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종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주종심은 당나라 시대의 선승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숭산 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6세에 남천보원에게 사사받고, 18세에 깨달음을 얻어 그의 법사가 되었다. 80세까지 행각하며 수행하다가 조주 관음원의 주지가 되었고, 이후 40년간 선풍을 펼쳤다. 120세에 입적했으며, '끽다거', '무자 화두', '뜰 앞의 잣나무' 등의 일화와 사상을 남겼다. 그의 어록은 『조주록』에 전해지며, 일본의 선승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778년 출생 -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
샤를마뉴의 아들이자 카롤링거 왕조의 황제인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는 '경건왕'이라는 별칭을 가졌으나, 정치적 무능과 상속 분쟁으로 인해 제국 분열을 초래했다. - 778년 출생 - 이르멘가르트 하스바니아
이르멘가르트 하스바니아는 알레만니아 백작의 딸로 태어나 루트비히 1세와 결혼하여 프랑크 왕국의 황후가 되었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 897년 사망 - 진성여왕
진성여왕은 신라 경문왕의 딸로, 정강왕 사후 887년에 즉위하여 음란한 행실과 국정 문란, 민란 발생으로 혼란을 겪다가 897년 효공왕에게 양위하고 사망했다. - 897년 사망 - 고려 세조
고려 세조 왕륭은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로, 의조 왕제건과 원창왕후 저민 사이에서 태어난 송악 호족 출신으로 궁예에게 귀부하여 금성태수를 지냈으며, 사후 아들 왕건에 의해 세조위무대왕으로 추존되었다. - 중국의 백세인 - 오청원
중국 출신 바둑 기사 오청원은 20세기 최고의 기사 중 한 명으로, 신포석 창안, 십번기 압승, 본인방 슈사이와의 명승부 등 바둑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그의 이론과 철학은 현대 바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중국의 백세인 - 양전닝
양전닝은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자이며, 리정다오와 함께 약한 상호작용에서의 패리티 비보존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양-밀스 이론을 개발했으며, 2016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조주종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한자 표기 | 趙州從諗 |
중국어 병음 | Zhàozhōu Cōngshěn |
광동어 | Ziu6zau1 Cung1sam2 |
상해어 | Zau6tseu1 Tshon1sen3 |
일본어 표기 | 趙州従諗 (Jōshū Jūshin) |
한국어 표기 | 조주종심 (趙州從諗) |
베트남어 표기 | Triệu Châu Tùng Thẩm |
출생 | 778년 |
출생지 | 중국 |
사망 | 897년 |
국적 | 중국인 |
종교 | 불교 |
종파 | 선종 |
칭호 | 선사 |
불교 정보 | |
속성 | 학씨 |
사찰 | 조주 관음원 |
주요 사찰 | 조주 관음원 |
사찰 | 조주 관음원 |
법랍 | 120세 |
시호 | 진제대사 (真際大師) |
학력 및 경력 | |
스승 | 남전보원, 황벽희운, 염관제안 |
저서 | '《조주진제선사어록(趙州真際禪師語錄)》' |
기타 | |
별칭 | 고불(古佛) |
유언 | 사리를 줍지 말 것 |
특징 | 화두를 많이 남김 (벽암록에 전하는 100개의 화두 중 12개가 스님의 것) |
2. 생애
조주종심은 어려서 고향의 용흥사에서 출가했다. 숭산 소림사 유리계단(琉璃戒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4] 18세에 마조 도일의 제자인 남전 보원을 만나 그에게 법을 받았다. 남전 보원이 죽을 때까지 그 밑에서 계속 수행했다.
조주는 당나라 시대 중국 최고의 선 스승으로 칭송받았으며, 그의 법통은 당시 중국의 잦은 전쟁과 불교 탄압으로 인해 빠르게 사라져 1000년 이후에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80세 전까지는 행각(떠돌이 생활을 하며 수행)을 하였다. 이때 7살 사미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고, 100살 노인이라도 가르칠 것이 있으면 가르친다는 마음가짐으로 행각을 하였다.[5] 60세에 다시 행각에 나서 황벽희운, 염관제안 등 여러 선승들과 문답하며 경지를 연마했다.
80세가 되어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의 주지가 되어 머물렀고, 이로 인해 호가 조주가 되었다. 이후 40년 동안 소수의 승려들을 가르쳤다. 이 사찰은 현재 백림사라고 불리며, 문화 대혁명 이후 재건되었고 오늘날에도 다시 중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조주종심은 120세에 입적하였고, 제자들에게 사리를 줍지 말라고 하였다.[6] 시호는 '''진제대사'''이다.
3. 사상
조주는 언어적 창의성과 유머 감각으로 유명하다. 그의 기록된 말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한 스님이 스승에게 "진실된 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조주가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못생겼다."중국어
벽암록과 무문관 모두에서 많은 공안이 조주와 관련되어 있으며, 전자는 12건, 후자는 5건이 그에게 귀속된다. 무문관 제19칙(공안)은 남전보원과 조주 사이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조주가 남전에게 "무엇이 도입니까?"라고 묻자, 남천은 "평상심이 도"라고 대답했다. 이는 마조 도일 (709–788)과 홍주종의 유명한 격언이다. 그는 아마도 ''무문관''의 첫 번째 공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선승 스즈키 슌류는 그의 저서 선심 초심에서 조주를 언급하며, 선 수행이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조주의 다음 말을 사용한다.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널 수 없고, 청동 부처는 화로를 통과할 수 없으며,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통과할 수 없다."
3. 1. 끽다거(喫茶去) : 차나 마시게나
조주종심이 자신의 절에 온 승려에게 전에 온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승려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차 한 잔 마시라고 했다.[14]
조주종심이 또 다른 승려에게도 똑같이 절에 온 적이 있는지를 묻자, 다른 승려는 없다고 말했다. 조주조심이 또다시 차 한 잔 마시라고 했다.[15]
이걸 본 원주(주지)가 조주종심에게 왜 절에 온 적이 있던 없던 차를 한 잔 마시라고 하는지를 묻자, 조주종심은 원주에게도 자네도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16]
3. 2. 무자(無字) 화두
한 학인이 조주종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냐고 물었다. 조주종심은 없다고 말했다.[17]
그러자 학인은 부처님으로부터 개미까지 다 불성이 있는데, 개는 어떻게 없냐고 다시 물었다. 조주종심은 업식성(業識性 : 중생심이 밝지 못하여 망념이 일어나 업이 움직이는 첫 모양의 성질)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18]
이것이 조주종심의 화두 중 가장 유명한 일명 무자(無字) 화두이다. 무문관의 첫 번째 공안으로, 한 스님이 조주에게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묻자, 조주는 "무"라고 답했다.[17]
3. 3. 뜰 앞의 잣나무
어느 한 스님이 조주종심에게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11] 이는 인도에서 달마대사가 동쪽인 중국 당나라로 온 이유를 묻는 말이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했다. 질문을 했던 스님은 "큰 스님께서는 경계를 써서 응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조주종심은 "산승(산에 사는 승려)은 경계를 써서 응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12]
스님이 다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조주종심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했다.[13]
4. 시 (十二時歌)
120세까지 장수했기에 풍요롭고 편안한 일생을 보냈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다음은 《조주록》에 실려 있는 12시가(十二時歌) 중 일부이다. 조주종심의 솔직한 삶이 드러난다.[7]
'''닭 우는 축시(丑時)'''
가난한 마을인지라, 절 꼬락서니는 말할 것도 없다.
부처님께 마지 공양은 그만두고, 아침 죽 끓일 쌀알조차 없으니
창문 틈새마다 수북이 앉은 먼지나 바라볼 밖에…
반갑지 않은 참새만 짹짹대고, 친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혼자 앉아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말했던가! 출가자는 애증(愛憎)을 끊는 거라고…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 손수건을 적신다.
'''해가 높이 뜬 사시(巳時)'''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 청을 받아 들여, 시골구석 중이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 처량한 신세에 죽을 지경이다.
키다리 장삼(張三)과 껌둥이 이사(李四),
그들은 눈꼽만큼도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까는, 갑자기 문 앞에 나타나서는
‘차 꿔달라’, ‘종이 꿔달라’ 떼만 쓰고 가더라.
5. 일화
조주는 당나라 시대의 뛰어난 선(禪) 스승으로, 언어적 창의성과 유머 감각으로 유명하다.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조주의 법통은 이어졌으나, 잦은 전쟁과 불교 탄압으로 인해 1000년 이후에는 기록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조주의 어록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 한 스님이 스승에게 "진실된 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조주가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못생겼다."
벽암록에는 12건, 무문관에는 5건 등 여러 공안이 조주와 관련되어 있다. 무문관 제19칙은 남전보원과 조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조주가 "무엇이 도
조주는 ''무문관''의 첫 번째 공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한 스님이 조주에게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조주는 "''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선승 스즈키 슌류는 그의 저서 선심 초심에서 조주를 언급하며,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널 수 없고, 청동 부처는 화로를 통과할 수 없으며,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통과할 수 없다."라는 조주의 말을 인용하여 선 수행에 있어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한다.
5. 1. 남전보원과의 만남
남전보원이 조주종심이 자신의 절로 오자, 방장실에 누워있다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조주종심은 서상원(瑞像院)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남전보원은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8]이건 서상원(瑞像院)의 한자가 상서로울 서(瑞), 모양 상(像), 절 원(院)이라서 언어유희를 한 것이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서상(상서로운 모양)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부처는 보았다고 말했다.[9]
남전보원이 흥미를 보이며 일어나더니 다시 묻기를, 주인이 있는 사미(유주사미)인지 주인이 없는 사미(무주사미)인지를 물었다. 그러니 조주종심이 주인이 있는 사미라고 했다. 남전보원이 주인이 누구냐고 하자, 조주종심은 동짓날이 매우 추우니 큰스님(화상)께서는 몸조심하시라고 말하였다. 이에 남전보원은 조주종심을 기특히 여겼다.[10]
조주종심은 어린 나이에 승려가 되었다. 18세에 마조도일의 제자인 남전보원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조주종심은 남전보원이 죽을 때까지 그 밑에서 계속 수행했다.
6. 평가 및 영향
조주는 점점 더 많은 지역 군사 지휘관(절도사)들이 권력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패권이 붕괴되던 시기인 당나라 시대 중국 최고의 선(禪) 스승으로 칭송받았다. 조주의 법통은 당시 중국의 잦은 전쟁과 불교 탄압으로 인해 빠르게 사라져 1000년 이후에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조주는 언어적 창의성과 유머 감각으로 기억된다.[1] 다음은 그가 남긴 말 중 하나이다.
한 스님이 스승에게 "진실된 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조주가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못생겼다."[1]
벽암록에는 12건, 무문관에는 5건 등 많은 공안이 조주와 관련되어 있다. 무문관 제19칙(공안)은 남천과 조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조주는 남천에게 "무엇이 도
한 스님이 조주에게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조주는 "''무''"라고 말했습니다.[2]
일본 선승 스즈키 슌류는 그의 저서 선심 초심에서 조주(조슈)를 언급하며, 선 수행이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의 조주의 말을 인용한다.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널 수 없고, 청동 부처는 화로를 통과할 수 없으며,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통과할 수 없다."[3]
7. 어록
조주는 그의 언어적 창의성과 유머 감각으로 기억된다.[1] 그의 기록된 말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한 스님이 스승에게 "진실된 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조주가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못생겼다."[1]
벽암록과 무문관 모두 조주와 관련된 많은 공안을 담고 있다. 벽암록에는 12건, 무문관에는 5건이 실려있다. 무문관 제19칙(공안)은 남천과 조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조주가 남천에게 "무엇이 도입니까?"라고 묻자 남천은 평상심이 도라고 대답했다. 이는 마조 도일 (709–788)과 홍주종의 유명한 격언이다. 조주는 ''무문관''의 첫 번째 공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한 스님이 조주에게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조주는 "''무''"라고 말했습니다.[2]
일본 선승 스즈키 슌류는 그의 저서 선심 초심에서 조주를 언급한다. 그는 선 수행이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건널 수 없고, 청동 부처는 화로를 통과할 수 없으며,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통과할 수 없다."라는 조주의 말을 인용한다.[3]
- 『조주진제선사어록 3권』
- 『조주진제선사행장』
8. 전기 자료
조주종심은 어린 나이에 승려가 되었다. 18세에 마조 도일(709–788)의 제자인 남전 보원(748–835)을 만나 그에게 법을 받았다.[1] 남전 보원이 죽을 때까지 그 밑에서 수행했다.
그 후 당나라 전역을 여행하며, 당시 유명한 선(禪) 스승들을 찾아다니다가 80세에 중국 북부의 폐허가 된 사찰인 관음원(觀音院)에 정착했다.[1] 그곳에서 40년 동안 소수의 승려들을 가르쳤다. 이 사찰은 현재 백림사라고 불리며, 문화 대혁명 이후 재건되어 오늘날에도 중국 불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2]
참조
[1]
웹인용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2]
웹인용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3]
웹인용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4]
웹인용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5]
웹인용
"[종교칼럼] 조주의 신발"
https://news.imaeil.[...]
매일신문
2023-09-18
[6]
웹인용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7]
웹인용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5. 조주 고불 선사"
http://www.hyunbulne[...]
현대불교신문사
2023-09-18
[8]
웹인용
조주가 남전을 만났을 때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9-18
[9]
웹인용
조주가 남전을 만났을 때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9-18
[10]
웹인용
조주가 남전을 만났을 때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9-18
[11]
웹인용
“뜰 앞의 잣나무니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12]
웹인용
“뜰 앞의 잣나무니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13]
웹인용
“뜰 앞의 잣나무니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14]
웹인용
불화의 세계-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
http://www.jejubulgy[...]
제주불교
2023-09-18
[15]
웹인용
불화의 세계-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
http://www.jejubulgy[...]
제주불교
2023-09-18
[16]
웹인용
불화의 세계-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
http://www.jejubulgy[...]
제주불교
2023-09-18
[17]
웹인용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18]
웹인용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