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데브란두스 1세
1. 개요
힐데브란두스 1세는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피핀 2세의 아들이자 카를 마르텔의 형제 또는 이복 형제이며, 프랑크 왕국의 귀족이었다. 카를 마르텔 치세 동안 궁정 역사가로 활동하며 '비르 일루스트리스' 칭호를 받았고, 737년에는 부르군트 백작과 프로방스 공작 직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카를 마르텔의 사라센 원정에 참여하여 아비뇽 전투와 나르본 전투에서 군대를 지휘했으며, 카를 마르텔을 찬양하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힐데브란두스는 751년까지 프레데가르 연대기의 두 번째 속편 간행에 참여했으며, 그의 아들 니벨룽 1세는 벡상 백작이자 니벨룽겐 가문의 선조로 추정된다.
| 이름 | 킬데브란트 1세 |
|---|---|
| 다른 이름 | 힐데브란트 힐데브란트 1세 |
| 출생 | 기원전 678년경 |
| 출생 장소 | 오툉, 프랑키아 |
| 사망 | 751년 |
| 사망 장소 | 오툉, 프랑키아 |
| 국적 | 프랑크 |
| 아버지 | 헤르스탈의 피핀 |
| 어머니 | 알파이다 |
| 직업 | 공작 |
|---|
-
프랑크인 작가 -
니타르두스
9세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니타르두스는 샤를마뉴 대제의 외손자이자 군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며, 퐁트누아 전투 참여와 스트라스부르크 서약 기록 참여, 그리고 《루트비히 경건왕의 아들들의 역사》 저술을 통해 프랑크 왕국의 분열 과정과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
678년 출생 -
장구령
당나라의 재상이자 시인인 장구령은 뛰어난 문장과 청렴한 정치로 이름을 날렸으며, 요직을 거쳐 상서우승상까지 올랐으나 이린부와의 갈등으로 좌천되었고, "감우시"와 같은 작품을 남겨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인정받았다. -
678년 출생 -
이회 (678년)
이회는 678년 이은지의 장남으로 태어나 위씨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웠으나, 묘지명과 달리 묘지에는 고구려 관련 내용이 적어 가계 배경 조작 의혹이 있으며, 러우정하오가 이회와 이은지의 묘지 사료를 바탕으로 이씨 가문의 계보를 고증했다. -
프랑크인 시인 -
니타르두스
9세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니타르두스는 샤를마뉴 대제의 외손자이자 군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며, 퐁트누아 전투 참여와 스트라스부르크 서약 기록 참여, 그리고 《루트비히 경건왕의 아들들의 역사》 저술을 통해 프랑크 왕국의 분열 과정과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
프랑크인 시인 -
안길베르투스 켄툴렌시스
안길베르투스 켄툴렌시스는 샤를마뉴 대제의 신임을 받은 외교관이자 생-리키에 수도원장으로서, 프랑크 왕국과 교황청의 관계를 조율하고 수도원 재건과 학문 연구에 기여했으며,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시인이자 학자이다.
2. 생애
힐데브란트는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피핀 2세와 그의 첩 혹은 두번째 부인인 알파이드의 아들이자 카를 마르텔의 동복 친형제였다. 일설에는 카를 마르텔과는 이복 형제간으로 보기도 한다.
카를 마르텔 집권 후, 힐데브란트는 궁정 역사가로 활동하며 '비르 일루스트리스(Vir illustris, 빛나는 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737년 아내 엠마(Emma)의 친정아버지로부터 부르군트 백작직과 프로방스 공작직을 상속받았고, 마홀르-슈흐-쎈느(Marolles-sur-Seine) 지역에 대저택을 소유했다.
같은 해 카를 마르텔의 사라센 원정에 동행하여 아비뇽 전투와 나르본 전투에서 군대를 지휘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카를 마르텔을 찬양하는 작품을 쓰고 가문의 역사가로도 활약했다.
739년과 740년에는 피핀 3세 휘하의 장군으로 부르군트의 독립 기도를 저지하는 데 참여했다. 프로방스 공작직과 부르군트 백작직을 피핀 3세에게 대리인 자격으로 하사받았다는 설도 있다.
751년까지 프레데가르 연대기의 두번째 속편 간행에 참여했다. 프레데가르 연대기에 따르면 751년과 768년 그의 아들 니벨룽 1세의 기사에 간략하게 그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한다.
2.1. 가계 배경
힐데브란트는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피핀 2세와 그의 첩 혹은 두번째 부인인 알파이드의 아들로, 카를 마르텔의 동복 친형제로 본다. 그러나 일설에는 힐데브란트는 피핀 2세의 또다른 서자로서 카를 마르텔과 이복 형제간으로 보기도 한다.
2.2. 카를 마르텔 치하의 활동
카를 마르텔이 집권한 후, 힐데브란트는 궁정 역사가로 활동했다. 어느 시점에 그는 '비르 일루스트리스(Vir illustris, 빛나는 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737년 아내 엠마(Emma)의 친정아버지로부터 부르군트 백작직과 프로방스 공작직을 상속받았고, 마홀르-슈흐-쎈느(Marolles-sur-Seine) 지역에 대저택을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재력을 보유했다.
737년 카를 마르텔의 사라센 원정에 동행하여 아비뇽 전투와 나르본 전투에서 군대를 지휘하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카를 마르텔을 찬양하는 작품을 썼으며, 가문의 역사가로도 활약했다.
2.3. 피핀 3세 치하의 활동
739년과 740년 피핀 3세 휘하의 장군으로 부르군트의 독립 기도를 저지하는 데 참여했다. 일설에는 프로방스 공작직과 부르군트 백작직을 피핀 3세에게 대리인 자격으로 하사받았다고도 한다.
2.4. 프레데가르 연대기 속편 간행 참여
751년까지 프레데가르 연대기의 두번째 속편 간행에 참여하였다. 프레데가르 연대기에 따르면 751년과 768년 그의 아들 니벨룽 1세의 기사에 간략하게 그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한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피핀 2세 | 630년 - 714년 |
| 형제 | 카를 마르텔 | 680년경 - 741년, 이복 형으로 추정 |
| 부인 | 엠마 | |
| 아들 | 니벨룽 1세 | 720년경 - 770년/786년, 니벨룽겐 가문의 선조로 추정, 벡상 백작 |
4. 평가
힐데브란트는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특히 카를 마르텔의 치세에 그의 주요 업적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프랑크 왕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그의 역사 기록 활동은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