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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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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지승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으로, 중국 옌볜으로 이주하여 축구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다. 옌볜 푸더(지린성 축구단)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65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대표팀 활동은 무산되었다. 이후 옌볜 푸더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중국 1부 리그로 승격시켰고, 중국 축구 협회로부터 '중국축구 고급교련' 칭호를 받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축구 운영 본부에서 근무하며 한국과 옌볜 간의 스포츠 교류를 추진했으며, 한국인 코치가 중국에서 선수 지도를 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2001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여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다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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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승 - [인물]에 관한 문서
선수 정보
이름정지승
로마자 표기Jeong Ji-seung
출생일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포지션미상
선수 경력
연도1958-???
클럽지린성 축구단
출전미상
미상
지도자 경력
연도1970-???
클럽지린성 축구단
행정가 경력
연도???
협회옌볜 축구 협회 (회장)

2. 생애

일제강점기 시절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났으며, 3살에서 6살 사이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 옌볜으로 이주했다.[4][2]

이후 축구 선수가 되어 1958년부터 중국 1부리그인 갑급팀 연맹경기에서 지린성 축구단(길림팀) 소속으로 활약했다.[2][3] 1965년 대회 우승 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모든 축구 경기가 중단되어 대표팀 활동을 하지 못했다.[3][2]

1970년에는 지린성 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했고,[4] 1973년에 조선족 위주로 팀을 재편성 한 뒤 1981년에 중국 1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켰다.[2] 1982년에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2대1로 승리하기도 했다.[3]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 축구 협회에서 '중국축구 고급교련' 칭호를 받았다.[5]

1988년에는 중국 정부의 추천을 받아 1988년 올림픽의 축구운영본부에서 근무했다.[5] 당시 한국과 길림성의 스포츠 교류를 추진했으며,[4] 1988년 11월에는 한국 유도대표팀 코치가 지린성 한국계 선수들을 지도하도록 주선하여 한국인 코치가 중국에서 선수를 지도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6]

2001년 63세의 나이로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여 대한민국의 축구 발전을 위해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고, 대한민국에서 생을 마감했다.[3][2]

2. 1. 중국에서의 선수 경력

일제강점기 시절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나, 3살에서 6살 사이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 옌볜으로 이주했다.[4][2] 축구 선수가 되어 1958년부터 중국 1부리그인 갑급팀 연맹경기에서 지린성 축구단 (길림팀) 소속으로 활약했다.[2][3] 당시 팀의 부주장으로 대회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1996년 월드컵 8강에 진출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등 '중국 축구계'의 스타로 활약하면서 '''동북의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3] 1965년 대회 우승 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 되었으나, 중국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모든 축구 경기가 중단되어 대표팀 선발은 무산되었고, 개인 축구용품까지 폐기될 위기에 처하자 정지승은 개인 유니폼과 사진 등을 몰래 숨겼다.[3]

2. 2. 지도자 경력과 한중 스포츠 교류

정지승은 지린성 축구단 (길림팀) 감독으로 부임하여,[4] 1973년에 조선족 위주로 팀을 재편성한 뒤 1981년에 중국 1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켰다.[2] 1982년에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2대1로 승리하는 등,[3] 중국 축구 협회에서 '중국축구 고급교련' 칭호를 받았다.[5]

1988년에는 중국 정부의 추천으로 1988년 올림픽 축구운영본부에서 근무했다.[5] 당시 서울에서 "중국이 개방정책을 추진중인만큼 이제 한국과 길림성의 동포간에도 체육 교류를 시작할 때가 왔습니다."라고 밝히며, 한중 스포츠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4] 특히, 중국의 개방 정책으로 경제 교류는 활발하지만, 스포츠 교류는 전혀 없다며, 북한과는 이미 여러 번 경기를 가졌는데, 언어도 같은 한국과 체육 교류에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주장하며 한국과의 스포츠 교류에 힘썼다.[4]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88년 11월, 정지승의 요청으로 지린성에 있는 한국계 선수들을 지도하기 위해 한국의 유도 대표팀 코치가 파견되었다. 이는 한국인 코치가 중국에 입국해 선수를 처음으로 지도한 최초의 사례였다.[6]

2. 3. 대한민국 귀화

정지승은 일제강점기 시절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났으며, 3살에서 6살 사이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 옌볜으로 이주했다.[4][2]

이후 축구 선수가 되어 1958년부터 중국 1부리그인 갑급팀 연맹경기에서 지린성 축구단(길림팀) 소속으로 활약했다.[2][3] 1965년 대회 우승 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모든 축구 경기가 중단되어 대표팀 활동을 하지 못했다.[3][2]

1970년에는 지린성 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했고,[4] 1973년에 조선족 위주로 팀을 재편성 한 뒤 1981년에 중국 1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켰다.[2] 1982년에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2대1로 승리하기도 했다.[3]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 축구 협회에서 '중국축구 고급교련' 칭호를 받았다.[5]

1988년에는 중국 정부의 추천을 받아 1988년 올림픽의 축구운영본부에서 근무했다.[5] 당시 한국과 길림성의 스포츠 교류를 추진했으며,[4] 1988년 11월에는 한국 유도대표팀 코치가 지린성 한국계 선수들을 지도하도록 주선하여 한국인 코치가 중국에서 선수를 지도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6]

2001년 63세의 나이로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여 대한민국의 축구 발전을 위해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고, 대한민국에서 생을 마감했다.[3][2]

참조

[1] 뉴스 연변 한인축구팀 준프로팀 포함 백개 넘어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88-11-12
[2] 뉴스 조선족 축구대부 정지승씨 한국 귀화 추진 https://www.chosun.c[...] 경기일보 2001-02-05
[3] 웹인용 일제부터 중국까지, 축구하면 조선이었다 https://storyfunding[...] storyfunding 2023-07-16
[4] 뉴스 인터뷰 중국 길림성 축구감독에 정지승씨 https://newslibrary.[...] 한겨례 1988-11-12
[5] 뉴스 中조선족 축구 대부 정지승씨 귀화 추진 https://www.chosun.c[...] 조선일보 2001-02-04
[6] 뉴스 김관현 코치 중국파견 길림성 교포유도팀 지도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8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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