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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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선옹주는 조선 선조와 정빈 민씨의 셋째 딸로, 1594년에 태어났다. 안동 권씨 권대임과 혼인하여 궁동에 거주하며, 선조로부터 인근 땅을 하사받았다. 21세에 요절하여 궁동에 묻혔으며, 아들 권진은 돈녕부봉사를 지냈다. 어머니 정빈 민씨의 성품을 닮아 근신하고 부덕을 잘 지켰다고 전해진다.

정선옹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옹주
배우자길성위 권대임
자녀1남
----권진
왕조조선
아버지선조
어머니정빈 민씨
친척인성군(남매), 정인옹주(언니),
정근옹주(여동생) 등
출생일1594년 음력 4월 1일
출생지조선
사망지조선
사망일1614년 음력 8월 1일
매장지정선옹주 묘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국적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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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594년(선조 27년) 음력 4월 1일 선조와 정빈 민씨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난 정선옹주는 안동 권씨 권협의 손자이자 권신중의 아들 권대임과 혼인하였다. 권대임은 당시 부평부(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일대)에 살고 있었는데, 선조는 이곳으로 시집가는 정선옹주에게 해당 지역 인근의 땅을 하사하였다. 당시 권대임과 옹주의 집이 매우 크고 으리으리한 궁(宮)과 같다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궁동(宮洞)이라는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정선옹주와 혼인한 후 권대임은 길성위(吉城尉)에 봉해졌다.

1614년(광해군 6년) 음력 8월 1일, 정선옹주는 2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사후 궁동에 있는 시댁 식구들의 묘역에 묻혔으며, 1645년(인조 23년) 남편 권대임도 이곳에 같이 묻혔다.

2.1. 가계 및 가족 관계

1594년(선조 27년) 음력 4월 1일 선조와 정빈 민씨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민사준이며, 동복 형제로는 오빠 인성군, 언니 정인옹주, 여동생 정근옹주, 남동생 인흥군이 있다.

2.2. 혼인 및 궁동과의 인연

정선옹주는 안동 권씨 권협의 손자이자 권신중의 아들 권대임과 혼인하였다. 권대임은 당시 부평부(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일대)에 살고 있었는데, 선조는 이곳으로 시집가는 정선옹주에게 해당 지역 인근의 땅을 하사하였다. 당시 권대임과 옹주의 집이 매우 크고 으리으리한 궁(宮)과 같다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궁동(宮洞)이라는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한편 권대임은 정선옹주와 혼인한 후 길성위(吉城尉)에 봉해졌다.

2.3. 사망

정선옹주는 1614년(광해군 6년) 음력 8월 1일 2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사후 궁동에 있는 시댁 식구들의 묘역에 묻혔으며, 1645년(인조 23년) 남편 권대임도 이곳에 같이 묻혔다. 아들 권진은 돈녕부봉사를 지냈다.

3. 평가

정선옹주의 어머니 정빈 민씨는 성품이 어질고 예절을 잘 지켰는데, 옹주 또한 이러한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 항상 근신하고 부덕을 잘 지켰다고 한다.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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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관계이름출생사망
본가아버지선조1552년1608년
어머니정빈 민씨1567년1626년
오빠인성군1588년1628년
언니정인옹주1590년1656년
동생정근옹주1599년1613년
시가시아버지권신중1575년1633년
시어머니전주 이씨??
부마권대임1595년1645년

인흥군의 친누나이다. 안동 권씨 권대임과 혼인하여 길성위(吉城尉)에 봉해졌다. 슬하에 아들 권진을 두었다.

4.1. 본가

인성군, 정인옹주, 정근옹주의 동복 형제이며, 인흥군의 친누나이다.

4.2. 시가

정선옹주는 안동 권씨 권협의 손자이자 권신중의 아들 권대임과 혼인하였다. 권대임은 당시 부평부(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일대)에 살고 있었는데, 선조는 이곳으로 시집을 가는 정선옹주에게 해당 지역 인근의 땅을 하사하였다. 당시 권대임과 옹주의 집이 매우 크고 으리으리한 궁(宮)과 같다 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궁동(宮洞)이라는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한편 권대임은 정선옹주와 혼인한 후 길성위(吉城尉)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