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배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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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천 배티 성지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정착하여 교우촌을 형성한 곳이다. 1850년에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가 설립되었고, 최양업 신부 등은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했다. 병인박해 때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여 순교자 묘가 조성되었으며, 1958년부터 청주교구 관할이 되었다. 현재 배티 성지에는 배티 성당, 조선교구신학교 터, 순교자 묘, 삼박골 교우촌 터 등 주요 유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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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배티 성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진천 배티 성지 |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충청북도 진천군 배티로 708 (백곡면) |
일반 정보 | |
유형 | 기념물 |
지정 번호 | 150 |
지정일 | 2011년 3월 4일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재단법인청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
면적 | 2,197m2 |
수량 | 3개소, 6필지 |
참고 | 진천 양백리 |
웹사이트 | 배티 성지 공식 웹사이트 |
문화재청 ID | 23,01500000,33 |
2. 역사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1830년대에 배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한국 성명 안돈이) 주교가 설립한 조선교구신학교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
최양업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박덕로) 신부와 페롱(한국 성명 권) 신부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수많은 순교자가 배티와 인근 지역에서 탄생하여 순교자 묘에 안장되었다.
1958년부터 청주교구 관할이 되었으며, 1977년부터 청주교구장에 의해 성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1978년에 순교자묘가 단장되었고, 1997년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2001년 2칸 규모의 목조초가로 재현한 조선교구신학교와 신학교 우측에 순교자 유데레사 묘가 있다.
훼손되지 않은 박해기의 천주교 교우촌터인 삼박골 교우촌터와 순교자 묘로 무명 순교자 14인 묘와 순교자 유데레사 묘,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 무명 순교자 6인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도 있다.
2. 1. 교우촌 형성 (1830년대)
1830년대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배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한국 성명 안돈이) 주교가 설립한 조선교구신학교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최양업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박덕로) 신부와 페롱(한국 성명 권) 신부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수많은 순교자가 배티와 인근 지역에서 탄생하여 순교자 묘에 안장되었다.
1958년부터 청주교구 관할이 되었으며, 1977년부터 청주교구장에 의해 성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1978년에 순교자묘가 단장되었고, 1997년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2001년 2칸 규모의 목조초가로 재현한 조선교구신학교와 신학교 우측에 순교자 유데레사 묘가 있다.
훼손되지 않은 박해기의 천주교 교우촌터인 삼박골 교우촌터와 순교자 묘로 무명 순교자 14인 묘와 순교자 유데레사 묘,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 무명 순교자 6인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도 있다.
2. 2. 조선교구신학교 설립 (1850년)
1830년대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Daveluy프랑스어(한국 성명 안토니오) 주교가 배티 성지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853년부터 1864년까지는 최양업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박덕로) 신부와 페롱(한국 성 권) 신부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2001년에는 2칸 규모의 목조초가로 조선교구신학교를 재현하였다.2. 3. 사제관 및 성당으로 사용 (1853년 ~ 1864년)
최양업(세례명: 토마스) 신부는 한국 최초의 유학생이자 두 번째 신부이며,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박덕로) 신부와 페롱(한국 성명 권) 신부는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2. 4. 병인박해와 순교자 (1866년)
1866년 병인박해 때 배티와 인근 지역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여 殉敎者 墓에 안장되었다. 배티 성지 周邊 地域은 天主敎 迫害期에 敎友村으로 形成되었으며, 殉敎者 墓들이 이 곳 저 곳에 位置하고 있다. 훼손되지 않은 迫害期의 天主敎 敎友村터인 삼박골 敎友村터와 殉敎者 墓로 無名 殉敎者 14人 墓와 殉敎者 劉데레사 墓, 삼박골 母女 殉敎者 墓, 無名 殉敎者 6人 墓, 데레사 남편 殉敎者 墓도 있다.2. 5. 청주교구 관할 및 성지 개발 (1958년 ~ 현재)
1958년부터 진천 배티 성지는 청주교구 관할이 되었으며, 1977년부터 청주교구장에 의해 성지 개발이 시작되었다. 1978년에 순교자묘가 단장되었고, 1997년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2001년에는 2칸 규모의 목조 초가로 재현한 조선교구신학교와 신학교 우측에 순교자 유 데레사 묘가 있다. 훼손되지 않은 박해기의 천주교 교우촌터인 삼박골 교우촌터와 순교자 묘로 무명 순교자 14인 묘와 순교자 유 데레사 묘,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 무명 순교자 6인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도 있다.3. 주요 유적
배티 성당은 진천 배티 성지의 중심 건물이다. 1853년부터 1864년까지 최양업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박덕로/Pettitnicolas프랑스어) 신부, 페롱(권/Perron프랑스어) 신부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했다.
1850년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성인 주교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가 있던 곳이다. 최양업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박덕로/Pettitnicolas프랑스어) 신부와 페롱(권/Perron프랑스어) 신부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했다. 2001년 2칸 규모의 목조 초가로 재현한 조선교구신학교와 신학교 우측에 순교자 유데레사 묘가 있다.
배티 성지에는 1978년에 단장된 순교자묘가 위치하고 있다. 무명 순교자 14인 묘는 박해 시기에 이름 없이 순교한 14인의 묘이다.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는 삼박골에서 순교한 모녀의 묘이다. 이 외에도 무명 순교자 6인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 순교자 유데레사 묘가 있다.
삼박골 교우촌 터는 훼손되지 않은 박해기 천주교 교우촌 터이다. 이곳에는 무명 순교자 14인 묘,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 무명 순교자 6인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 등이 있다.
3. 1. 배티 성당
배티 성당은 진천 배티 성지의 중심 건물이다. 1853년부터 1864년까지 최양업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박덕로) 신부, 페롱(한국 성 권) 신부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했다.3. 2. 조선교구신학교 터
1850년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성인 주교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가 있던 곳이다. 최양업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박덕로) 신부와 페롱(한국 성 권) 신부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했다. 2001년 2칸 규모의 목조 초가로 재현한 조선교구신학교와 신학교 우측에 순교자 유데레사 묘가 있다.3. 3. 순교자 묘
배티 성지에는 1978년에 단장된 순교자묘가 위치하고 있다. 무명 순교자 14인 묘는 박해 시기에 이름 없이 순교한 14인의 묘이다.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는 삼박골에서 순교한 모녀의 묘이다. 이 외에도 무명 순교자 6인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 순교자 유데레사 묘가 있다.3. 4. 삼박골 교우촌 터
삼박골 교우촌 터는 훼손되지 않은 박해기 천주교 교우촌 터이다. 이곳에는 무명 순교자 14인 묘,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 무명 순교자 6인 묘, 데레사 남편 순교자 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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