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균 (번안공)
1. 개요
조균은 조위의 인물로, 숙부 조빈의 뒤를 이어 계공이 되었고, 건안 22년(217년)에 번후에 봉해졌으나 2년 뒤 사망했다. 황초 2년(221년)에 공으로 승격되었고, 시호는 안(安)이며 번안공으로 추증되었다. 아들 조항이 뒤를 이었고, 다른 아들 조완은 조앙의 후사를, 조민은 조구의 후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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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사람 -
손정
손정은 손견을 따라 거병하고 손책의 회계 평정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손권에 의해 소의중랑장에 임명되었으나 사임 후 고향에서 사망,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손권 휘하에서 활약하며 가문의 명성을 이은 인물이다. -
후한 사람 -
외효
외효는 후한 초기의 인물로, 한실 부흥을 내세워 독립 세력을 구축하고 광무제와 협력했으나, 결국 광무제에게 반기를 들고 패배하여 사망했다. -
후한의 열후 -
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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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열후 -
조식 (조위)
조식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로, 조조의 아들이며 조비와의 후계 다툼에서 밀려 정치적으로 불우했지만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건안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숙부 조빈의 뒤를 이어 계공이 되었다. 건안 22년(217년), 번후(樊侯)에 봉해졌으나 2년 후인 건안 24년(219년)에 죽었고, 아들 조항이 뒤를 이었다.
위나라 황초 2년(221년), 공으로 승격되고 시호를 안이라 하여 번안공(樊安公)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다른 아들 조완은 이복형 풍민왕의 후사를, 조민은 범양민왕의 후사를 이었다.
2.1. 후한 시기
숙부 조빈의 뒤를 이어 계공이 되었다. 건안 22년(217년), 번후(樊侯)에 봉해졌으나 2년 후인 건안 24년(219년)에 죽었고, 아들 조항이 뒤를 이었다.
조위 황초 2년(221년), 공으로 승격되고 시호를 안이라 하여 번안공(樊安公)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다른 아들 조완은 이복형 풍민왕의 후사를, 조민은 범양민왕의 후사를 이었다.
2.2. 위나라 시기
조빈의 뒤를 이었다. 건안 22년(217년), 번후(樊侯)에 봉해졌으나 2년 후 죽었고, 아들 조항이 뒤를 이었다.
위나라 황초 2년(221년), 공으로 승격되고 시호를 안이라 하였다. 다른 아들 조완은 이복형 풍민왕의 후사를, 조민은 범양민왕의 후사를 이었다.
3. 가계
조항(曹抗)은 황초 3년(222년)에 제공(薊公)에 봉해졌으며, 이듬해 황초 4년(223년)에 둔류공(屯留公)으로 전봉되었다. 경초 원년(237년)에 사망하여 시호 정공(定公)을 받았으며, 아들 조심(曹諶)이 뒤를 이었다. 조심은 경초, 정원, 경원 연간에 1900호까지 봉읍이 늘어났다.
조민(曹敏)은 조균(曹均)의 이복 형제인 조거(曹矩)의 뒤를 이어 낭야왕(琅邪王)이 되었다.
조완(曹琬)은 조균의 이복 형제인 조앙(曹昂)의 뒤를 이어 풍왕(豊王)이 되었다. 노필은 《삼국지집해》에서 조균의 아내가 장수(張繡)의 딸인데, 장수가 죽인 사람에게 양자를 보내는 것은 "전도착란(顛倒錯乱), 비이소사(匪夷所思)"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