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옹주
1. 개요
정선옹주는 조선 선조와 정빈 민씨의 셋째 딸로, 1594년에 태어났다. 안동 권씨 권대임과 혼인하여 궁동에 거주하며, 선조로부터 인근 땅을 하사받았다. 21세에 요절하여 궁동에 묻혔으며, 아들 권진은 돈녕부봉사를 지냈다. 어머니 정빈 민씨의 성품을 닮아 근신하고 부덕을 잘 지켰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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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
서울푸른수목원
서울푸른수목원은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하며, 특정 지선 및 마을버스 노선을 통해 정문 또는 후문 정류소에서 하차하여 방문할 수 있다. -
서울 구로구 -
테크노마트
테크노마트는 판매동과 사무동으로 이루어진 복합 쇼핑몰로, 강변점과 신도림점이 대표적이며, 다양한 시설과 지하철 연결로 편리한 접근성을 제공하지만, 건물 진동 및 붕괴 사고, 임대 관련 마찰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
1614년 사망 -
엘 그레코
엘 그레코는 비잔틴 미술을 익히고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쳐 스페인 톨레도에서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며, 매너리즘의 영향을 받아 인물을 길게 늘이고 강렬한 색채와 빛으로 종교적 감성을 표현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등이 있다. -
1614년 사망 -
모가미 요시아키
모가미 요시아키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데와 국 야마가타 지역을 다스린 다이묘로, 뛰어난 지략과 무력을 통해 데와 국 통일을 이루고 야마가타 번을 창설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도 번영을 누렸으나 후계자 문제로 가문이 개역되었다. -
조선 선조의 자녀 -
광해군
광해군은 조선 제15대 국왕으로, 임진왜란 중 세자로 책봉되어 전란 수습에 기여하고 즉위 후 대북파를 등용,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고 후금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 대동법 시행, 『동의보감』 편찬 등의 업적과 폐모살제 등의 논란으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
조선 선조의 자녀 -
흥안군 (1598년)
흥안군 이제는 선조의 열번째 서자이자 활달한 성격의 왕자였으나,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국청 없이 처형되었고, 위성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나 작위와 시호는 철회되었으며, 묘소는 사라졌지만 흥안대로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2. 생애
1594년(선조 27년) 음력 4월 1일 선조와 정빈 민씨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난 정선옹주는 안동 권씨 권협의 손자이자 권신중의 아들 권대임과 혼인하였다. 권대임은 당시 부평부(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일대)에 살고 있었는데, 선조는 이곳으로 시집가는 정선옹주에게 해당 지역 인근의 땅을 하사하였다. 당시 권대임과 옹주의 집이 매우 크고 으리으리한 궁(宮)과 같다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궁동(宮洞)이라는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정선옹주와 혼인한 후 권대임은 길성위(吉城尉)에 봉해졌다.
1614년(광해군 6년) 음력 8월 1일, 정선옹주는 2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사후 궁동에 있는 시댁 식구들의 묘역에 묻혔으며, 1645년(인조 23년) 남편 권대임도 이곳에 같이 묻혔다.
2.1. 가계 및 가족 관계
1594년(선조 27년) 음력 4월 1일 선조와 정빈 민씨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민사준이며, 동복 형제로는 오빠 인성군, 언니 정인옹주, 여동생 정근옹주, 남동생 인흥군이 있다.
2.2. 혼인 및 궁동과의 인연
정선옹주는 안동 권씨 권협의 손자이자 권신중의 아들 권대임과 혼인하였다. 권대임은 당시 부평부(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일대)에 살고 있었는데, 선조는 이곳으로 시집가는 정선옹주에게 해당 지역 인근의 땅을 하사하였다. 당시 권대임과 옹주의 집이 매우 크고 으리으리한 궁(宮)과 같다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궁동(宮洞)이라는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한편 권대임은 정선옹주와 혼인한 후 길성위(吉城尉)에 봉해졌다.
2.3. 사망
정선옹주는 1614년(광해군 6년) 음력 8월 1일 2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사후 궁동에 있는 시댁 식구들의 묘역에 묻혔으며, 1645년(인조 23년) 남편 권대임도 이곳에 같이 묻혔다. 아들 권진은 돈녕부봉사를 지냈다.
3. 평가
정선옹주의 어머니 정빈 민씨는 성품이 어질고 예절을 잘 지켰는데, 옹주 또한 이러한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 항상 근신하고 부덕을 잘 지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