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조상우 (1640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상우(1640년)는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인물이다. 태인현감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기사환국으로 인해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갑술환국으로 복귀했다. 이후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개성유수 등을 역임했으며, 형조판서, 예조판서, 우의정을 거쳐 판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시호는 효헌이다. 조상우는 전주 이씨 이장영의 딸과 혼인했으며, 조형의 아들이다.

2. 생애

조상우는 숙종 때 관직에 진출하여 여러 요직을 거쳤다. 기사환국으로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갑술환국 이후 복귀하여 우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사후에는 효헌(孝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1. 관직 생활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태인현감, 지평, 병조좌랑, 부교리, 이조좌랑, 수찬, 검토관, 교리, 부응교, 시강관을 역임했다. 기사환국으로 관직에서 쫓겨났으나, 갑술환국으로 복귀하여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대사성, 부제학, 개성유수 등을 거쳤다. 이후 경기도관찰사, 이조참판, 대사성, 대사헌, 부제학, 형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대사헌,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병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이조판서, 한성부판윤, 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임명되었고, 뒤에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3. 가계

조상우의 가문은 조선 시대 명문가 중 하나로, 증조부 조기(趙磯)와 조부 조희보(趙希輔)는 전주 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아버지 조형사천 목씨 목장흠(睦長欽)의 딸과 혼인하였다.

조상우는 전주 이씨 이장영(李長英)의 딸과 혼인하여 슬하에 조태수(趙泰壽), 조해수(趙海壽), 조두수(趙斗壽) 3남과 5녀를 두었다. 5녀는 각각 한산 이씨 이필흥(李必興), 안동 권씨 권익문(權益文), 청송 심씨 심경(沈璟), 창녕 조씨 조하장(曺夏章), 전주 이씨 이시형(李蓍亨)에게 시집갔다.

3. 1. 가계도

관계이름비고
고조부조세찬(趙世贊)
고조모광주 이씨이은(李誾)의 딸
양고조부조세훈(趙世勛)고조부 조세찬의 중형
양고조모평해 손씨손준(孫濬)의 딸, 정부인
증조부조기(趙磯)
증조모전주 이씨이숙(李淑)의 딸, 증 정부인
조부조희보(趙希輔)
조모(전실)교하 노씨노직(盧稙)의 딸, 증 정부인
조모(조형의 모)강릉 최씨최문(崔文)의 딸, 증 정경부인
아버지조형
어머니사천 목씨목장흠(睦長欽)의 딸, 정경부인
형님조상변(趙相抃)
형님조상정(趙相鼎)백부 조민(趙珉)의 양자로 감
형님조상기(趙相槩)
누이연안 이씨이두징(李斗徵)에게 시집감
누이청송 심씨심추(沈樞)에게 시집감
누이덕수 이씨이선원(李善源)에게 시집감
부인전주 이씨이장영(李長英)의 딸, 증 정경부인
장남조태수(趙泰壽)
손자조준명(趙駿命)
손자조구명(趙龜命)
차남조해수(趙海壽)
손자조인명(趙麟命)
손자조용명(趙龍命)
손녀여산 송씨송익휘(宋翼輝)에게 시집감
손녀연안 이씨이언소(李彦熽)에게 시집감
손녀청주 한씨한명룡(韓命龍)에게 시집감
삼남조두수(趙斗壽)
손자조학명(趙鶴命)
손자조기명(趙夔命)
손자조양명(趙揚命)
손자조신명(趙新命)
손녀해평 윤씨윤득응(尹得膺)에게 시집감
장녀한산 이씨이필흥(李必興)에게 시집감
차녀안동 권씨권익문(權益文)에게 시집감
삼녀청송 심씨심경(沈璟)에게 시집감
사녀창녕 조씨조하장(曺夏章)에게 시집감
오녀전주 이씨이시형(李蓍亨)에게 시집감


3. 2. 가문의 배경

조상우의 가문은 조선 시대 명문가 중 하나였다. 그의 증조부 조기(趙磯)와 조부 조희보(趙希輔)는 전주 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아버지 조형(趙珩)은 사천 목씨 목장흠(睦長欽)의 딸과 혼인하였다.

조상우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관계이름비고
증조부조기(趙磯)
증조모증 정부인 전주 이씨이숙(李淑)의 딸
조부조희보(趙希輔)
조모(전실)증 정부인 교하 노씨노직(盧稙)의 딸
조모증 정경부인 강릉 최씨최문(崔文)의 딸, 조형의 모친
조형(趙珩)
정경부인 사천 목씨목장흠(睦長欽)의 딸


4. 평가

조상우는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태인현감을 시작으로 여러 요직을 거쳤으며, 기사환국으로 잠시 쫓겨났지만 갑술환국으로 복귀했다.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대사성, 부제학, 경기도관찰사, 이조참판,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이후 판의금부사, 병조판서, 이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우의정에까지 올랐다. 최종 관직은 판중추부사였으며,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5. 기타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