머니 데니스 로랭-르-장티는 조르주 바타유의 애호가였다.

롤랭의 영화는 프랑스와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 미국의 고전 호러, 옛 연재물, 만화, 환상 문학, 초현실주의 예술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판타지 영화는 시각적 시와 같았으며, 관능적인 공포와 기괴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최소한의 대화와 단순하지만 기억에 남는 음악, 느린 템포는 초현실적이고 꿈결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제한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롤랭은 센마리팀주 디에프 해변, 웅장한 성, 전원 지방, 고딕적인 분위기의 묘지 등 훌륭한 로케이션에서 촬영했다. 그는 F.W. 무르나우처럼 호러 장르, 특히 흡혈귀물의 양식을 통해 특이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그의 영화에서 결말, 줄거리, 대화, 이야기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초기에는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첫 영화 ''The Rape of the Vampire (Le Viol du vampire)''는 관객들의 야유와 스크린에 쓰레기를 던지는 등의 소동을 일으켰다.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롤랭이 영화 일을 그만둘 것을 고려하게 할 정도였다. 이후 몇 편의 영화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프랑스 영화 평론가들은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경멸하는 "Rollinade"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팬들은 이 단어를 자랑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고상한 예술과 에로틱한 공포가 혼합된 롤랭의 독특한 세계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에로티시즘을 영화에 도입하는 능력 덕분에 프랑스 성인 영화 초창기에 성인 영화 감독으로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롤랭은 미셸 장티, 미셸 간, 로베르 자비에르 등 다양한 예명을 사용하며 1973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소프트코어/코미디 복합 작품부터 하드코어 포르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인 영화를 감독했다. 1975년 ''Phantasmes''는 잘 짜여진 이야기를 가지고 정통 배우를 기용한 성인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였으나, 일반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롤랭은 자금 조달을 위해 제작자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진지한 영화(''피에 젖은 입술 (Lèvres de sang)'', ''엽기 살인의 밤 (La Nuit des traquées)'')의 성인 버전을 몇 편 제작하기도 했다.

''Vibrations sensuelles'' 제작 중, 롤랭은 프랑스 성인 배우 브리지트 라예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하여, 차기 호러 영화인 1978년 ''살육 사육제/시육의 만찬 (Les Raisins de la mort)''에 출연을 제안했다. 라예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이후 롤랭과 오랫동안 직업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롤랭은 프랑스 잡지 "Fascination"과 "Sex Stars System"의 편집장인 장-피에르 부이소(Jean-Pierre Bouyxou)와 자주 공동 작업을 했다.

전 세계에서 영화가 DVD화되면서 롤랭은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고 비평적, 학술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8년 당시 그는 파리에 살고 있었으며, 2000년대에도 몇 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2010년 12월 15일에 급서했다.[35]

3. 경력

롤랭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는데, 그것은 아벨 강스가 감독한 1942년작 영화 《선장 프라카스》(Capitaine Fracasse)였다. 롤랭은 자라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연극 배우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십 대 시절 그는 연속극에 대한 강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만화책을 읽었다.

16세 때 그는 ''레 필름 드 사튀른''(Les Films de Saturne)에서 일자리를 얻어 청구서를 작성하며 약간의 돈을 벌었지만,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짧은 만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전문으로 했지만, 산업 단편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실제 영화도 촬영했다. 롤랭은 프랑스의 대형 공장인 ''스넥마''(Snecma)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는데, 이곳은 엔진과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는 트래킹 샷을 배열하고, 레일을 깔고, 전기를 점검하고, 촬영 기사를 도왔다.

롤랭이 프랑스군에서 군 복무를 할 때 그는 클로드 를루슈와 함께 영화 부서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그들은 를루슈가 감독하고 롤랭이 편집하는 군 광고를 제작했다. 그들은 또한 다큐멘터리인 《메카노그래피》(Mechanographie)와 배우와 스토리가 있는 실제 영화인 《침묵의 전쟁》(La Guerre de Silence)이라는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58년 군대를 떠난 후 그는 첫 번째 단편 영화 《노란 연인들》(Les Amours Jaunes)을 연출했다. 그는 35mm 영화 필름인 모리그라프(Maurigraphe) 카메라로 이 영화를 촬영했으며, 그의 후기 영화에서도 사용된 디에프의 해변을 촬영 장소로 사용했다.


  • Jean Rollin, le reveur egare (2009년)
  • 더 나이트 오브 클락스 (2007년)
  • 엠마뉴엘 6 (1988년)
  • 리빙 데드 걸 (1982년)
  • 사냥감의 밤 (1980년)
  • 악령의 늪 (1980년)
  • 죽음의 포도 (1978년)
  • 피 묻은 입술 (1975년)
  • 플라이 미 더 프렌치 웨이 (1974년)
  • 산송장 속의 처녀 (1973년)
  • 스트레인지 씽즈 해픈 앳 나이트 (1971년)
  • 르 비올 두 뱀파이어 (1968년)

3. 1. 초기 경력 (1950년대 ~ 1960년대 초)

1960년, 롤랭은 첫 장편 영화를 연출하기로 결심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완성을 하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포기했다.[3] 그의 다음 단편 영화인 《구리의 하늘》(''Ciel de Cuivre'')은 1961년에 연출되었는데,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상당히 초현실적이었다. 그는 자금 부족과 영화의 낮은 완성도로 인해 이 영화를 끝내지 못했다. 현재 이 영화의 필름은 유실되었다.[3]

1962년, 그는 영화 《두 마리의 말을 위한 말》(''Un Cheval pour Deux'')의 조감독을 맡았지만, 그다지 좋은 경험은 아니었고, 그는 영화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결심했다.[3] 1960년대 초, 롤랭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64년에 단편 다큐멘터리 《스페인에서 살기》(''Vivre en Espagne'')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에 관한 내용으로, 30분 분량이 촬영되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롤랭과 제작진은 경찰에게 쫓기는 상황에 놓였고, 간신히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3] 장은 또한 1965년에 《멀리 떨어진 나라들》(''Les Pays Loins'')이라는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3]

2007년 7월 15일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 전의 롤랭


1968년, 장은 그의 첫 장편 영화 《뱀파이어의 강간》(''Le viol du vampire'')을 연출했다. 당시 그는 몇 편의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만 제작했을 뿐, 영화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촬영되었으며, 원래는 또 다른 단편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두 번째 부분은 나중에 추가되어 장편 영화로 개봉되었다.[3] 《뱀파이어의 강간》의 개봉은 대중의 분노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고, 그가 강하게 영감을 받은 미국 연속극은 관객을 끌지 못했다. 이 영화는 1968년 5월 사건 당시 개봉되었으며, 폭동으로 인해 당시에는 흔치 않은 극장 상영을 했다. 롤랭 자신도 이 스캔들로 인해 위협을 받았고,[4] 이 때문에 잠시 영화 제작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3]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누드 뱀파이어》(''La vampire nue'')는 그의 첫 번째 컬러 영화였다. 이 영화는 주로 1916년 영화 《쥬덱스》와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받았다. 롤랭은 《뱀파이어의 강간》보다 조금 더 절제된 전통적인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어쨌든, 그가 직접 말했듯이, 이 영화는 그의 첫 번째 장편 영화와 같은 종류가 되었고, 같은 정신을 담고 있다.[3] 《누드 뱀파이어》는 또한 롤랭의 초기 경력에 자주 협력했던 카트린과 마리-피에르 카스텔이라는 쌍둥이 자매를 소개한 작품으로도 주목받았다.[3]

《누드 뱀파이어》 이후, 롤랭은 재정적 위기에 직면했고, 제작 중 사고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필름 모던(Films Moderns) 회사의 소유주인 프로듀서 모니크 나탄을 만나면서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나탄은 롤랭을 믿고 지지하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가장 저명한 영화 제작자들의 자금 지원 제안을 거절하고, 다음 프로젝트인 《뱀파이어의 전율》(''Le Frisson des Vampires'')의 프로듀서이자 공동 시나리오 작가로서 롤랭을 전적으로 지원했다. 이 영화는 히피 운동의 특징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롤랭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많은 주제를 유지했으며, 롤랭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인 배우 도미니크가 낡은 괘종시계에서 나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제작은 피카르디 지방 앤 주의 수아송[5]에 있는 버려진 성에서 진행되었다.[3]

3. 2. 장편 영화 데뷔와 논란 (1960년대 후반)

1960년, 장 롤랭은 첫 장편 영화를 연출하기로 결심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1961년에 연출한 단편 영화 《구리의 하늘》(''Ciel de Cuivre'')은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초현실적이었으나, 자금 부족과 낮은 완성도로 인해 필름이 유실되었다.[3] 1962년, 영화 《두 마리의 말을 위한 말》(''Un Cheval pour Deux'')의 조감독을 맡았지만, 좋지 않은 경험으로 영화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1960년대 초, 롤랭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1964년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 《스페인에서 살기》(''Vivre en Espagne'')를 제작했다. 제작 과정에서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으며, 경찰에게 쫓기다가 간신히 프랑스로 돌아왔다.[4] 1965년에는 《멀리 떨어진 나라들》(''Les Pays Loins'')이라는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1968년, 장 롤랭은 첫 장편 영화 《뱀파이어의 강간》(''Le viol du vampire'')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으며, 원래 단편 영화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3] 《뱀파이어의 강간》은 1968년 5월 사건 당시 개봉되어 대중의 분노와 스캔들을 일으켰으며, 롤랭은 이로 인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4]

두 번째 장편 영화 《누드 뱀파이어》(''La vampire nue'')는 롤랭의 첫 컬러 영화였다. 이 영화는 1916년 영화 《쥬덱스》와 초현실주의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롤랭은 《뱀파이어의 강간》보다 절제된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종류의 영화가 되었다. 《누드 뱀파이어》는 카트린과 마리-피에르 카스텔 쌍둥이 자매가 출연한 작품으로도 주목받았다.

《누드 뱀파이어》 이후, 롤랭은 재정적 위기와 제작 중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겪었다. 하지만 프로듀서 모니크 나탄의 지원으로 다음 프로젝트인 《뱀파이어의 전율》(''Le Frisson des Vampires'')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히피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며, 피카르디 지방 앤 주의 수아송[5]에 있는 버려진 성에서 촬영되었다.

3. 3. 1970년대: 뱀파이어 영화와 에로티시즘

1971년, 롤랭은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영화 중 하나인 ''뱀파이어의 진혼곡''(Requiem pour un vampire)을 연출했다.[6] 이 영화는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제작된 저예산 작품으로, 처음 40분 동안 대사가 없었다. 롤랭은 "궁극적으로 순수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단순화하고 연출 및 촬영 기법을 간소화했다고 한다.[6] 원래 롤랭은 주요 여성 배역 중 한 명을 카서린 카스텔에게 맡기려 했으나, 그녀의 임신으로 인해 마리-피에르에게 역할이 돌아갔다. 두 번째 여성 배역은 미레이유 다르장에게 돌아갔는데, 롤랭은 에이전트를 통해 그녀를 소개받았다.[6] 롤랭은 다르장의 에이전트가 그녀의 임금을 가로채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변호사를 통해 임금을 돌려받도록 했다.[6] ''진혼곡''은 크레브쾨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촬영되었으며, 묘지는 마을 외곽의 작은 언덕에, 성은 라 로슈-귀용 공작 부인에게서 임대한 역사적인 장소였다.[6] 롤랭과 제작진은 성이 아닌 지하 감옥의 폐허에 관심을 가졌다.[6]

디에프에 위치한 해변은 롤랭의 여러 영화에서 자주 사용된다.


''뱀파이어의 진혼곡'' 이후, 롤랭은 일시적으로 에로틱 뱀파이어 장르와 관련된 영화 제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73년에는 영화 ''철의 장미''(La rose de fer)를 직접 자금을 지원하여 제작했으나, 이는 재정적 파탄을 초래할 실패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7] 그는 ''철의 장미'' 제작 전, Impex 영화사와 계약하여 다수의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를 연출하기로 했다.[7] ''철의 장미''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기로 한 두 젊은 연인 (프랑수아즈 파스칼과 위그 케스터)이 거대한 묘지에서 산책하며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다룬다.[7] 밤이 되면서 그들은 묘지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결국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오고, 히스테리와 편집증에 사로잡혀 죽음을 맞이한다.[7] 이 영화는 아미앵에서 4주 동안 촬영되었고, 1973년 4월 파리에서 열린 제2회 판타스티크 연례 컨벤션에서 초연되었으나 부정적인 반응을 얻어, 롤랭은 개인 프로젝트를 후원할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7]

롤랭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미셸 젱틸이라는 가명으로 성인 영화 ''무분별한 여고생들''(Jeunes filles impudiques), ''수직 미소''(Le sourire vertical), ''모두 두 개를 가지고 있어''(Tout le monde il en a deux, 또는 ''Bacchanales sexuelles'' 또는 ''Fly Me the French Way'')를 연출했다. 1974년, 롤랭은 젊은 시절 존경했던 모험 고전에서 영감을 얻은 호러 어드벤처 영화 ''악마들''(Les démoniaques)을 연출했다.[8] 이 영화에는 조엘 쾨르와 윌리 브라크가 출연하며, 난파된 두 젊은 여성이 해적에게 잔혹하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하지만, 악마와 사랑을 나눈 후 부활하여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8] 롤랭은 제작 과정에서 저예산을 고집하는 제작자들과 갈등을 겪었고, 정신적, 육체적 탈진으로 2주 동안 입원하기도 했다.[8] 또한, 작업 제목 저작권 문제와 카스텔 쌍둥이를 기용할 수 없게 되면서, 미숙한 여배우들에게 배역이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했다.[8]

1975년, 롤랭은 ''피의 입술''(Lèvres de sang)을 쓰고 연출하며 에로틱 뱀파이어 장르로 돌아왔다.[9] 이 영화는 초현실적인 몽환적인 측면을 담고 있으며, 폐허가 된 샤토의 사진을 발견한 후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을 찾아 나서는 프레데릭이라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9] ''피의 입술''에는 장-루 필리프, 애니 벨, 나탈리 페리가 출연하며, 카스텔 쌍둥이가 뱀파이어 집단의 일원으로 다시 등장한다.[9]

''철의 장미''와 ''피의 입술''의 상업적 실패로 인해, 롤랭은 재정적인 이유로 성인 영화 ''환상''(Phantasmes, 또는 ''Once Upon a Virgin'')을 연출했다.[9] 그는 이 영화가 "성적 농담만 하는" 영화가 아닌 "진지한" 성인 영화에 대한 "최초이자 마지막 시도"라고 언급했다.[9] 1976년부터 1977년까지 롤랭은 돈 부족과 이전 상업적 실패로 인해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 제작에 집중했다. 미셸 젱틸이라는 가명으로 7편의 포르노 영화를 제작했으며, 그 중 하나인 ''나를 빨아줘 뱀파이어''(Suce moi vampire, ''피의 입술''의 하드코어 버전)는 미셸 간드라는 이름으로 크레딧했다.

1978년, 장 롤랭은 프랑스 최초의 고어 영화로 여겨지는 ''죽음의 포도''(Les raisins de la mort)를 쓰고 연출하며 돌아왔다.[10] 이 영화는 그의 몽환적이고 시적인 작품에서 벗어난 드문 시도로, 약혼자의 포도원으로 여행을 떠나는 젊은 여성 엘리자베스(마리-조르주 파스칼)가 마을 주민들이 살충제로 인해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룬다.[10] 이 영화에는 브리짓 라에가 출연하며, 롤랭은 그녀의 연기 능력을 알아보고 후속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제안했다.[10] 롤랭은 ''죽음의 포도''가 "첫 번째 전통적인, 거의 관습적인 제작"이라고 말했으며, 클로드 베코니가 촬영 감독을 맡았다.[10] 롤랭은 마리-조르주 파스칼의 연기가 영화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고 회상했다.[10] ''죽음의 포도''는 세벤의 황량한 산악 지역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언급되지만, 호르헤 그라우의 ''죽은 시체들이여 잠들게 하라 (영화)''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롤랭의 좀비는 환경 의식을 강조하며, "그들의 의식을 유지"하고 "그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통받는다".[10]

롤랭과 여배우 브리짓 라에의 가장 잘 알려진 콜라보레이션 중 하나인 ''매혹 (1979년 영화)''(Fascination, 1979)의 상징적인 장면.


1979년, 롤랭은 ''매혹 (1979년 영화)''(Fascination)을 만들었다.[11] 이 영화는 프랑스 시인 장 로랭의 단편 소설 ''피 한 잔''(Un verre de sang)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세기 초 프랑스 부자들이 빈혈 치료를 위해 황소의 피를 마시는 이야기를 다룬다.[11] 영화 제목은 에로티시즘을 다루는 프랑스 잡지 ''Fascination''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11] 롤랭의 ''매혹''은 1905년, 부유한 파리 여성들이 황소의 피를 마시기 위해 도살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심 이야기는 버려진 성에 살고 있는 두 하녀, 엘리자베스와 에바(프랑카 마이와 브리짓 라에)를 따라간다. 도둑 마크(장-피에르 르메르)가 침입하고 에바와 사랑을 나누지만, 에바는 도둑들과 거래를 위해 낫을 휘두르며 그들을 살해한다. 엘리자베스와 에바는 여성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관능적인 사랑을 나누며, 인간의 피를 탐닉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매혹''은 뱀파이어 장르로 언급되지만, 피를 마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롤랭의 초기 뱀파이어 영화 요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11] 제작은 순탄치 않았지만, 롤랭은 공동 제작자가 판타지 요소보다 노골적인 성적 영화를 만들기를 원했던 장애물을 극복하고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11] 제작진에는 나탈리 페리와 필립 다람이 포함되었다.[11] ''매혹''은 성공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프랑스 배급사 UGC의 이사가 상영을 취소하면서 롤랭에게 또 다른 재정적 실패를 안겨주었고, 그는 1970년대 말까지 포르노 작품을 재개했다.[11]

3. 4.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좀비 영화와 다양한 시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 롤랭은 1980년 여름, 사냥당한 밤(The Night of the Hunted)을 발표했다. 포르노 배우 브리지트 라에이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롤랭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복귀하는 것을 보여주었다.[12] 이 영화는 롤랭의 작품 목록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판타지 장르에서 벗어나 시적이지만 현실적인 어조와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라에이는 기억을 잃어버린 젊은 여성 엘리자베스 역을 맡았으며, 엘리자베스는 로버트(뱅상 가르데르)와 사랑을 나누지만, 다음날 엘리자베스는 병원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환자들은 환경 사고로 오염된 질병으로 인해 병원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롤랭은 제작비를 절감하고 배우들에게 그들의 정당한 재능을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포르노 산업의 배우들을 이 영화에 캐스팅했다.[12] 이 영화는 초기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트리에스테의 영화제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14] 롤랭 자신은 이 영화를 그의 최악의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1980년, 롤랭은 J.A. 라저라는 가명으로 스페인 좀비 공포 영화 죽은 자들의 호수(일반적으로 ''좀비 호수''로 알려짐)를 연출했다.[15] 원래 헤수스 프랑코가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롤랭이 대신하게 되었다. 롤랭은 이 영화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1981년, 롤랭은 드라마 영화 도망자들(The Escapees)을 통해 그의 영화가 유명한 일반적인 공포 톤에서 벗어나 드라마와 모험, 스릴러, 범죄 요소를 혼합했다. 이 이야기는 정신 병원에서 탈출한 두 젊은 여성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은 부르레스크 댄서, 바 가수, 마리를 강간하는 여성 그룹을 만난다. 롤랭은 이 영화에 대해 "믿을 수 없는 엉망진창"이라고 말했다.[16]

1982년의 롤랭


1982년, 그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The Living Dead Girl)는 그의 가장 상업적이고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롤랭은 뱀파이어와 같은 여성이 인간의 피를 먹는 존재로, 뱀파이어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지만 정확히 뱀파이어로 만들지는 않았다. 프랑수아즈 블랑샤르는 죽음에서 돌아온 캐서린 발몽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18] 이 영화는 극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이탈리아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21]

1984년, 방콕의 산책로(The Sidewalks of Bangkok)는 롤랭의 전통적인 초자연적, 공포, 판타지 장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드문 작품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비밀 정보국과 그녀가 소유한 치명적인 화학 물질을 간절히 원하는 라이벌 신디케이트로부터 도망치는 에바(요코)의 이야기를 다룬다.

롤랭은 1985년에 ''Ne prends pas les poulets pour des pigeons''라는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를, 1988년에는 에로틱 속편 엠마뉴엘 6의 연출을 맡았다.[24]

1989년, 롤랭은 뉴욕에서 길을 잃다(Lost in New York)를 만들었다. 롤랭은 이 영화가 "내 영화에서 사용한 모든 테마와 강박적인 이미지의 앤솔로지"라고 언급했다.[25]

1980년대 그의 마지막 영화인 킬링 카(가제 Femme dangereuse)는 1989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복수 스릴러이며 그의 과소평가되고 간과된 작품 중 하나이다. 브리즈번, 퀸즐랜드 출신의 호주 모델 티키 챵이 "The Car Woman" 역할을 맡았다.[26]

3. 5. 1980년대 후반 ~ 2000년대: 후기 작품 활동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 롤랭은 사냥감의 밤(''The Night of the Hunted'')을 발표하며 10년을 시작했다. 이 영화는 포르노 배우 브리지트 라에이가 주연을 맡았으며, 데뷔 당시에는 실패작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팬층을 확보했다.[12] 낮은 예산으로 촬영되었으며, 롤랭은 포르노 산업의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제작비를 절감했다.[12] 이 영화는 판타지 장르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현실적인 어조와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12] 라에이는 기억을 잃은 젊은 여성 엘리자베스 역을 맡았으며, 엘리자베스는 환경 사고로 오염된 질병으로 인해 병원에 갇혀 있는 환자 중 한 명이었다.[12]

롤랭은 J.A. 라저라는 가명으로 스페인 좀비 공포 영화 죽은 자들의 호수(''좀비 호수'')를 연출했다.[15] 헤수스 프랑코가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롤랭이 대신하게 되었다.[15] 롤랭은 이 영화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영화에는 프랑코 영화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15]

1981년, 롤랭은 드라마 영화 도망자들(The Escapees)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정신 병원에 갇힌 두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며, 에로틱하고 시적인 테마를 유지하면서 드라마, 모험, 스릴러, 범죄 요소를 혼합한다.[16]

1982년, 살아있는 시체(''The Living Dead Girl'')는 그의 가장 상업적이고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17] 롤랭은 뱀파이어와 같은 여성이 인간의 피를 먹는 존재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17] 이 영화는 지진으로 인해 부활한 캐서린 발몽(프랑수아즈 블랑샤르)이라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17] 캐서린은 광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인간의 피를 마셔야 하며, 어린 시절 친구 엘렌(마리나 피에로)의 기억을 떠올린다.[17]

1984년, 방콕의 산책로(''The Sidewalks of Bangkok'')는 초자연적, 공포, 판타지 장르가 아닌 작품으로, 모험, 범죄, 미스터리, 만화적 판타지를 주제로 한다.[23] 이 영화는 프랑스 비밀 정보국과 치명적인 화학 물질을 원하는 라이벌 신디케이트로부터 도망치는 에바(요코)의 이야기를 다룬다.[23]

1985년, 롤랭은 슬랩스틱 코미디 ''Ne prends pas les poulets pour des pigeons''를 "미셸 장틸"이라는 가명으로 연출했다.[24] 1988년에는 에로틱 속편 엠마뉴엘 6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24]

1989년, 롤랭은 뉴욕에서 길을 잃다(''Lost in New York'')를 만들었다.[25] 이 영화는 두 젊은 여성이 헤어져 서로를 찾는다는 테마를 다룬다.[25] 같은 해, 롤랭은 복수 스릴러 킬링 카(가제 ''Femme dangereuse'')를 제작했다.[26] 이 영화는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에 거주한 호주 모델 티키 챵이 오직 이 영화만을 위해서 롤랭이 특별히 배역을 만들어서 출연한 영화이다.[26]

1994년, 롤랭은 마지막 성인 영화 ''Le Parfume de Mathilde'' (''마틸드의 향기'')의 시나리오를 쓰고 공동 감독했다.[27] 이후 롤랭은 1995년에 Les deux orphelines vampires(''두 고아 뱀파이어'') 제작에 들어갔다.[28] 이 작품은 1975년 ''Levres de sang'' 이후 그의 첫 번째 뱀파이어 영화였다.[28]

1999년, 롤랭은 ''La fiancée de Dracula'' (''드라큘라의 약혼녀'') 제작에 들어갔다.[29] 롤랭은 신장병으로 투석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촬영 장소는 쇼지 섬, 에피네-샹플라트뢰의 묘지, 센에마른의 블랑디 성, 푸르빌-레-디에프 항구 등이었다.[29] 2000년 10월에 신장 이식을 받은 후, 영화는 2002년 8월 14일에 극장에서 상영되었다.[29]

4. 개인사와 죽음

롤랭은 시몬 롤랭 로스 르 엉틸(결혼 전 성은 모렐)과 결혼하여 두 아들, 세르주와 카렐을 두었다.[30][33] 그는 사망할 때까지 시몬과 결혼 관계를 유지했다.

롤랭은 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2010년 12월 15일에 사망했으며, 부인 시몬, 아들 세르주, 손녀 가브리엘을 유족으로 남겼다.[31] 그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롤랭의 아들 카렐(1973–2001),[32][33] 그의 부인 시몬(1934–2016)도 함께 잠들어 있다.

5. 작품 세계와 평가

장 롤랭은 주로 뱀파이어, 성, 묘지, 피 등의 소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에로틱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초기작인 르 비올 두 뱀파이어(1968년)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1970년대에는 산송장 속의 처녀(1973년), 피 묻은 입술(1975년) 등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1980년대에는 사냥감의 밤(1980년), 리빙 데드 걸(1982년)과 같은 작품을 통해 컬트 영화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리빙 데드 걸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에도 엠마뉴엘 6(1988년)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꾸준히 활동했다. 2000년대에는 더 나이트 오브 클락스(2007년)과 Jean Rollin, le reveur egare(2009년) 등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은 종종 난해하고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독창적인 영상미와 분위기로 인해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6. 작품 목록

원제개봉 연도감독각본영어 제목참고
[34]



장 롤랭의 주류 작품 목록이며, 감독과 작가로서의 작품이다. 그의 가명이나 포르노 작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 1968년 - 『뱀파이어의 강간 (''Le Viol du vampire'')』
  • 1969년 - 『''벌거벗은 뱀파이어''』
  • 1970년 - 『최음 뱀파이어 (''Le Frisson des vampires'')』
  • 1971년 - 『레퀴엠 (''Requiem pour un vampire'')』
  • 1971년 - 『악마의 종파』
  • 1972년 - 『''철의 장미''』
  • 1973년 - 『''무례한 소녀들''』
  • 1973년 - 『''수직 미소''』
  • 1973년 - 『''별똥별의 밤''』
  • 1974년 - 『''모두가 두 개를 가지고 있다''』
  • 1974년 - 『저주받은 강간마 (''Les Démoniaques'')』
  • 1974년 - 『''모두가 두 개를 가지고 있다''』
  • 1975년 - 『''환상''』
  • 1975년 - 『피에 젖은 입술 (''Lèvres de sang'')』
  • 1976년 - 『부드러운 침투』
  • 1976년 - 『나를 빨아 뱀파이어』
  • 1976년 - 『라 콩테스 익스』
  • 1976년 - 『집단적 사랑』
  • 1977년 - 『하드 침투』
  • 1977년 - 『''감각적 진동''』
  • 1977년 - 『''나를 뛰어넘어''』
  • 1977년 - 『''덴마크의 포지션''』
  • 1978년 - 『살육 사육제/시육의 만찬 (''Les Raisins de la mort'')』
  • 1978년 - 『''디스코 섹스''』
  • 1978년 - 『''나를 채워줘... 세 구멍을''』
  • 1978년 - 『''무례한 어린 연금술사''』
  • 1978년 - 『''반쯤 벌어진 입술''』
  • 1978년 - 『''걸신 들린 입술''』
  • 1978년 - 『''과도한 침투''』
  • 1979년 - 『''뜨거운 소녀들''』
  • 1978년 - 『미녀의 꿈틀거림/선혈에 물든 사령의 저택 (''Fascination'')』
  • 1979년 - 『''음란하고 외설적인 입''』
  • 1979년 - 『''사악한 침투''』
  • 1979년 - 『''숙련된 소녀들을 위한 어른들의 게임''』
  • 1979년 - 『''빨리 들어와... 빨리, 젖어!''』
  • 1980년 - 『엽기 살인의 밤 (''La Nuit des traquées'')』
  • 1981년 - 『''Les Échapées (aka Les Paumées Du Petit Matin aka Fugue Mineure aka ACouteaux Tirés)''』
  • 1980년 - 『Mondo Cannable'')』
  • 1980년 - 『특별한 관리를 위한 클리닉'')』
  • 1980년 - 『Minouche, fillette insatiable'')』
  • 1981년 - 『나치 좀비/흡혈 기갑 사단 (''Le Lac des Morts Vivants'')』
  • 1981년 - 『Les paumées du petit matin'')』
  • 1982년 - 『좀비 퀸/마계의 먹이 (''La Morte vivante'')』
  • 1982년 - 『''섹스의 꿈''』
  • 1983년 - 『''소도마니''』
  • 1983년 - 『''항문 광기''』
  • 1984년 - 『엔젤 캅스/방콕에서 사랑을 담아 (''Les Trottoirs de Bangkok'')』
  • 1985년 - 『''비둘기를 비둘기로 생각하지 마세요''』
  • 1988년 - 『''엠마뉴엘 6''』
  • 1989년 - 『''뉴욕에서 길을 잃다''』
  • 1990년 - 『''호루스의 발톱''』
  • 1991년 - 『''바바라를 쫓아서''』
  • 1992년 - 『''트레파나토''』
  • 1992년 - 『''외계인 부대''』
  • 1993년 - 『''킬링 카''』
  • 1993년 - 『''심해에서 온 공룡''』
  • 1994년 - 『''마틸드의 향수''』
  • 1995년 - 『''두 뱀파이어 고아''』
  • 2002년 - 『''드라큘라의 신부''』
  • 2007년 - 『''시계의 밤''』
  • 2010년 - 『''여성 처형자''』
  • 2010년 - 『''메두사의 가면''』


그의 모든 작품, 제작 및 연기 크레딧을 포함한 전체 목록은 장 롤랭 필모그래피를 참조.

7. 저서

장 롤랭(Jean Rollin)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저술했다. 1990년에는 《어떤 얼굴의 시대》를 출판했다. 1993년에는 《두 뱀파이어 고아》를 출간했으며, 같은 시리즈로 ''Anissa'', ''Les Voyageuses'', ''Les Pillardes'', ''Les Incendiaires'' 등이 있다. 1996년에는 《생생한 그림자》를 출판했다. 1998년에는 조르주 바타유, 모리스 블랑쇼, 미셸 파르두리스-라그랑주에 대한 회고록인 《끝없는 대화》를 출간했다. 같은 해, 《생일의 악몽》, 《몽세뇨르 쥐 소설》, 미셸 솔리에가 그림을 그린 《카브리올레가 사라졌다》, 《개인적인 지옥》, 《살덩이의 조각상》을 출간했다.

1999년에는 《산책자 소설》을, 2001년에는 《장-피에르 부유크스의 삶과 모험》, 《투아하》, 《음울한 가르구이(불의 샘을 위하여)》, 《고리 던지는 소녀》를 출간했다. 2003년에는 《에스텔과 에드비제, 기이한 아가씨들》을, 2004년에는 《진실은 없다》, 《장-피에르 부유크 대 붉은 가면을 쓴 여자》, 《번개의 도둑들》을 출간했다. 2006년에는 《앨리스와 알라딘, 불가능의 탐정》을, 2005년에는 《무분별》, 《야만성》을 출간했다. 2007년에는 《작은 오그레스》를, 2008년에는 회고록 《모터 컷!: 독특한 영화 제작자의 회고록》을, 2009년에는 《광대의 공》을 출간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장 롤랭: 완전 작품집 1권》과 《장 롤랭: 완전 작품집 2권》을 출간했다.

피터 블루멘스톡이 편집한 《처녀와 뱀파이어: 장 롤랭》에는 장 롤랭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으며, 영화 《두 뱀파이어 고아》의 사운드트랙 CD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300부 한정판으로, 장 롤랭의 친필 서명이 담겨 있다. 1995년에는 피터 블루멘스톡이 롤랭을 인터뷰한 내용이 《비디오 워치독 #31》에 실렸다. 캐설 토힐과 피트 톰스는 1994년 저서 《부도덕한 이야기: 유럽 성과 호러 영화 1956-1984》에서 롤랭에게 한 챕터를 할애했다.

참조

[1] 웹사이트 Jean Rollin Biography, Film & Books https://www.myspace.[...] Myspace 2010-08-22
[2] 웹사이트 Jean Rollin Full Biography https://web.archive.[...] 2010-12-29
[3] 웹사이트 The Rape of the Vampire (1968) https://web.archive.[...] monstersatplay.com 2010-12-29
[4] 웹사이트 Sous la páve, le pláge!: Lesbian Vampires Vs Situationist International https://web.archive.[...] sensesofcinema.com 2010-12-29
[5]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Le Frisson des Vampires (1971) http://requiemforjea[...] 2016-10-09
[6]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Two 2005
[7] 웹사이트 Jean Rollin's The Iron Rose http://mooninthegutt[...] 2016-10-08
[8]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Les Demoniaques (1974) http://requiemforjea[...] 2016-10-09
[9] 웹사이트 The Hidden Cinema of Jean Rollin: Phantasmes (1975) http://requiemforjea[...] 2016-10-13
[10]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Le Raisins de la Mort (The Grapes of Death) 1978 http://requiemforjea[...] 2016-10-13
[11]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Fascination (1979) http://requiemforjea[...] 2016-10-13
[12]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La Nuit des Traquées (The Night of the Hunted) http://requiemforjea[...] 2016-10-14
[13]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Five 2006
[14]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Five 2006
[15] 웹사이트 The Hidden Cinema of Jean Rollin: 1980's Le Lac Des Mortes Vivantes (Zombie Lake) http://requiemforjea[...] 2016-10-15
[16]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Les Paumees Du Petit Matin (The Escapees) http://requiemforjea[...] requiemforjeanrollin.blogspot.com 2016-10-15
[17]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Three 2005-10
[18]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Three 2005-10
[19]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Three 2005-10
[20]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Three 2005-10
[21]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Three 2005-10
[22] 서적 The Films of Jean Rollin: Volume Three 2005-10
[23]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Les Trottoirs de Bangkok (The Sidewalks of Bangkok) http://requiemforjea[...] 2016-10-15
[24] 웹사이트 The Hidden Cinema of Jean Rollin: Emmanuelle 6 (1988) http://requiemforjea[...] 2016-10-15
[25]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Lost in New York (1991) http://requiemforjea[...] 2016-10-15
[26] 웹사이트 The Cinema of Jean Rollin: Killing Car (1993) http://requiemforjea[...] 2016-10-15
[27] 웹사이트 The Hidden Cinema of Jean Rollin: The Scent of Mathilda (1994) http://requiemforjea[...] 2016-10-15
[28] 웹사이트 Jean Rollin has Risen from the Grave! https://web.archive.[...] Shockingimages.com 2017-03-20
[29] 웹사이트 La fiancée de Dracula https://translate.go[...] Lesfilmabc.free.fr 2017-03-20
[30] 웹사이트 French actors who deceased at age 72 http://patheticfacts[...] patheticfacts.com 2016-10-12
[31] 뉴스 French horror director Rollin dead http://vancouver.24h[...] 2016-10-12
[32] 뉴스 RIP Jean Rollin http://www.fangoria.[...] 2010-12-16
[33] 웹사이트 Tomb of Jean Rollin https://commons.wiki[...] commons.wikimedia.org 2016-10-12
[34] 웹사이트 THE IRON ROSE (1973) https://www.tcm.com/[...] 2023-06-02
[35] 웹사이트 French Horror Director Jean Rollin Passes Away http://www.filmshaft[...] Filmshaft 2010-12-1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