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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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751년은 당나라 천보 10년, 신라 경덕왕 10년 등에 해당하며, 탈라스 전투가 벌어져 제지술이 중동으로 전파된 해이다.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힐데리히 3세를 폐위하고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으며, 롬바르드 왕국의 아이스툴프는 라벤나 총독부를 멸망시켰다. 또한, 신라에서는 불국사가 건립되었고, 일본에서는 와카 시집 《개부창》이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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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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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 | |
주요 사건 | 이슬람력 133년 당나라와 압바스 왕조 사이의 탈라스 전투 (7월) 랑고바르드 왕국이 라벤나 총독부를 점령함. |
탄생 | |
출생 | 카를로만, 카롤루스 왕조의 프랑크 귀족 (대략적인 날짜) |
사망 | |
사망 | 당 현종, 당나라의 황제 (685년 출생) 아나스타시우스 2세, 비잔티움 황제 몽게 마라, 아일랜드 수도사 |
2. 연호
3. 기년
4. 주요 사건
- 탈라스 전투 - 압바스 왕조군이 당나라군을 탈라스에서 격파. 제지술이 중동으로 전파되다.[1]
- 피피누스 3세 브레비스, 카롤루스 왕조 개창
- 6월 –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의 아들인 레오 4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동 황제로 즉위한다. 레오의 어머니 이레네가 사망한 지 1년 정도 후에, 콘스탄티누스 5세의 두 번째 부인인 마리아가 사망하며, 레오의 대관식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 11월 – 카롤루스 마르텔의 막내 아들인 피핀 3세는 마지막 메로빙거 왕조의 왕인 힐데리히 3세를 생 베르탱 수도원으로 은퇴시키고, 교황 자카리아의 지지를 받아 스스로 프랑크 왕을 선포한다. 그는 마인츠의 주교인 성 보니파시오에 의해 수아송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카롤링거 왕조의 첫 번째 군주가 된다.[1]
- 롬바르드 왕국의 국왕 아이스툴프는 라벤나와 로마냐를 점령하여 비잔틴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를 멸망시킨다. 마지막 총독 에우티키우스는 롬바르드인에게 살해당한다. 아이스툴프는 로마를 위협하며 인두세를 요구한다. 교황 자카리아는 이에 놀라 비잔틴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 탈라스 전투: 아랍과 중국 군대 간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된 만남. 타슈켄트와 페르가나의 통치자는 모두 당나라의 명목상 봉신이다. 중국은 두 세력 간의 분쟁에서 페르가나를 돕기 위해 개입했고, 중앙아시아 지배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하던 아바스 칼리파조가 이 분쟁에 관여하게 된다. 사마르칸트에서 온 아랍군은 고선지가 이끄는 중국군(3만 명)에 맞서 싸우기 위해 진군했다. 고선지는 이 지역에서 일련의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의 튀르크족 용병인 카를루크가 배반했다. 1만 명의 당나라 군대 중 2,000명만이 탈라스 강에서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랍이 승리하여 이후 150년 동안 트란스옥시아나의 지배 세력으로 남게 된다.
- 이슬람교의 제지술 도입: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 공장이 사마르칸트에서 가동된다. 탈라스 강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장인들이 제지 기술을 공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비록 종이는 실크로드를 통해 훨씬 이전에 중국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랍 학자들은 종이를 사용하여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을 번역하게 된다.
- 721년의 폭풍과 마찬가지로, 올해 중국 남부의 항구 도시인 양저우에서 발생한 폭풍으로 운하 및 강을 오가는 선박 1,000척 이상이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추정 날짜).
- 일본의 와카 시집 《개부창》이 편찬되었다.
- 탈라스 강 전투 - 당나라가 아바스 왕조에 패배. 제지법이 이슬람에 전해지다.
- 랑고바르드 왕국의 아이스투르프가 라벤나 총독부를 함락. 동로마 제국의 북 이탈리아 지배가 끝나다.
-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 (소 피핀)가 메로빙거 왕조의 힐데리히 3세를 폐위하고 왕이 되어, 카롤링거 왕조가 성립하다.
- 회풍조가 완성 - 현존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한시집
- 신라에서 불국사가 건립되다.
4. 1. 동아시아
- 압바스 왕조군이 당나라군을 탈라스 전투에서 격파하여 제지술이 중동으로 전파되었다.
- 중국 남부의 항구 도시인 양저우에서 발생한 폭풍으로 운하 및 강을 오가는 선박 1,000척 이상이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 일본의 와카 시집 《개풍조》가 편찬되었다.
- 신라에서 불국사가 건립되었다.
4. 2. 한반도
신라에서 불국사가 건립되다.4. 3. 서유럽
롬바르드 왕국의 국왕 아이스툴프는 라벤나와 로마냐를 점령하여 비잔틴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를 멸망시켰다.[1] 마지막 총독 에우티키우스는 롬바르드인에게 살해당했고, 아이스툴프는 로마를 위협하며 인두세를 요구했다.[1] 교황 자카리아는 비잔틴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1]11월 – 카롤루스 마르텔의 막내 아들인 피핀 3세는 마지막 메로빙거 왕조의 왕인 힐데리히 3세를 생 베르탱 수도원으로 은퇴시키고, 교황 자카리아의 지지를 받아 스스로 프랑크 왕을 선포하였다.[1] 그는 마인츠의 주교인 성 보니파시오에 의해 수아송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카롤링거 왕조의 첫 번째 군주가 되었다.[1]
4. 4. 비잔틴 제국
랑고바르드 왕국의 아이스투르프가 라벤나 총독부를 함락하여 동로마 제국의 북 이탈리아 지배가 끝났다.6월 -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의 아들인 레오 4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동 황제로 즉위했다. 레오의 어머니 이레네가 사망한 지 1년 정도 후에, 콘스탄티누스 5세의 두 번째 부인인 마리아가 사망했으며, 레오의 대관식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4. 5. 이슬람 세계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압바스 왕조군이 당나라군을 격파하면서 제지술이 중동으로 전파되었다. 이 전투는 아랍과 중국 군대 간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된 만남으로, 타슈켄트와 페르가나의 통치자는 모두 당나라의 봉신이었다. 중국은 두 세력 간의 분쟁에서 페르가나를 돕기 위해 개입했고, 중앙아시아 지배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하던 아바스 칼리파조가 이 분쟁에 관여하게 되었다. 사마르칸트에서 온 아랍군은 고선지가 이끄는 중국군에 맞서 싸웠으나, 고선지의 튀르크족 용병인 카를루크가 배반하여 당나라 군대는 패배하였다. 아랍의 승리로 이후 150년 동안 트란스옥시아나의 지배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이슬람교의 제지술 도입으로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 공장이 사마르칸트에서 가동되었다. 탈라스 강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장인들이 제지 기술을 공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종이는 실크로드를 통해 훨씬 이전에 중국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랍 학자들은 종이를 사용하여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을 번역하게 되었다.
5. 문화
신라의 김대성이 경주에 불국사와 석굴암 사찰의 건설을 명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불교 경전이 고려에서 인쇄되었다. 테오도르가 테오필락토스를 이어 안티오키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되었다. 일본 나라의 도다이지에 있는 비로자나불이 완성되었다.
5. 1. 불교
신라의 김대성이 경주에 불국사와 석굴암 사찰의 건설을 명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불교 경전이 고려에서 인쇄되었다. 테오도르가 테오필락토스를 이어 안티오키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되었다. 일본 나라의 도다이지에 있는 비로자나불이 완성되었다.5. 2. 문학
6. 탄생
7. 사망
- 6월 – 마리아, 비잔틴 제국 황후
- 힐데브란트 1세, 부르고뉴 공작 (678년 출생)
- 유티키우스, 비잔틴 총독, 라벤나 총독령
- 페르구스 막 포가르타이그, 브레가의 왕 (아일랜드)
- 기술프 2세, 베네벤토 공작 (대략적인 사망일)
- 만수르 이븐 줌후르 알-칼비, 신드의 아랍 총독
- 2월 25일 (천평보승 3년 1월 25일) - 탁기황녀,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의 황족, 사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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