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필 단구승유도
1. 개요
최북필 단구승유도는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이 그림을 그리고 이광사가 글을 쓴 계회도 형식의 작품이다. 1749년에 제작되었으며, 최북의 진경산수화 기년작이자 이광사의 예서체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그림에는 도담삼봉 뱃놀이 장면이 실경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광사의 글과 함께 유환규, 이창우 등 참석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수묵담채로 그려졌으며, 습윤하고 맑은 먹빛과 현장감 있는 묘사가 특징이다.
| 이름 | 최북필 단구승유도 |
|---|---|
| 그림 | Replace this image male-ko.svg |
| 그림 크기 | 150 |
| 국가 | 대한민국 |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
| 유형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378 |
| 지정일 | 2015년 12월 10일 |
| 소유자 | 이호현 |
| 수량 | 1폭 |
| 시대 | 조선시대 |
|---|---|
| 문화재청 ID | 21,03780000,11 |
-
1749년 작품 -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작곡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종결을 기념하는 아헨 강화 조약 축전을 위해 작곡된 5악장 구성의 관현악 모음곡으로, 1749년 런던에서 초연 당시 대규모 관악 앙상블로 연주되었고 이후 관현악 버전으로도 편곡되어 축전 분위기에 맞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
계회도 -
기사계첩 (국보 제325호)
기사계첩은 1719년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여 제작된 계첩으로, 임방의 서문, 숙종의 어제, 김유의 발문, 기로신 명단, 행사 기록화, 기로신 초상화 및 축시, 제작 실무자 명단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김진여, 장태흥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참여하여 조선 후기 궁중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 국보이다. -
계회도 -
기사계첩 (국보 제334호)
1719년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여 제작된 기사계첩은 계회 장면 묘사 그림, 기로신 초상화, 축시, 관련 인물 명단 및 서문과 발문 등으로 구성되어 조선 시대 궁중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조독 수호 통상 조약
조독 수호 통상 조약은 1883년 조선과 독일 제국 간에 체결된 조약으로, 우호 관계, 최혜국 대우, 치외법권 등을 규정하며 불평등 조약으로 평가받는다. -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용양봉저정
용양봉저정은 조선 정조가 수원 현륭원에 행차할 때 쉬어가기 위해 건립된 목조 단청 기와집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2. 지정 사유
崔北筆 丹邱勝遊圖중국어는 조선 후기 서예 대가인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45세(1749년)에 지인들과 함께 도담삼봉과 한벽루 일대를 유람하며 남긴 기념물로, 그의 글씨와 최북의 그림이 함께 있는 희귀한 작품이다. 이광사의 글씨는 연도를 알 수 있는 기년작으로, 그의 예서체를 비롯한 서체의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림을 그린 최북은 중인 출신의 직업 화가로 기년작이 거의 알려진 적이 없었으나, 이 그림은 그의 38세 때 화법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또한 남종화풍을 토대로 한 진경산수화라는 점에서 최북의 그림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丹邱勝遊圖중국어는 최북의 그림과 이광사의 글씨가 함께 실려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그림과 참석자의 이름을 남긴 형식은 17세기 이전 관료들의 계회도(契會圖)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인데, 이것이 18세기에 문인들에 의해 다시 재현된 사례라는 점에서 회화사적으로 이 작품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3. 조사 보고서
<최북필 단구승유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1712~1760)이 그리고, 이광사(1705~1777)가 글을 써서 계회도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오른쪽에는 최북이 그린 도담삼봉 뱃놀이 장면이 실경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도담'이라 쓴 붓글씨와 '최식지인'이라 새긴 백문방인이 있다. 18세기에 유행한 남종화풍을 토대로 수묵으로 그린 뒤 담채하였으며, 물기 많은 붓을 사용한 습윤하고 맑은 먹빛이 잘 드러난다. 도담은 실제 경치를 마주하여 바라본 현장감을 살려 그렸고, 왼편에는 큰 바위를 두드러지게 묘사하여 주변 경관의 특징을 재구성했다.
왼쪽에는 이광사가 특유의 예서체로 쓴 글과 참석자 명단이 있다. 이광사는 1749년(영조 25) 늦은 봄에 한벽루에서 글을 쓰고, 최식과 함께 놀며 그림을 그렸다고 적었다. 참석자 명단에는 유환규, 이광사, 이창우, 백사은, 유환유의 본관, 이름, 자, 생년월일이 나이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계회도 형식을 따르면서도 문인들의 자유로운 기념화적 성격을 띤다.
1749년 봄, 이광사는 특유의 예서체로 한벽루에서 글을 썼다. 그는 최북이 와서 함께 유람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적었다. 이 글은 이광사의 서체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본관, 이름, 자, 생년월일 순으로 기록되었으며, 나이순으로 배열되었다. 이광사는 참석자들의 인적사항 끝에 간지(干支) 세 개를 적었으나, 그 의미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참석자 중 백사은은 1765년에 문과에 합격했으며, 유환규는 1723년에 진사에 합격했다.
<최북필 단구승유도>는 18세기에 유행한 남종화풍을 토대로 수묵담채로 그려졌다. 습윤하고 맑은 먹빛, 실경을 바탕으로 한 현장감, 주변 경관 재구성 등 최북 특유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최북필 단구승유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 1712~1760)이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이 그림은 최북이 38세 때인 1749년에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중 드물게 제작 연도가 밝혀진 기년작(紀年作)이다.
그림의 전반적인 구성을 보면, 오른쪽에 뱃놀이 장면을 실경과 실제 모습대로 그렸으며, 왼편에는 기념이 되는 글과 참석자의 이름을 기록해 두어 계회도의 형식으로 구성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면의 오른쪽 절반에는 최북의 그림을 실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붓글씨로 ‘島潭(도담)’이라 쓰고, ‘崔埴之印(최식지인)’이라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찍었다.
최북은 물기 많은 붓을 사용한 습윤하고 맑은 먹빛을 잘 드러나게 그렸다. 도담은 실경을 마주하여 바라본 현장감을 잘 살려 그렸고, 왼편에는 큰 바위가 두드러져 있어 주변 경관의 특징을 재구성한 부분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희귀한 진경산수화 기년작으로서 최북의 작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3.1. 작품 구성
<최북필 단구승유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1712~1760)이 그리고, 이광사(1705~1777)가 글을 써서 계회도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오른쪽에는 최북이 그린 도담삼봉 뱃놀이 장면이 실경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도담'이라 쓴 붓글씨와 '최식지인'이라 새긴 백문방인이 있다. 18세기에 유행한 남종화풍을 토대로 수묵으로 그린 뒤 담채하였으며, 물기 많은 붓을 사용한 습윤하고 맑은 먹빛이 잘 드러난다. 도담은 실제 경치를 마주하여 바라본 현장감을 살려 그렸고, 왼편에는 큰 바위를 두드러지게 묘사하여 주변 경관의 특징을 재구성했다.
왼쪽에는 이광사가 특유의 예서체로 쓴 글과 참석자 명단이 있다. 이광사는 1749년(영조 25) 늦은 봄에 한벽루에서 글을 쓰고, 최식과 함께 놀며 그림을 그렸다고 적었다. 참석자 명단에는 유환규, 이광사, 이창우, 백사은, 유환유의 본관, 이름, 자, 생년월일이 나이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계회도 형식을 따르면서도 문인들의 자유로운 기념화적 성격을 띤다.
3.2. 최북의 그림
<최북필 단구승유도>는 18세기에 유행한 남종화풍을 토대로 수묵담채로 그려졌다. 습윤하고 맑은 먹빛, 실경을 바탕으로 한 현장감, 주변 경관 재구성 등 최북 특유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최북필 단구승유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 1712~1760)이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이 그림은 최북이 38세 때인 1749년에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중 드물게 제작 연도가 밝혀진 기년작(紀年作)이다.
그림의 전반적인 구성을 보면, 오른쪽에 뱃놀이 장면을 실경과 실제 모습대로 그렸으며, 왼편에는 기념이 되는 글과 참석자의 이름을 기록해 두어 계회도의 형식으로 구성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면의 오른쪽 절반에는 최북의 그림을 실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붓글씨로 ‘島潭(도담)’이라 쓰고, ‘崔埴之印(최식지인)’이라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찍었다.
최북은 물기 많은 붓을 사용한 습윤하고 맑은 먹빛을 잘 드러나게 그렸다. 도담은 실경을 마주하여 바라본 현장감을 잘 살려 그렸고, 왼편에는 큰 바위가 두드러져 있어 주변 경관의 특징을 재구성한 부분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희귀한 진경산수화 기년작으로서 최북의 작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3.3. 이광사의 글
1749년 봄, 이광사는 특유의 예서체로 한벽루에서 글을 썼다. 그는 최북이 와서 함께 유람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적었다. 이 글은 이광사의 서체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본관, 이름, 자, 생년월일 순으로 기록되었으며, 나이순으로 배열되었다. 이광사는 참석자들의 인적사항 끝에 간지(干支) 세 개를 적었으나, 그 의미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참석자 중 백사은은 1765년에 문과에 합격했으며, 유환규는 1723년에 진사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