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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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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정걸(丁傑, 1516년 ~ 1597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입니다. 자는 영중(英中), 호는 송정(松亭)이며, 본관은 영광(불우헌공파)입니다.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주요 생애 및 업적:


  • 출생 및 가문: 1516년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려 가요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의 5세손입니다.
  • 무과 급제 및 관직: 1544년(중종 39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 선전관, 서북면 병마만호 등을 역임했습니다.
  • 을묘왜변 활약: 1555년(명종 10년) 을묘왜변 때 해남, 강진 등지에 출몰한 왜구를 무찌르고 공을 세워 남도포 만호가 되었습니다. 이후 부안현감, 온성부사, 종성부사, 경상우수사, 전라좌수사, 전라우수사, 장흥부사, 전라병사, 창원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 임진왜란 참전: 1591년(선조 24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했을 때, 정걸은 이미 은퇴한 노장이었으나, 이순신의 조방장(참모장)으로 임명되어 전라좌수군에 합류했습니다. 이순신보다 31세나 연상이었지만, 뛰어난 경험과 지혜로 이순신을 보좌했습니다.
  • 판옥선 건조 및 무기 개발: 전라좌수군의 조방장으로서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을 만들고, 화전(불화살), 철령전 등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여 조선 수군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주요 해전 참전: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옥포 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 등 주요 해전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한산도 대첩에서는 거북선을 타고 싸우다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 행주대첩 지원: 1593년 충청수사가 된 후에는 행주대첩에서 권율 장군에게 화살 수만 발을 보급하여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사망: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난 해 여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의 안동사(安洞祠)에 배향되었습니다.

평가:정걸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곁에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 숨은 영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 수군의 전력을 강화하고, 주요 해전에서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판옥선 건조와 무기 개발에 힘써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향상시킨 공로가 큽니다.

80세의 나이에도 한산도 진중에 머물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기록이 1594년 선조실록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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