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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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테콘(kathēkon)은 스토아 철학에서 개별 존재가 자신의 본성에 부합하는 '적합한 행위'를 의미하며, 카토르토마(katorthōma)는 로고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편적 선을 추구하는 '완전한 행위'를 뜻한다. 카테콘은 자연 법칙에 따른 수동적 행위, 카토르토마는 로고스의 인식을 통해 얻어지는 현상적 행위로, 스토아 철학은 이 두 개념을 통해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한다. 스토아 학파는 철학적 성찰을 통해 로고스를 이해하고 카토르토마를 실천하는 정치를 선한 정치로 보았으며, 정치인의 철학적 수련을 강조했다.
스토아 철학에서 인간, 동물, 식물 등의 다양한 행위는 적합한 것, 적합하지 않은 것, 그리고 둘 다 아닌 것(아디아포라)으로 나뉜다. 인간이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거나, 상처를 치유하는 등 인체에 해를 입지 않게 하는 행위는 카테콘타(καθήκοντα, 카테콘의 복수형)라고 불린다.[11]
스토아 철학에서 카테콘(καθήκον)과 카토르토마(κατόρθωμα)는 인간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카테콘은 개별 존재에게 적합한 행위를, 카토르토마는 로고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보편적 선을 추구하는 완전한 행위를 의미한다.
2. 스토아 철학의 기본 개념
그러나 개별 개체에게 적합한 행위가 반드시 도덕적 선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나눠 먹으면 두 사람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배고픔만 채워 다른 사람이 죽게 된다면, 이는 카테콘이지만 도덕적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개별 개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선과 일치하는 카테콘을 카토르토마(κατόρθωμα, ''katorthōma'')라고 칭했다. 이 단어의 복수형은 카토르토마타(katorthōmata)이다.[12]
스토아 학파는 로고스와 행위의 연속성이 공유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보았으며, 카테콘은 세계를 구성하는 현상과 절대라는 두 축에서 현상의 공간을 점유하는 논리 구조의 단면으로 여겼다.[12]
스토아 철학에서는 생물, 무생물 모두 자신의 본성에 맞는 행동을 하며, 이것이 카테콘(kathēkon)의 주된 의미이다. 행위의 도덕성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실현되는 방식에 달려 있다.[4]
2. 1. 아디아포라 (ἀδιάφορα)
스토아 철학에서 ''카테콘타''와 ''카토르토마타'' 사이에는 중간 단계인 ''메사 카테콘타''가 있는데, 이는 무관심한 행동(적절하지도 좋지도 않은)을 의미한다. ''카테콘타''에는 건강 유지, 부모 공경 등이 있으며, 이에 반하는 행동은 ''파라 토 카테콘''으로 부모를 모욕하는 것 등이 해당된다. 중간 행동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무관심한 것들"(ἀδιάφορα – 아디아포라)을 뜻한다. 여기에는 부, 건강 등이 포함되며, 도덕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키케로는 ''선악의 종말에 관하여''(De Finibus Bonorum et Malorum, III, 58–59)에서 현자는 "무관심한 것들"을 다룰 때도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고 강조했다.
2. 2. 덕 (ἀρετή)
세속적인 사람의 행동은 항상 그릇된 것(ἁμαρτήματα ''hamartēmata''ἁμαρτήματα|하마르테마타grc[1] "실수")이지만, 현자의 행동은 항상 ''katorthōmata'', 즉 완벽한 행동이다. 현자는 선을 보고 행동하는 반면, 일반적인 존재(세속적인 사람, 동물 또는 식물)는 생존만을 보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katorthōmata''는 모든 덕과 조화를 이루며 수행되는데, 스토아 학파는 덕들이 서로 얽혀 있다고 믿었다.[5] 세속적인 사람은 하나의 덕에 따라서만 행동할 수 있지만, 모든 덕에 따라 행동하지는 못한다. 스토아 학파는 모든 덕이 얽혀 있으며 완벽한 행위가 이 모든 덕을 포괄한다고 믿는다. 스토아 학파는 종종 이러한 ''katorthōmata''를 "모든 숫자를 소유한"(''pantas apechon tous arithmous''pantas apechon tous arithmous|판타스 아페콘 투스 아리스무스grc)[6] ''kathēkonta''라고 불렀는데, 이는 모든 덕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함에 대한 은유이다.[7] 현자는 또한 ''필연적으로'' ''katorthōmata''를 수행한다.[8] 예외적인 상황에서 현자는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끔찍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katorthōma, 예를 들어 자신을 훼손하는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9]
2. 3. 현자 (σοφός)
로고스를 완전히 이해하고 덕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의미한다. 세속적인 사람의 행동은 항상 그릇된 것(ἁμαρτήματα ''hamartēmata''ἁμαρτήματα|하마르테마타grc[1] "실수")이지만, 현자의 행동은 항상 ''katorthōmata'', 즉 완벽한 행동이다. 현자는 선을 보고 행동하는 반면, 일반적인 존재(세속적인 사람, 동물 또는 식물)는 생존만을 보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katorthōmata''는 모든 덕목과 조화를 이루며 수행되는데, 스토아 학파는 덕목들이 서로 얽혀 있다고 믿었다.[5] 반면, 세속적인 사람은 하나의 덕목에 따라서만 행동할 수 있지만, 모든 덕목에 따라 행동하지는 못한다. 스토아 학파는 모든 덕목이 얽혀 있으며 완벽한 행위가 이 모든 덕목을 포괄한다고 믿는다. 스토아 학파는 종종 이러한 ''katorthōmata''를 "모든 숫자를 소유한"(''pantas apechon tous arithmous''pantas apechon tous arithmous|판타스 아페콘 투스 아리스무스grc)[6] ''kathēkonta''라고 불렀는데, 이는 모든 덕목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함에 대한 은유이다.[7] 현자는 또한 ''필연적으로'' ''katorthōmata''를 수행한다.[8] 예외적인 상황에서 현자는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끔찍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katorthōma, 예를 들어 자신을 훼손하는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9]
3. 카테콘과 카토르토마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스토아 학파는 카테콘과 카토르토마 개념을 통해,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선, 이성에 기반한 도덕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 1. 카테콘 (καθήκοντα)
스토아 철학에서 인간, 인간 외 동물, 식물 등의 다양한 행위는 그 자체에 적합한 것, 적합하지 않은 것, 둘 다 아닌 것(ἀδιάφορα)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어, 인간이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음식을 먹는 행위, 건강한 음식을 먹는 행위,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 등 인체에 해를 입히지 않는 모든 행위를 카테콘타(καθήκοντα, 카테콘의 복수형)라고 할 수 있다.[11]
그러나 개별 개체에게 적합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도덕적 선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나눠 먹으면 두 사람 모두 생존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스스로의 배고픔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죽게 된다면, 해당 개체에게는 카테콘이지만 전체적인 면에서는 도덕적 선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스토아 철학자들은 개별 개체만이 아닌, 총체적 선과 합치하는 카테콘을 상정하였는데, 이를 카토르토마(κατόρθωμα, ''katorthōma'')―복수는 카토르토마타(katorthōmata)―라고 칭한다. 로고스와 행위의 연속성을 공유되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여겼던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카테콘이 세계를 구성하는 현상과 절대라는 두 축에서 전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논리 구조의 단면이라고 보았다.[12]
스토아학파 학자들은 카테콘타와 카토르토마타를 ‘현상의 영역’과 ‘로고스의 인식’에 관한 논쟁과 접목시켜 논의하였다. 카테콘타는 카토르토마타를 포함하는 개념이나, 철학적으로 단련되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적합하며, 그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볼 때 부정할 수 없을 때는 카토르토마타로서 카테콘타가 아니며, 이는 현상적 영역에서 행해지는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카토르토마타는 로고스의 인식을 통해 얻어지는 현상 내 후속적인 행동으로서 카테콘으로, 이것은 현상적 차원에서 관찰할 때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카토르토마타가 철학적 사고에 능한 현인에게만 통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자는 총체적 선 속에서 행해져야 할 카테콘을 인식할 수 없기에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14] 키티온의 제논은 카토르토마타는 로고스의 영역에 접속할 때 충동되는 것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아는 자는 무조건 카토르토마를 행한다.”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10]
여기서 카토르토마를 행하는 것은 다층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로고스를 구성하는 논리에 대한 접근이 낮은 단계에 있는 자는 카토르토마로서 카테콘을 실행하기보다는,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에 따른 카테콘을 실행할 것이며, 로고스를 구성하는 논리에 대한 접근이 높은 단계에서는 그 행동이 생물학적 욕구에 따른 것이 아닌, 이성적 본성으로 나아가며 카토르토마를 실행하게 될 것이다.[10]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식물, 동물, 또는 인간) 각 존재는 자신의 본성에 부합하는 행동을 수행하며, 이것이 ''카테콘''(kathēkon)의 주요 의미이다. 행위의 도덕성은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실현되는 방식에 달려 있다.[4]
스토아 철학자들은 ''카테콘타''와 ''카토르토마타'' 사이의 또 다른 중간 수준을 구별했는데, 이를 ''메사 카테콘타'' 또는 무관심한 행동(적절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이라고 불렀다. ''카테콘타''의 목록에는 건강을 유지하고, 부모를 존경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파라 토 카테콘'' 또는 적절한 행동에 반하는 행동은 이러한 유형의 행동의 반대(부모를 모욕하는 것 등)가 될 것이다. 중간 행동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편리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무관심한 것들"(ἀδιάφορα – ''아디아포라'')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관심한 것들"에는 부, 건강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것들은 도덕의 영역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키케로는 선악의 종말에 관하여에서 현자가 "무관심한 것들"의 영역에서 행동할 때도 여전히 자신의 본성에 따라 편리하게 행동한다고 강조했다.
3. 2. 카토르토마 (κατορθώματα)
스토아 철학에서 카토르토마(κατόρθωμα, katorthōma, 복수형은 카토르토마타(katorthōmata))는 로고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의 욕구를 넘어선 보편적 선을 추구하는 '완전한 행위'이다.[12] 현자만이 카토르토마를 실천할 수 있다고 여겨지며, 이는 모든 덕과 조화를 이루는 행위이다.[5]
스토아 학파는 인간, 동물, 식물 등의 다양한 행위를 적합한 것, 적합하지 않은 것, 둘 다 아닌 것(ἀδιάφορα)으로 나누었다. 이 중 개별 존재에게 적합한 행위를 카테콘(καθήκοντα, 카테콘의 복수형)이라고 칭한다.[11] 예를 들어,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개별 개체에게 적합한 행위가 항상 도덕적 선은 아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개별 개체뿐만 아니라, 총체적 선과 합치하는 카테콘을 카토르토마라고 칭했다.[12]
스토아 학파 학자들은 카테콘타와 카토르토마타를 '현상의 영역'과 '로고스의 인식'에 관한 논쟁과 연결시켜 논의했다. 카테콘타는 카토르토마타를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철학적으로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에 따른 카테콘을 실행한다. 반면, 카토르토마타는 로고스 인식을 통해 얻어지는 현상 내 후속적인 행동으로서의 카테콘으로, 현상적 차원에서 관찰할 때는 부적합해 보일 수 있다. 이는 철학적 사고에 능한 현인만이 카토르토마타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14]
키티온의 제논(Ζήνων ὁ Κιτιεύς)은 카토르토마타가 로고스의 영역에 접속할 때 충동되는 것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즉, "아는 자는 무조건 카토르토마를 행한다"는 결론을 내렸다.[10]
로고스에 대한 접근 단계에 따라 카토르토마를 행하는 것은 다층적이다. 낮은 단계에서는 생물학적 욕구에 따른 카테콘을, 높은 단계에서는 이성적 본성에 따른 카토르토마를 실행하게 된다.[10]
세속적인 사람의 행동은 항상 그릇된 것(ἁμαρτήματα, hamartēmata)[1]이지만, 현자의 행동은 항상 카토르토마, 즉 완벽한 행동이다. 현자는 선을 보고 행동하는 반면, 일반적인 존재는 생존만을 보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토르토마타는 모든 덕목과 조화를 이루며 수행된다.[5] 스토아 학파는 종종 이러한 카토르토마타를 "모든 숫자를 소유한"(pantas apechon tous arithmous)[6] 카테콘타라고 불렀는데, 이는 모든 덕목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함에 대한 은유이다.[7] 현자는 또한 필연적으로 카토르토마타를 수행한다.[8] 예외적인 상황에서 현자는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끔찍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카토르토마(예: 자신을 훼손하는 행위)를 수행할 수도 있다.[9]
3. 3. 메사 카테콘타 (μέσα καθήκοντα)
스토아 철학자들은 카테콘타(καθήκοντα)와 카토르토마타(κατορθώματα) 사이의 중간 단계를 구분했는데, 이를 메사 카테콘타(μέσα καθήκοντα)라고 불렀다. 이는 무관심한 행동(적절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을 의미한다.[4] 카테콘타의 예시로는 건강을 유지하고 부모를 존경하는 것 등이 있다. 파라 토 카테콘(παρὰ τὸ καθῆκον)은 적절한 행동에 반하는 행동으로, 부모를 모욕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중간 행동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편리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무관심한 것들"(ἀδιάφορα – 아디아포라)을 의미한다.[4] 이러한 "무관심한 것들"에는 부, 건강 등이 포함되며, 도덕의 영역에서 완전히 제외되지는 않는다.[4] 키케로는 《선악의 종말에 관하여(De Finibus Bonorum et Malorum, III, 58–59)》에서 현자가 "무관심한 것들"의 영역에서 행동할 때도 여전히 자신의 본성에 따라 편리하게 행동한다고 강조했다.[4]
4. 행위의 의도성과 결정론
스토아 철학에서 카테콘과 카토르토마는 모두 현상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행위이며, 결정론적 층위로 규정되므로 둘 다 결정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개별 개체 차원에서의 카테콘은 자유의지가 아닌 자연 법칙에 따른 수동적 행위이며, 카토르토마는 로고스 인식을 통해 얻어지는 현상적 행위로, 최종적 선으로 나아가지만 결정론적인 단계를 거친다.[15]
4. 1. 결정론적 행위
스토아 철학은 현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결정론적 법칙에 따른다고 보았다. 카테콘(kathēkon)과 카토르토마(katorthōma)는 모두 현상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행위이므로, 둘 다 결정론적 행위로 간주된다.[15]예를 들어, 개별 개체 차원에서의 카테콘은 해당 개체가 자유 의지로 의도해서 행한 것이 아니라, 자연 법칙의 연속성에 의한 수동적 행위에 불과하다. 카토르토마 역시 로고스 인식을 통해 얻어진 현상적 행위로, 최종적 선으로 나아가지만 결정론적인 단계를 거친다.[15]
4. 2. 이성적 사유와 로고스
카토르토마는 로고스에 대한 인식을 통해 얻어지지만, 이성적 사유 자체와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스토아 철학에서 이성적 사유는 로고스에 접속하는 행위로, 현상 세계를 초월한다.[16] 그러나 이성적 사유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적 행위는 카토르토마로 이어지며, 이성은 로고스를 인식한 개체가 현상 세계에서 절대적 선으로 나아가도록 강제한다.[16]5. 카토르토마와 정치
스토아 학파의 정치 이론에서 카토르토마는 중요한 개념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선한 정치'는 철학적 성찰과 연결된다. 정치인은 개별적인 카테콘이 아닌, 전체적인 선으로서 카토르토마를 행해야 하며, 이러한 정치가 곧 선한 정치라고 할 수 있다.[17]
5. 1. 선한 정치의 조건
스토아 철학에서는 철학적 성찰을 통해 로고스를 이해하고 카토르토마를 실천하는 정치만이 선한 정치라고 보았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정치인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전체의 선을 추구해야 한다.[17]5. 2. 정치인과 철학 교육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정치인에게 로고스를 이해하기 위한 철학 교육을 강조하였다.[17] 이는 더불어민주당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과도 연결될 수 있다.6. 한국 사회에서의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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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웹사이트
Nova Roma
http://www.novaroma.[...]
[2]
웹사이트
Section 2: Hellenistic and Roman Ethics
http://pressurecooke[...]
2007-07-29
[3]
논문
Two Concepts of Morality: A Distinction of Adam Smith's Ethics and its Stoic Origin
https://www.jstor.or[...]
[4]
서적
The Hellenistic Philosophers: vol. 1. translations of the principal sources with philosophical commenta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5]
서적
On Stoic Self-Contradictions
[6]
리뷰
Review of The Cambridge History of Hellenistic Philosophy
http://ccat.sas.upen[...]
Cambridge University Press
[7]
정보
[8]
인용구
De Finibus Bonorum et Malorum
[9]
서적
Lives and Opinions of Eminent Philosophers
[10]
웹사이트
Nova Roma
http://www.novaroma.[...]
[11]
서적
스토아주의
글항아리
[12]
정보
[13]
서적
The Hellenistic Philosophers: vol. 1. translations of the principal sources with philosophical commenta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4]
서적
Lives and Opinions of Eminent Philosophers
[15]
인용구
De Finibus Bonorum et Malorum
[16]
정보
[17]
서적
서양철학사: 상권·고대와 중세
이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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