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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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일수는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와 타자로 활동했다. 유신고등학교와 경성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1996년부터 KBO 리그 심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일수 - [인물]에 관한 문서
선수 정보
선수명전일수 (全日洙)
영어 표기Jeon Il-Soo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경기도 수원시
생년월일1968년 7월 2일 ()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 입단 정보
프로 입단 년도1991년
드래프트 순위1991년 1차 지명 (태평양 돌핀스)
선수 경력
소속팀태평양 돌핀스 (1991년 ~ 1992년)
LG 트윈스 (1992년 ~ 1995년)
첫 출장KBO / 1991년 4월 7일
잠실 대 LG전 구원
마지막 경기KBO / 1994년 9월 11일
잠실 대 쌍방울전
심판 경력
KBO 심판KBO 심판위원회 위원 (1996년 ~ 2016년)
KBO 심판위원회 팀장 (2017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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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전일수는 아마추어 시절 뛰어난 투수 유망주였으나, 프로 입단 후 잦은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 야구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어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1차 지명을 받았으나, 아마추어 시절 혹사로 인한 어깨 부상으로 1992년 웨이버 공시로 방출되었다. 이후 LG 트윈스에서 연습생으로 뛰며 재활 후 투수로 복귀했지만, 1995년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2.1. 고등학교 및 대학교 시절

전일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국 32강 진출에 크게 기여할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다. 3학년이던 1986년에는 8강전에서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결승 3점 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한일 고교 야구 대회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1987년에는 서울 올림픽 야구를 대비한 아마추어 1차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듬해에는 22이닝 동안 2자책점만을 기록하여 개인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한미 아마추어 야구 선수권 대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표팀에는 선발되었지만, 두 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여 1988년 서울 올림픽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2.2. 태평양 돌핀스 시절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38, 연봉 12에 입단했다. 그러나 아마추어 시절 혹사로 어깨 부상을 입어 루키 시즌 3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듬해 타자로 전향했다. 1992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로 방출되었는데, 이는 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웨이버 공시에 의한 계약 해제였다.

2.3. LG 트윈스 시절

태평양 돌핀스에서 방출된 후, LG 트윈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하여 연봉 1500000KRW을 받았다. 1993년부터 재활을 거쳐 다시 투수로 복귀했다. 1994년 4월 29일 OB 베어스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두는 등 초반에는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시즌 중반부터는 구원 투수로 더 많이 출전했다. 1994년 시즌 최종 성적은 30경기 출장, 45이닝 20실점(17자책), 25탈삼진, 3승이었다. 1995년에는 1군 출전 기록이 없었고,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3. 야구선수 은퇴 후

1996년부터 KBO 리그 심판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4. 출신 학교

* 수원북중학교
* 유신고등학교
* 경성대학교 (1987학번)

5. 등번호

전일수는 1991년부터 1992년 중도까지 등번호 '14'번을 사용했고, 1992년 중도부터 1995년까지는 '42'번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