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군 (독일 제국)
1. 개요
제1군 (독일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서부 전선에서 활동한 독일 제국 육군의 야전군이다. 1914년 슐리펜 계획에 따라 프랑스와 벨기에를 침공했으며, 알렉산더 폰 클루크 장군의 지휘 하에 파리 포위를 시도했으나 마른 전투에서 저지당했다. 이후 해산되었다가 1916년 솜 전투 이후 제2군에서 재편성되었고, 프리츠 폰 벨로우, 브루노 폰 무드라, 오토 폰 벨로프, 마그누스 폰 에버하르트 등이 사령관을 역임했다.
| 명칭 | 제1군 |
|---|---|
| 원어 명칭 | Armeeoberkommando 1 (독일어) |
| 약칭 | A.O.K.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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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기간 | 1914년 8월 2일 – 1915년 9월 17일 1916년 7월 19일 – 1919년 1월 24일 |
|---|---|
| 국가 | 독일 제국 |
| 병과 | 육군 |
| 종류 | 야전군 |
| 역할 | 해당 사항 없음 |
| 규모 | 해당 사항 없음 |
| 명령 체계 | 해당 사항 없음 |
| 본부 | 해당 사항 없음 |
| 별명 | 해당 사항 없음 |
| 표어 | 해당 사항 없음 |
| 색 | 해당 사항 없음 |
| 군가 | 해당 사항 없음 |
| 마스코트 | 해당 사항 없음 |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
|---|---|
| 주요 전투 | 국경 전투 안트베르펜 공방전 (일부) 몽스 전투 르카토 전투 제1차 마른 강 전투 제1차 엔 강 전투 제1차 아라스 전투 솜 전투 제2차 엔 강 전투 |
| 역대 사령관 | 본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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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어 | A.O.K.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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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폐지 -
경남일보
경남일보는 1909년 진주에서 창간된 한국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 언론사이자 지방 신문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언론통폐합 등을 거치며 민족의식 고취와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
1915년 폐지 -
엑스포지션 파크 (피츠버그)
1882년부터 1915년까지 피츠버그에 존재했던 엑스포지션 파크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전신 홈구장으로, 홍수로 인해 재건축과 이전이 잦았으며, 최초의 월드 시리즈 개최, 페더럴 리그 홈구장 사용 후 철거되어 현재는 역사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
독일 제국군의 야전군 -
파울 폰 힌덴부르크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영웅이자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이었으나,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여 나치즘 집권에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는 인물로, 군사적 성공과 정치적 책임 사이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
독일 제국군의 야전군 -
제4군 (독일 제국)
제4군 (독일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제국 육군의 야전군으로, 슐리펜 계획에 따라 서부 전선에서 활동하며 국경 전투, 1차 이프르 전투, 파스샹달 전투 등에 참전했다. -
1919년 폐지 -
제1기 잉만 내각
제1기 잉만 내각은 잉만 대통령 당선 이후 구성되었으며, 진보적인 정책 추진을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으나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1919년 폐지 -
핀란드 왕국 (1918년)
핀란드 왕국(1918년)은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 후 독일의 지원을 받아 군주국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독일의 패배와 내부 혼란으로 왕 추대가 무산되고 공화국으로 재전환된 시기이다.
2. 역사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은 10개의 군 수준 지휘부(제1군부터 제7군과 3개의 군단 분견대)를 갖추고 있었다. 제1군은 알렉산더 폰 클루크 장군의 지휘 하에 슐리펜 계획에 따라 프랑스군의 좌익을 공격하고 파리를 포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공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했으며, 전선 1마일당 약 18,000명(미터당 약 10명)의 병력 밀집도를 보였다.
제1군은 1914년 8월 20일 브뤼셀을 점령하고 프랑스군을 거의 격파할 뻔했으나, 9월 초 마른 강 전투에서 프랑스 수도에서 불과 약 20.92km 떨어진 곳에서 저지당했다. 폰 클루크는 이 전투에서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1915년에 교체되었다.
독일 최고 사령부는 제1군을 해산하고, 그 부대를 인접한 군대에 분산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제1군은 1915년 9월 17일에 해산되었다.
이후 1916년 7월 19일, 솜 전투에서 연합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은 제2군이 너무 커져 분할이 필요하게 되자, 제2군의 우익(북부)에서 제1군이 재편성되었다. 보병대장 프리츠 폰 벨로우가 제1군 사령관을 맡았고, 포병대장 막스 폰 갈비츠가 제2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폰 갈비츠는 솜 지역 두 군의 작전을 조정하기 위해 갈비츠군 (Heeresgruppe Gallwitz – Somme) 사령관도 겸임했다.
전쟁 말기에 제1군은 독일 황태자군 (Heeresgruppe Deutscher Kronprinz)의 일부로 복무했다.
2.1. 편성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 전선에서 전투를 벌인 제1군은 1914년 8월 프랑스와 벨기에를 상대로 한 슐리펜 계획 공세에 참여했다. 알렉산더 폰 클루크 장군의 지휘 하에 제1군은 프랑스군의 좌익을 공격하고 파리를 포위하여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군대는 공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선 1마일당 약 18,000명 (미터당 약 10명)의 밀집도를 보였다. 제1군은 8월 20일 브뤼셀을 점령했고 프랑스를 거의 격파할 뻔했으나, 9월 초에 발생한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 수도에서 불과 약 20.92km 떨어진 곳에서 저지당했다. 폰 클루크는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1915년에 교체되었다.
독일 최고 사령부는 10개의 군 수준 지휘부(제1군부터 제7군과 3개의 군단 분견대)를 갖추고 있어 제1군을 해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제1군의 부대는 인접한 군대에 분산되었고, 1915년 9월 17일에 해산되었다.
2.2. 초기 작전
알렉산더 폰 클루크 장군의 지휘 하에 제1군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프랑스군의 좌익을 공격하고 파리를 포위하여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제1군은 공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선 1마일당 약 18,000명 (미터당 약 10명)의 밀집도를 보였다. 1914년 8월 20일 브뤼셀을 점령했고 프랑스를 거의 격파할 뻔했으나, 9월 초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 수도에서 불과 약 20.92km 떨어진 곳에서 저지당했다.
2.3. 마른 전투
알렉산더 폰 클루크 장군의 지휘 하에 제1군은 프랑스군의 좌익을 공격하고 파리를 포위하여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군대는 공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선 1마일당 약 18,000명 (미터당 약 10명)의 밀집도를 보였다. 제1군은 8월 20일 브뤼셀을 점령했고 프랑스를 거의 격파할 뻔했으나, 1914년 9월 초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 수도에서 불과 약 20.92km 떨어진 곳에서 저지당했다. 폰 클루크는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1915년에 교체되었다.
2.4. 해산과 재편성
솜 전투에서 연합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이한 제2군은 규모가 매우 커져 분할하게 되었다. 1916년 7월 19일 제2군의 우익(북부)에서 제1군이 재편성되었다. 보병대장 프리츠 폰 벨로우가 제1군 사령관을 맡았고, 포병대장 막스 폰 갈비츠가 제2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폰 갈비츠는 솜 지역 두 군의 작전을 조정하기 위해 갈비츠군 (Heeresgruppe Gallwitz – Somme) 사령관도 겸임했다.
전쟁 말기에는 독일 황태자군 (Heeresgruppe Deutscher Kronprinz)의 일부로 복무했다.
2.5. 솜 전투
1916년 7월 19일 솜 전투에서 연합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이한 제2군의 우익(북부)에서 제1군이 재편되었다. 기존 제2군 사령관이었던 보병대장 프리츠 폰 벨로우가 제1군 사령관을 맡았고, 제2군은 새로운 사령관 포병대장 막스 폰 갈비츠가 임명되었다. 폰 갈비츠는 솜 지역의 두 군의 작전을 조정하기 위해 갈비츠군 (Heeresgruppe Gallwitz – Somme)의 사령관으로도 임명되었다.
3. 전투서열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시점 제1군의 전투서열은 다음과 같다.
| 야전군급 | 군단급 | 사단급 |
|---|---|---|
3.1. 1918년 10월 30일
1918년 10월 30일, 종전 직전 제1군의 부대 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 야전군급 | 군단급 | 사단급 |
|---|---|---|
4. 역대 사령관
| 취임일 | 계급 | 성명 | 이전 보직 | 이후 보직 |
|---|---|---|---|---|
| 1914년 8월 2일 | 상급대장 | 알렉산데르 폰 클루크 | 제8육군사찰단 | 1915년 3월 27일 부상 |
| 1915년 3월 28일 | 보병대장 | 막스 폰 파베크 | 제11군 | 제12군 |
| 1915년 9월 17일 일시 해산 | ||||
| 1916년 7월 19일 | 보병대장 | 프리츠 폰 벨로프 | 제2군 | 제9군 |
| 1918년 6월 9일 | 보병대장 | 브루노 폰 무드라 | A 분견군 | 제17군 |
| 1918년 10월 12일 | 보병대장 | 오토 폰 벨로프 | 제17군 | 서부 본토방어군 |
| 1918년 11월 8일 | 보병대장 | 마그누스 폰 에버하르트 | 제7군 | |
제1군은 1915년 9월 17일에 일시 해산되었다가, 1916년 솜 전투 기간 중 제2군의 우익(북부)에서 재창설되었다.
4.1. 초대 사령관: 알렉산데르 폰 클루크
1914년 8월부터 1915년 3월까지 알렉산데르 폰 클루크 상급대장이 제1군을 지휘했다. 폰 클루크는 슐리펜 계획의 초기 단계를 이끌도록 임명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 전선에서, 폰 클루크의 제1군은 프랑스군의 좌익을 공격하고 파리를 포위하여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군대는 공세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선 1마일당 약 18,000명 (미터당 약 10명)의 밀집도를 보였다. 제1군은 1914년 8월 20일 브뤼셀을 점령했고 프랑스를 거의 격파할 뻔했으나, 1914년 9월 초에 발생한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 수도에서 불과 약 20.92km 떨어진 곳에서 저지당했다. 폰 클루크는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1915년에 교체되었다.
4.3. 프리츠 폰 벨로프
1916년 7월 19일, 솜 전투 기간 중 제2군의 우익(북부)에서 제1군이 재편성되었다. 이전 제2군 사령관이었던 프리츠 폰 벨로우 보병대장이 제1군 사령관을 맡았다. 막스 폰 갈비츠 포병대장이 솜 지역의 두 군의 작전을 조정하기 위해 갈비츠군 (Heeresgruppe Gallwitz – Somme)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 취임일 | 계급 | 성명 | 이전 보직 | 이후 보직 |
|---|---|---|---|---|
| 1916년 7월 19일 | 보병대장 | 프리츠 폰 벨로프 | 제2군 | 제9군 |
4.5. 오토 폰 벨로프
오토 폰 벨로프는 1918년 10월 12일부터 보병대장 계급으로 제1군 사령관을 맡았다. 이전에는 제17군 사령관이었으며, 이후 서부 본토방어군 사령관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