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민씨
1. 개요
정빈 민씨는 강화도호부사 민사준의 딸로, 조선 선조의 후궁이다. 1580년 숙의로 입궁하여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에 봉해졌으며, 인성군을 포함하여 2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낳았다. 선조 사후 고질병을 앓았으며, 인목왕후가 편지를 보내 위로하기도 했다.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천보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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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한국 사람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16세기 한국 사람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
1567년 출생 -
사나다 노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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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 출생 -
다테 마사무네
다테 마사무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이며 센다이 번의 초대 번주로, '독안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오슈 지역을 장악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복속, 임진왜란과 오사카 전투에 참전, 센다이 번 건설과 스페인과의 통상 추진, 문화 예술에도 힘썼다. -
1626년 사망 -
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1세와 제임스 1세 시대의 영국의 철학자, 정치가, 변호사, 작가로서, 법무장관 및 대법관을 역임했으나 부패 혐의로 실각했고, 귀납적 방법론과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여 과학혁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
1626년 사망 -
피에트로 카탈디
2. 생애
강화도호부사 민사준(閔士俊)의 딸이며, 성종의 사위인 여천위(驪川尉) 민자방의 증손녀이다.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淑儀)로 간택되어 입궁하였고, 이후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에 봉해졌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인성군을 비롯한 여러 자녀를 두었다.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사가(私家)에서 지냈으며, 이때부터 지병을 앓았다. 1624년 장남 인성군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는 아픔을 겪었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차남 인흥군이 인조에게 형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도록 청하였고, 인조가 이를 허락하였으나 1626년 11월 2일, 인성군이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627년 1월 17일 양주 탑곡에 예장(禮葬)되었다.
2.1. 입궁과 후궁 생활
강화도호부사 민사준(閔士俊)의 딸이며, 성종의 사위인 여천위(驪川尉) 민자방의 증손녀이다.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淑儀)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당시 간원에서는 민씨가 성종의 외손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발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했으나, 선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홍여겸(洪汝謙)의 딸(정빈 홍씨)과 정순희(鄭純禧)의 딸(숙의 정씨)도 함께 숙의로 간택되어 입궁했으며, 민씨는 수진방(水眞坊)에 있는 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입궁 후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의 품계에 올랐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장남 인성군을 비롯하여 아들 둘과 딸 셋을 더 낳았다.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궁궐을 나와 사가에서 머물렀다. 이때부터 고질병을 앓았는데, 인목왕후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위로하기도 했다. 1624년에는 장남 인성군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이후 정빈 민씨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차남 인흥군은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형인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인조는 이를 허락하여 인성군을 풀어주었으나, 1626년 11월 2일, 정빈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627년 1월 17일, 양주 탑곡에 예장(禮葬)되었다.
2.2. 선조 사후
선조 승하 후에 사가(私家)에 머물렀는데, 이때부터 고질병을 앓아 인목왕후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위로하였다.
장남인 인성군이 1624년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정빈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인흥군은 인조에게 상소하여 형인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인조는 인성군이 민씨를 만날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나 1626년 11월 2일,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627년 1월 17일, 양주 탑곡에 예장(禮葬)하였다.
2.3. 인성군의 역모 연루와 죽음
장남인 인성군이 1624년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정빈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아들 인흥군은 인조에게 상소하여 형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인조는 인성군이 어머니 민씨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했으나, 1626년 11월 2일,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