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민씨
1. 개요
정빈 민씨는 강화도호부사 민사준의 딸로, 조선 선조의 후궁이다. 1580년 숙의로 입궁하여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에 봉해졌으며, 인성군을 포함하여 2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낳았다. 선조 사후 고질병을 앓았으며, 인목왕후가 편지를 보내 위로하기도 했다.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천보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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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 민씨 -
민복기
민복기는 친일파 아버지 아래 일제강점기 판사로 활동 후 해방 후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최장수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사법계에 기여했으나, 인혁당 사건과 친일 행적, 권력 유착으로 논란이 된 인물이다. -
여흥 민씨 -
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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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
권율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무장인 권율은 안동 권씨 출신으로,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에서 승리하는 등 활약하여 도원수에 올랐으며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도 기여,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된 인물이다. -
조선 선조 -
임현
임현은 조선 중기 무관으로, 임진왜란 때 남원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정시문과 급제 후 관직 생활을 하다 파직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남원부사로 부임하여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 후 의정부좌찬성으로 추증되고 충간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16세기 한국 사람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16세기 한국 사람 -
정여립
2. 생애
강화도호부사 민사준(閔士俊)의 딸이며, 성종의 사위인 여천위(驪川尉) 민자방의 증손녀이다.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淑儀)로 간택되어 입궁하였고, 이후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에 봉해졌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인성군을 비롯한 여러 자녀를 두었다.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사가(私家)에서 지냈으며, 이때부터 지병을 앓았다. 1624년 장남 인성군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는 아픔을 겪었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차남 인흥군이 인조에게 형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도록 청하였고, 인조가 이를 허락하였으나 1626년 11월 2일, 인성군이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627년 1월 17일 양주 탑곡에 예장(禮葬)되었다.
2.1. 입궁과 후궁 생활
강화도호부사 민사준(閔士俊)의 딸이며, 성종의 사위인 여천위(驪川尉) 민자방의 증손녀이다.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淑儀)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당시 간원에서는 민씨가 성종의 외손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발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했으나, 선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홍여겸(洪汝謙)의 딸(정빈 홍씨)과 정순희(鄭純禧)의 딸(숙의 정씨)도 함께 숙의로 간택되어 입궁했으며, 민씨는 수진방(水眞坊)에 있는 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입궁 후 소의,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의 품계에 올랐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장남 인성군을 비롯하여 아들 둘과 딸 셋을 더 낳았다.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궁궐을 나와 사가에서 머물렀다. 이때부터 고질병을 앓았는데, 인목왕후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위로하기도 했다. 1624년에는 장남 인성군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이후 정빈 민씨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차남 인흥군은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형인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인조는 이를 허락하여 인성군을 풀어주었으나, 1626년 11월 2일, 정빈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627년 1월 17일, 양주 탑곡에 예장(禮葬)되었다.
2.2. 선조 사후
선조 승하 후에 사가(私家)에 머물렀는데, 이때부터 고질병을 앓아 인목왕후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위로하였다.
장남인 인성군이 1624년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정빈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인흥군은 인조에게 상소하여 형인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나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 인조는 인성군이 민씨를 만날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나 1626년 11월 2일,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1627년 1월 17일, 양주 탑곡에 예장(禮葬)하였다.
2.3. 인성군의 역모 연루와 죽음
장남인 인성군이 1624년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정빈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아들 인흥군은 인조에게 상소하여 형 인성군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인조는 인성군이 어머니 민씨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했으나, 1626년 11월 2일,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