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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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청도 척화비(淸道斥和碑)는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도주관로 146에 위치한 척화비입니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0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의 침입을 경고하고 쇄국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겪은 후, 흥선대원군은 1871년에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명했습니다.
청도 척화비는 화강암 재질로, 상단이 둥글게 다듬어진 호패 모양이며 비 받침을 갖추고 있습니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으나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척화비는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고, 조선이 세계 각국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대부분 철거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도 척화비를 비롯한 몇몇 척화비는 여전히 남아 역사적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청도 척화비는 원래 도로변에 있었으나, 현재는 청도 객사인 도주관 앞으로 옮겨졌습니다. 도주관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사용되던 건물로, 1670년에 건립되었습니다.
| 청도 척화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위치 정보 | |
| 일반 정보 | |
| 이름 | 청도 척화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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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대한민국 |
| 위치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도주관로 146 (서상리) |
|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
| 지정일 | 1985년 8월 5일 |
| 수량 | 1기 |
| 문화재청 ID | 31,01090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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