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민황귀비
1. 개요
철민황귀비는 건륭제의 후궁으로, 옹정제 재위 시기에 사망했다. 그녀는 황태자였던 건륭제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며, 옹정 6년(1728년)에 건륭제의 장남 영황을 낳았다. 옹정 13년(1735년)에 사망한 후, 건륭제 즉위 후 철비로 추증되었고, 건륭 10년(1745년)에 황귀비로 재추증되어 철민황귀비로 불리며 유릉에 부장되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철민황귀비 |
|---|---|
| 원래 이름 | 철민황귀비 부찰씨 |
| 휘 | 부찰 난헌 (富察 暖獻) |
| 작위 | 황태자 측실(皇太子 側室) 추존 황귀비(追尊 皇貴妃) |
| 출생일 | ? |
| 출생지 | 헤이룽장성 하얼빈 |
| 사망일 | 1735년 8월 20일 (雍正十三年 七月 三日) |
| 사망지 | 즈리 성 베이징 자금성 |
| 묘지 | 유릉(裕陵) |
| 가문 | 부찰(富察) (출생 시) 아이신 교로 (결혼 후) |
| 배우자 | 건륭제 (1735년 결혼) |
|---|
| 자녀 | 소생 1남 1녀 아들 정안친왕(定安親王) 둘째 딸 |
|---|
| 종교 | 불교 |
|---|
| 시호 | 철민황귀비(哲憫皇貴妃) |
|---|
| 아버지 | 알 수 없음 |
|---|---|
| 어머니 | 알 수 없음 |
-
푸차 할라 -
효현순황후
효현순황후는 건륭제의 황후로, 건륭제와 혼인하여 황후가 되었으며, 검소하고 덕망 있는 인물로 건륭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남순 중 사망했다. -
푸차 할라 -
푸차 푸헝
푸차 푸헝은 건륭제 시대의 만주족 고위 관료로, 황후의 남동생이자 황실 부마의 형으로서 황실과 깊은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사후 대중 문화 속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
건륭제 -
숙가황귀비
숙가황귀비 김씨는 조선 출신으로 건륭제의 후궁이 되어 네 아들을 낳았고, 사후 황귀비로 추봉되었으며, 그녀의 아들들은 청나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녀의 가문은 가경제 때 만주 성씨를 하사받았으며, 현대 대중 문화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
건륭제 -
효성헌황후
청나라 옹정제의 희귀비이자 건륭제의 생모인 효성헌황후는 옹정제 시대에 희비에서 황태후로 책봉되어 숭경황태후라는 존호를 받았고, 건륭제 즉위 후 효심으로 인해 존호가 계속 추가되었으며 사후 효성헌황후로 추봉되었고, 낮은 신분에서 황후가 된 삶은 여러 작품으로 재해석되었다. -
1735년 사망 -
옹정제
옹정제는 청나라의 제5대 황제로, 황위 계승 분쟁 속에서 즉위하여 황권 강화, 재정 개혁, 영토 확장 등의 업적을 남겼으나 형제 숙청과 사상 탄압에 대한 비판도 받는 인물이다. -
1735년 사망 -
최규서
최규서는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성리학자로, 상공부와 동력자원부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고, 그의 문집 《간재집》과 안성 최규서 어서각이 있다.
2. 생애
1726년 당시 황태자 신분이었던 건륭제의 측실로 간택되어 그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나, 옹정제가 보위에 있을 때 병사하였다.
처음에는 황사자 홍력(이후의 보친왕, 건륭제)의 저택에 들어가 격격(側女)이 되었다. 옹정 6년(1728년), 보친왕의 장남 영황(이후의 정안친왕)을 낳았다. 또한 여자아이를 한 명 낳았으나 요절했다.
옹정 13년 7월 3일(1735년 8월 20일), 사망했다. 건륭제 즉위 후, “철비(哲妃)”의 시호를 추증받았다. 건륭 10년(1745년), 황귀비로 재추증되고 “철민(哲憫)”이라는 시호가 더해져 청동릉의 유릉에 부장되었다.
2.1. 가계
철민황귀비는 정황기(Plain Yellow Banner) 후차씨(Fuca clan) 출신으로, 이름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 | 이름 || 비고 | ||
|---|---|---|
| 아버지 | 옹과도(翁果圖) | 종4품 군관(佐領) 역임 |
| 언니 | 용청의 처 |
2.2. 옹정제 시대
옹정제 시대에 철민황귀비는 옹정제의 넷째 아들인 홍력의 시중을 드는 궁녀가 되었는데,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1725년, 홍력의 측실이 되었다. 1728년 7월 5일, 홍력과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 영황을 낳았다. 1731년 5월이나 6월에 둘째 딸을 낳았으나, 이 딸은 1731년 12월이나 1732년 1월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철민황귀비는 옹정 13년 7월 3일(1735년 8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2.3. 건륭제 시대
1726년 당시 황태자 신분이었던 건륭제의 측실로 간택되어 그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나, 시아버지 옹정제(雍正帝)가 보위에 있을 때 병사하였다.
옹정제는 1735년 10월 8일에 사망하였고, 홍력이 황위를 계승하였다. 건륭제는 1736년 11월이나 12월에 부찰씨에게 "철비(哲妃)"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1745년 5월, 그녀의 아들이 황제의 첫째 아들이었기에 "철민황귀비(哲憫皇貴妃)"로 추봉되었다. 1752년, 청동릉(東陵)의 유릉(裕陵)에 안장되었다.
처음에는 황사자 홍력(이후의 보친왕, 건륭제)의 저택에 들어가 격격(側女)이 되었다. 옹정 6년(1728년), 보친왕의 장남 영황(이후의 정안친왕)을 낳았다. 또한 여자아이를 한 명 낳았으나 요절했다.
옹정 13년 7월 3일(1735년 8월 20일), 사망했다. 건륭제 즉위 후, “철비(哲妃)”의 시호를 추증받았다. 건륭 10년(1745년), 황귀비로 다시 추증되고 “철민(哲憫)”이라는 시호가 더해져 유릉에 부장되었다.
3. 사후
옹정제 붕어 이후 건륭제가 즉위하자 황귀비로 추서되었다. 건륭제 즉위 후 “철비(哲妃)”라는 시호를 받았고, 건륭 10년(1745년)에는 황귀비로 다시 추증되면서 “철민(哲憫)”이라는 시호가 더해져 유릉에 묻혔다.
4. 작위
6. 관련 사료
* 청사고
* 대청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