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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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 자오는 춘추 시대 초나라의 군주이다. 형인 영왕이 대신 백주리를 죽이자 진나라로 망명했다가, 영왕이 국내에 없는 틈을 타 동생들과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왕의 귀환 소문에 두려움을 느껴 자결했다. 자(訾) 땅에 묻혀 자오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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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초 영왕
초 영왕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으로,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후 쇠퇴한 초나라의 패권을 재건하려 했으나, 쿠데타로 자결했다. -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주 경왕 (개)
주 경왕은 주 영왕의 손자이자 주 경왕의 아들로, 형인 도왕 사후 기원전 520년에 즉위하여 왕자조의 난 등을 겪고 성주로 천도했으며 기원전 476년에 사망했다. - 자살한 군주 - 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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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쿠 천황은 겐페이 전쟁 중 다이라 씨 일족과 함께 피신하다 단노우라 전투에서 8세의 나이로 자결한 일본 제81대 천황으로, 그의 죽음은 겐페이 전쟁의 비극적인 종결을 상징하며 비운의 천황으로 기억된다. - 기원전 6세기 중국 사람 - 안영
안영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재상으로, 세 명의 군주를 섬기며 뛰어난 재치와 능력을 발휘하여 제나라 부흥에 기여했고, 그의 청렴함과 지혜는 여러 고사성어와 일화로 남아 춘추 시대 명재상으로 평가받지만,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 기원전 6세기 중국 사람 - 초 영왕
초 영왕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으로,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후 쇠퇴한 초나라의 패권을 재건하려 했으나, 쿠데타로 자결했다.
초 자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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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가족 이름 | 미(羋) |
씨족 이름 | 웅(熊) |
이름 | 비(比) |
작위 | 초나라 왕 |
통치 기간 | 기원전 529년 |
사후 시호 | 자오 |
개인 정보 | |
성 | 웅(熊) |
이름 | 비(比) |
자 | 자간(子干) |
아버지 | 초 공왕 |
사망 연도 | 초 영왕 12년 (기원전 529년) |
2. 생애
형인 영왕이 왕위에 오른 후 대신 백주리(伯州犁)를 죽이자, 영왕의 동생 공자 비(초 자오)와 흑굉(黑肱)은 두려워 각각 진(晉)나라, 정나라로 망명하였다. 기원전 529년, 영왕이 국내에 없을 때 공자 비는 동생 공자 흑굉, 공자 기질(棄疾)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궁을 점령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흑굉은 영윤, 기질은 사마가 되었다. 이후 기질은 고립무원에 처한 영왕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거짓으로 영왕이 돌아왔다고 소문을 내었고, 이에 비와 흑굉은 두려워 자결하였다. 기질이 왕위를 이으니 평왕이다. 자(訾) 땅에 묻혔기 때문에 자오라 하였다.
2. 1. 즉위 전
형인 영왕이 왕이 된 후 대신인 백주리(伯州犁)를 죽이자, 영왕의 동생인 공자 비(초 자오)와 흑굉(黑肱)은 두려워서 각각 진(晉)나라, 정나라로 망명하였다.기원전 529년 영왕이 국내에 없을 때, 공자 비는 동생인 공자 흑굉, 공자 기질(棄疾)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켜 궁을 점령하였다.
2. 2. 즉위와 최후
기원전 529년, 영왕이 국내에 없을 때 공자 비는 동생인 공자 흑굉, 공자 기질(棄疾)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켜 궁을 점령하였다. 비는 스스로 왕이 되었고, 흑굉은 영윤, 기질은 사마로 삼았다. 이후 기질은 고립무원에 처한 영왕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거짓으로 소동을 일으켜 영왕이 돌아왔다고 알렸다. 이에 비와 흑굉은 두려워 자결하였다. 기질이 뒤를 이으니 평왕이다. 자(訾) 땅에 묻혔으므로 자오라 하였다.초 자오 4년(기원전 541년) 11월, 초 자오가 공자 위에게 살해되자 웅비는 진으로 망명했다. 영왕 12년(기원전 529년) 4월, 진에서 귀국한 웅비는 동생인 공자 흑굉, 공자 기질 및 진, 채 사람들과 결탁하여 형인 영왕을 토벌하고자 국도인 영을 공격했다. 웅비는 초왕을 칭하고, 공자 흑굉을 영윤으로, 공자 기질을 사마로 삼았다. 5월, 영왕을 자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신왕인 자오(웅비)는 영왕의 죽음을 듣지 못했다. 관종이 자오에게 공자 기질을 죽이라고 권했지만, 자오는 "심한 짓은 할 수 없다"라며 듣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도에서 "왕이 입성하셨다"라는 유언비어가 돌았고, 공자 기질이 "왕이 도착하셨다"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영왕의 귀환과 국인의 이반을 믿은 자오와 공자 흑굉은 자결했다.
3. 기타
초 자오는 초나라 역사에서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인물로, '자오(訾敖)' 또는 '웅비(熊比)'라고도 불린다. 기원전 529년, 형인 영왕이 나라를 비운 사이, 동생인 공자 흑굉, 공자 기질(棄疾)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공자 기질이 영왕이 돌아온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자, 웅비와 흑굉은 두려워 자살했다. 이로써 웅비의 통치는 매우 짧게 끝났으며, 이후 왕위는 평왕이 된 공자 기질에게 넘어갔다. 웅비는 자(訾) 땅에 묻혔기 때문에 '자오'라는 시호를 받았다.
4. 초나라 군주 계보
형인 영왕 웅건이 왕위에 오른 후, 대신 백주리(伯州犁)를 죽이자 영왕의 동생인 공자 비와 흑굉(黑肱)은 두려움을 느껴 각각 진나라, 정나라로 망명하였다.
기원전 529년, 영왕이 국내에 없을 때 공자 비가 동생인 공자 흑굉, 공자 기질(棄疾)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하였다. 비는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흑굉은 영윤, 기질은 사마가 되었다. 이후 기질은 고립무원에 처한 영왕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거짓으로 소동을 일으켜 영왕이 돌아왔다고 알렸다. 이에 비와 흑굉은 두려워하며 자살하였고, 기질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평왕이다. 자(訾) 땅에 묻혔기 때문에 자오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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