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캔필드 스펜서
1. 개요
존 캔필드 스펜서는 1788년 뉴욕주 허드슨에서 태어나, 뉴욕주 대법원장을 지낸 앰브로즈 스펜서의 아들이자 1806년 유니온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는 뉴욕주 주지사의 비서와 변호사를 거쳐, 1811년 형평법 재판소의 달인이 되었다. 1812년 전쟁 당시에는 미국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1816년 연방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820년부터 1822년까지 뉴욕주 의회 의원, 1824년부터 1828년까지 뉴욕주 상원 의원을 지냈고, 1826년 윌리엄 모건 실종 사건 특별 검사로 반메이슨 운동에 관여했다. 1839년부터 1841년까지 뉴욕주 주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존 타일러 대통령에 의해 전쟁 장관과 재무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재무장관 재임 중 관세 정책에 집중했으며, 미국 대법원 대법관으로 두 번 지명되었으나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스펜서는 1855년 뉴욕주 올버니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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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존 캔필드 스펜서 |
|---|---|
| 출생일 | 1788년 1월 8일 |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허드슨 |
| 사망일 | 1855년 5월 17일 |
| 사망지 | 미국 뉴욕주 올버니 |
| 배우자 | 엘리자베스 스콧 스미스 (1809년 결혼) |
| 친척 | 앰브로스 스펜서 (아버지) |
| 학력 | 윌리엄스 칼리지 유니언 칼리지 (문학사) |
| 정당 | 민주공화당 (1825년 이전) 휘그당 (1825년–1855년) |
|---|
| 직책 | 제16대 재무장관 |
|---|---|
| 대통령 | 존 타일러 |
| 임기 시작 | 1843년 3월 8일 |
| 임기 종료 | 1844년 5월 2일 |
| 전임 | 월터 포워드 |
| 후임 | 조지 M. 빕 |
| 직책 | 제17대 전쟁장관 |
|---|---|
| 대통령 | 존 타일러 |
| 임기 시작 | 1841년 10월 12일 |
| 임기 종료 | 1843년 3월 4일 |
| 전임 | 존 벨 |
| 후임 | 제임스 매디슨 포터 |
| 직책 | 제17대 뉴욕주 국무장관 |
|---|---|
| 주지사 | 윌리엄 H. 수어드 |
| 임기 시작 | 1839년 2월 4일 |
| 임기 종료 | 1841년 10월 12일 |
| 전임 | 존 애덤스 딕스 |
| 후임 | 아치볼드 캠벨 (대행) |
| 직책 | 뉴욕주 하원 의장 |
|---|---|
| 임기 시작 | 1820년 1월 4일 |
| 임기 종료 | 1820년 6월 30일 |
| 전임 | 오바디아 저먼 |
| 후임 | 피터 샤프 |
| 선거구 | 뉴욕 제21선거구 |
|---|---|
| 임기 시작 | 1817년 3월 4일 |
| 임기 종료 | 1819년 3월 3일 |
| 전임 | 아치볼드 S. 클라크 |
| 후임 | 앨버트 H. 트레이시 |
| 소속 | 미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812년–1814년 |
| 참전 | 1812년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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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타일러 행정부의 각료 -
존 캘훈
존 캘훈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미국 정치인이자 이론가로, 하원의원, 전쟁부 장관, 부통령, 상원의원을 역임하며 1830년대와 1840년대에 친노예제 진영을 이끌고 주권론을 주장하여 남북전쟁의 씨앗을 뿌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동시 다수결 원칙과 소수자 권리 보호를 강조한 정치 철학으로 논쟁적인 인물로 남아있다. -
존 타일러 행정부의 각료 -
대니얼 웹스터
대니얼 웹스터는 미국의 정치가이자 변호사로, 하원 의원, 상원 의원, 국무 장관을 역임했으며, 웅변가이자 헌법 해석가로 활동하다 1852년에 사망했다. -
뉴욕주의 휘그당 당원 -
윌리엄 H. 수어드
윌리엄 H. 수어드는 뉴욕 주지사,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고 알래스카 매입에 기여한 미국의 정치인이다. -
뉴욕주의 휘그당 당원 -
밀러드 필모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밀러드 필모어는 휘그당 소속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 제13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1850년 타협을 관철시키고 미국-일본 간 최초 통상 조약을 체결하는 등 성과를 남겼으나, 노예제 문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로 비판을 받으며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미국의 판사 -
에릭 홀더
에릭 홀더는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제82대 미국 법무장관을 역임했으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법무장관이다. -
미국의 판사 -
윌리엄 H. 프라이어 주니어
윌리엄 H. 프라이어 주니어는 미국의 법조인 및 정치인으로, 앨라배마주 법무장관을 역임하고 제11 연방 순회 항소 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며, 앨라배마 대법원 십계명 기념물 철거 논란 당시 로이 무어 대법원장의 해임을 요구하여 주목을 받았다.
2. 어린 시절
뉴욕주 허드슨에서 태어난 존 캔필드 스펜서는 뉴욕주 대법원장을 지낸 앰브로즈 스펜서의 아들이었다. 그는 1806년 유니언 칼리지를 졸업하고, 1807년 뉴욕 주지사 대니얼 D. 톰킨스의 비서가 되어 올버니에서 법률을 공부하였다. 1809년 변호사 자격을 얻고 캐넌다이과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엘리자베스 스콧 스미스와 결혼하였고, 1811년 형평법 재판소의 달인이 되었다.
3. 정치 경력
1812년 전쟁 동안 스펜서는 미국 육군에 복무하여 북부 전선 여단의 법무감으로 임명되었다. 1814년 캐넌다이과에서 우체국장을 지냈고, 1815년 뉴욕주 서부 5개 카운티의 법무 차관 및 지방 검사가 되었다. 1816년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에 선출되어 1817년부터 1819년까지 재임했다. 그는 제2 미국 은행의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고한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1819년에는 클린턴파 후보로 뉴욕주 연방 상원 의원에 출마했지만, 벅테일파 새뮤얼 영과 연방주의자 루퍼스 킹과의 삼각 구도로 인해 아무도 당선되지 못했다. 1820년부터 1822년까지 뉴욕주 하원 의원이었으며, 1820년에는 뉴욕주 하원 의장을 지냈다. 1825년부터 1828년까지 뉴욕주 상원 의원이었다.
1826년 스펜서는 윌리엄 모건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 검사로 활동했다. 모건은 프리메이슨이 감춘 비밀을 폭로하여 납치되어 살해되었고, 이로 인해 반 프리메이슨 운동이 일어났다. 스펜서는 반 프리메이슨 편에 섰으며, 프리메이슨 의례에 관한 원고를 작성했다. 1831년부터 1833년까지 다시 뉴욕주 하원 의원이었고, 1837년 뉴욕주 올버니로 이사했다. 그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의 영어판을 편집했으며, 1839년부터 1841년까지 뉴욕주 국무장관을 지냈다.
4. 윌리엄 모건 실종 사건과 반메이슨 운동
1826년, 스펜서는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던 윌리엄 모건이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후 실종된 사건을 조사하는 특별 검사로 활동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반 프리메이슨 운동이 일어났다. 스펜서는 반 프리메이슨 편에 서서 프리메이슨 의례에 관한 원고를 작성하는등 반메이슨당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5. 말년
스펜서는 1855년 5월 18일 올버니에서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부인 엘리자베스 곁에 올버니 전원 묘지에 안치되었다. 재무 장관 퇴임 후 미국 대법원장으로 추천되었으나, 상원에서 스펜서의 임명을 거부했다.
6. 가족 관계
존 캔필드 스펜서는 1809년 엘리자베스 스콧 스미스(1789–1868)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여러 자녀를 두었으나, 많은 수가 유아기 또는 불행한 상황에서 사망했다.
| 자녀 이름 | 출생-사망 | 기타 |
|---|---|---|
| 메리 나탈리 스펜서 | 1810–1886 | 1831년 헨리 모리스(1806–1854)와 결혼. 헨리 모리스는 리처드 발렌타인 모리스 선장의 아들이자 루이스 모리스의 손자. |
| 로라 캐서린 스펜서 | 1812–1891 | 조지 W. 클린턴(1807–1885)과 결혼. 조지 W. 클린턴은 드윗 클린턴의 아들이자 버팔로의 12대 시장. |
| 엘리자 애비 스펜서 | 1815–1816 | 어려서 사망. |
| 앰브로즈 캔필드 스펜서 | 1817–1876 | 1876년 미주리주 린에서 살해. |
| 존 캔필드 스펜서 주니어 | ? - 1845 | |
| 필립 스펜서 | 1823–1842 | 1842년 반란 혐의로 처형. |
| 드윗 클린턴 스펜서 | 1830–1836 | 어려서 사망. |
그의 손자(딸 메리를 통해)는 헨리 루이스 모리스(1845년 출생)였으며, 그는 아치볼드 러셀과 헬렌 러더퍼드(옛 성은 와츠) 러셀의 딸인 안나 러더퍼드 러셀과 결혼했다. 이들은 루이스 스펜서 모리스(1884년 출생)의 부모였다.
그의 손자녀(딸 로라를 통해)는 엘리자베스 스펜서 클린턴(1835–1918), 스펜서 클린턴(1839–1914), 캐서린 클린턴(1841–1881), 조지 클린턴(1846–1934) 등이 있었다.
7. 평가
존 캔필드 스펜서는 다재다능한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뉴욕주와 연방 정부에서 여러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다. 특히 윌리엄 모건 실종 사건을 통해 반 프리메이슨 운동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으며, 이는 당시 미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펜서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영어판을 편집하는 등 지적인 활동에도 기여했다.
스펜서는 중도 개혁적인 성향으로, 1840년대 노예제도와 텍사스 합병 등 미국의 주요 정치 현안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온건하고 합리적인 해결을 추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미국 육군 장관 재임 시절, 영국과의 오리건 국경 분쟁에서 원만한 해결을 우선시하며 협상에 힘썼다. 미국 재무부 장관 시절에는 관세 증세를 통해 재정 수지를 개선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텍사스 합병에 반대하여 존 타일러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사임했다.
8.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1816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 | 하원의원 (뉴욕 제21선거구) | 15대 | 민주공화당 | 27.04% | 8,053표 | 2위 | |
| 1833년 재선거 | 상원의원 (뉴욕 제3부) | 22대 | 휘그당 | 7.38% | 11표 | 2위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