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울름 폭격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울름 폭격은 독일 울름 시에 가해진 연합군의 공습을 의미한다. 1944년 12월 17일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첫 번째 공습이 있었고, 이후 1945년 3월 1일과 4월 19일에 추가 공습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울름 시가지의 81%가 파괴되었으며, 총 133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주요 목표는 마기루스와 케스보러 화물 자동차 공장이었으며, 울름 대성당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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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울름 |
|---|---|
| 날짜 | 1944년 12월 17일 |
| 목표 | 울름 |
| 공격 부대 | 영국 공군 |
|---|---|
| 사령관 | 아서 해리스 |
| 투입 기체 | 338대 아브로 랭커스터 14대 드 하빌랜드 모스키토 |
| 사망자 | 707명 |
|---|---|
| 부상자 | 613명 |
| 이재민 | 25,000명 |
| 파괴된 건물 | 울름 전체 건물의 81% |
| 결과 | 울름 구시가지 대부분 파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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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름 -
발터 (기업)
발터는 1886년 독일에서 설립되어 권총, 소총 등을 생산하며, 제임스 본드 권총으로도 유명하지만 현재는 우마렉스에 인수되어 완구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
1944년 독일 -
V-2 로켓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인 V-2 로켓은 베르너 폰 브라운 연구팀에 의해 개발되어 액체 추진제를 사용, 최대 320km 사거리와 1톤의 탄두 운반 능력을 갖췄으나, 연합국 도시 공격에 사용되며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고, 전후 미사일 및 우주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지만, 개발 과정에서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의 노예 노동이 동원되는 윤리적 문제와 군사적 효용성 논란이 있었다. -
1944년 독일 -
라플란드 전쟁
라플란드 전쟁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4월까지 핀란드가 소련과의 휴전 협정 후 독일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핀란드 영토 내 독일군 철수 요구로 발발한 전쟁으로, 독일군의 지연 전술과 초토화 작전으로 라플란드 지역에 큰 피해를 초래했다. -
1944년 분쟁 -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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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분쟁 -
데켐브리아나
데켐브리아나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아테네에서 그리스 인민해방군을 주축으로 한 좌익 세력과 영국군 및 그리스 정부군 간에 벌어진 시가전으로, 저항 세력의 무장 해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발발하여 그리스 내전의 서막을 알렸다.
2. 공습 배경
Ulm영어은 1944년 당시 인구 약 12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Ulm영어에는 다임러-벤츠 트럭 공장, Kässbohrer독일어 트레일러 공장, Magirus독일어 소방 장비 공장, Wieland독일어 금속 공장, Anschütz독일어 사의 자이로스코프 공장 등 여러 주요 산업 시설이 위치해 있었다. 또한 Wehrmacht독일어의 병영, 창고, 군 병원 등도 자리 잡고 있었다.
3. 주요 공습
1944년 12월 17일에 최초로 가장 큰 규모의 공습이 있었다. 이후 1945년 3월 1일과 4월 19일에도 연합군의 공습이 이어져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종전까지 울름 시가지의 81%가 파괴되었으며, 12,756개의 건물 중 1,763개만이 온전했다.
3.1. 1944년 12월 17일 공습
1944년 12월 17일에 이루어진 공습은 최초이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공습이었다. 이 공습으로 707명이 사망하고, 61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약 2만 5천 명이 집을 잃었다. 마기루스와 케스보러(Kässbohrer) 두 화물 자동차 공장이 주요 목표였다. 시에는 그 외에도 몇몇 중요 산업 시설과 독일 국방군의 병영, 병참 시설이 있었다.
공습은 울름 대성당 앞 광장(Münsterplatz)에서 시작하여 공업 지대와 철도가 있는 지역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경로로 25분간 진행되었다. 이 공습에는 315기의 아브로 랭커스터폭격기와 13기의 드 하빌랜드 모스키토 경폭격기가 투입되어 총 1,449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갈비츠 병영과 여러 군 병원을 포함한 14개 시설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울름 대성당의 피해는 경미했다. 2기의 랭커스터 폭격기가 독일 대공포에 의해 격추되었다。
3.2. 1945년 공습
1945년 3월 1일과 4월 19일에 영국 공군과 미국 공군이 연이어 공습을 실시하여 총 632명이 사망했다. 종전까지 울름 시가지의 81%가 파괴되었고, 1만 2756개의 건물 중 1763개 건물만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
4. 공습 결과
1944년 12월 17일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공습으로 707명이 사망하고 61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약 2만 5천 명이 집을 잃었다. 이 공습으로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 2기가 독일 대공포에 의해 격추되었다。 1945년 3월 1일과 4월 19일의 영국과 미국의 공습으로 총 632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울름 시가지의 81%가 파괴되었고, 12,756개의 건물 중 1,763개 건물만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