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만차이 조약
1. 개요
투르크만차이 조약은 1828년 제2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페르시아는 에리반 칸국, 나히체반 칸국, 탈리쉬 칸국, 오르두바드 및 무간 지역을 러시아에 할양하고, 카스피해 항해권을 상실했다. 또한 러시아에 배상금을 지불하고, 러시아 국민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했다. 이 조약은 이란의 영토 손실과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켰으며,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지역의 민족 갈등을 야기했다.
| 이름 | 투르크만차이 조약 |
|---|---|
| 원어 이름 | 페르시아어: عهدنامه ترکمانچای (Ahdnāme-ye Torkmânčây) 러시아어: Туркманчайский договор (Turkmanchayskiy dogov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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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정보 | 고레스탄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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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 | 1828년 2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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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토르카만차이, 카자르 이란 |
| 서명국 | 이반 파스케비치 아바스 미르자 미르자 아볼하산 칸 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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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내용 | 북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를 러시아에 할양 러시아의 영사 재판권 인정 카스피해에서 러시아 군함의 독점 통행권 인정 500만 토만의 배상금 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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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 언어 |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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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조약 -
몬테비데오 조약
몬테비데오 조약은 1828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의 시스플라티나 전쟁을 종식시키고 우루과이의 독립을 승인하기 위해 영국 중재로 체결되었으며, 우루과이 내전 시 개입 가능성, 라플라타 강 자유 항해 보장, 헌법 제정 조항 등을 포함한다. -
이디르주의 역사 -
예레반현
예레반 현은 1849년 러시아 제국에서 티플리스 현으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1918년 아르메니아 제1 공화국의 기반이 되었으나 이후 분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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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주
아르메니아주는 1828년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이후 러시아 제국에 편입된 예레반 칸국과 나흐치반 칸국 영토에 설치되었으며, 코카서스 지역의 무슬림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기독교인들을 통해 통치하려 했으나, 1840년 조지아-이메레티아 지방에 병합되었다. -
러시아-이란 관계 -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2015년 9월부터 시작된 군사적 지원으로, 아사드 정권 유지, 서방 세력 견제, 타르투스 기지 유지, 중동 영향력 확대 등의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반군을 공격하여 내전 판도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
러시아-이란 관계 -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러시아와 페르시아 제국 간에 벌어진 정치적, 경제적, 영토적 이해관계가 얽힌 일련의 전쟁과 충돌로, 러시아가 캅카스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페르시아가 영토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 조약 체결의 배경
제2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타브리즈를 함락하면서, 강화 조약 체결이 추진되었다. 조약은 타브리즈 인근의 투르크만차이에서 체결되었다.
2.1. 전쟁의 경과
제2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타브리즈를 함락시켰다. 이를 계기로 타브리즈에 가까운 투르크만차이에서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3. 조약의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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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만차이 조약은 16개 조항과 상업 관련 9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제10조: 러시아는 페르시아 어디든 영사 사절을 보낼 권한을 얻었으며, 양측은 상세한 조건이 포함된 통상 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 페르시아는 골리스탄 조약에서 한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 조약을 통해 가자르 왕조는 다른 서구 열강과도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3.1. 영토 할양
페르시아는 에리반 칸국(현재 아르메니아 중부 대부분), 나히체반 칸국(현재 아제르바이잔의 나히체반 자치 공화국 대부분), 탈리쉬 칸국(아제르바이잔 남동부), 오르두바드 및 무간 지역(현재도 아제르바이잔의 일부)을 러시아에 할양했으며, 골리스탄 조약에서 러시아에 양도한 영토를 재확인했다.
3.2. 배상금 지불
페르시아는 러시아에 금 10 코루르 또는 은 2,000만 루블(1828년 통화 기준)을 지불할 것을 약속했다.
3.3. 치외법권 인정
페르시아는 페르시아 내 러시아 국민에 대한 치외법권을 인정했다. 이는 러시아인이 페르시아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페르시아 법이 아닌 러시아 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조항은 페르시아의 사법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였다.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시작으로 가자르 왕조는 다른 서구 열강과도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3.4. 카스피해 독점 항해권
투르크만차이 조약 제8조에 따라, 페르시아 선박은 카스피해와 그 해안 전체를 항해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잃었고, 이 권리는 러시아에 부여되었다. 이는 페르시아가 카스피해에서의 해상 주권을 상실하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독점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3.5. 기타 조항
* 제7조: 러시아는 파트 알리 샤가 사망할 경우 아바스 미르자를 페르시아 왕위 계승자로 지지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아바스 미르자가 파트 알리 샤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무효가 되었다.
* 제13조: 전쟁 포로를 교환했다.
* 제15조: 파트 알리 샤는 이란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주민이나 관리에게 전쟁 중 또는 러시아 군대의 임시 점령 기간 동안 수행한 행위에 대해 어떠한 혐의도 부과하거나 박해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또한, 언급된 지역의 모든 주민에게 1년 이내에 페르시아 지역에서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다.
4. 조약의 영향
알렉산더 미카베리제 교수에 따르면 투르크만차이 조약은 페르시아가 코카서스 지역을 러시아에 상실했음을 최종적으로 인정한 조약이다.
케임브리지 이란 역사에 따르면, 고원 지대의 통치자들이 아라스 강 너머에 대한 종주권을 행사할 수단이 부족하더라도 인접 칸국들은 여전히 이란의 속국으로 간주되었다. 이란은 아라스 강 건너편의 예레반 칸국, 나흐치반 칸국, 카라바흐 칸국과 란카란에 행정 본부를 두고 타브리즈나 라슈트 방향으로부터 압력을 받기 쉬운 아라스 강 이쪽의 탈리쉬 칸국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했다.
일부 저자들은 1813년 굴리스탄 조약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인해 이란의 영토가 할양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인과 탈리쉬인이 이란의 동족과 분리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두 조약 이후, 이전의 이란 영토는 러시아, 그리고 이후 약 180년 동안 소련의 통제하에 놓였으며, 다게스탄은 오늘날까지 러시아 연방의 구성 공화국으로 남아 있다. 굴리스탄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에서 양도된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독립을 획득했다.
제2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타브리즈를 함락시키자, 타브리즈에 가까운 투르크만차이에서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16개 조항과 상업에 관한 9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북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러시아에 할양, 러시아의 영사 재판권 인정, 카스피해에서의 러시아 군함 독점 통행권 인정, 500만 토만의 배상금 지불 등이다. 이 조약을 시작으로 가자르 왕조는 다른 서구 열강과도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4.1. 페르시아에 미친 영향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페르시아는 굴리스탄 조약(1813)에서 러시아에 할양한 지역 외에도 예레반 칸국, 나흐치반 칸국, 탈리쉬, 오르두바드, 무간 등의 칸국에 대한 주권을 추가로 넘겨주어야 했다. 아라스 강이 페르시아와 러시아 사이의 새로운 국경선으로 확정되었다.
페르시아는 2천만 루블의 은을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고, 카스피해 함대 유지에 대한 독점적 권리도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또한 러시아 상품에 대한 특혜를 보장하여,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페르시아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러시아는 페르시아 내 어디든 영사 특사를 파견할 권리를 인정받았으며, 영사 재판권도 인정받았다.
이 조약으로 페르시아는 코카서스 지역에 대한 영토를 상실했음을 최종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란의 영토 할양으로 아제르바이잔인과 탈리쉬인이 이란의 동족과 분리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제2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타브리즈를 함락시킨 후, 투르크만차이에서 체결된 이 조약은 페르시아가 서구 열강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시작점이 되었다.
4.2. 러시아에 미친 영향
알렉산더 미카베리제 교수에 따르면,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페르시아는 캅카스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조약 제4조에 따라 이란은 굴리스탄 조약으로 러시아에 합병된 지역 외에도 예레반, 나흐치반 등의 칸국에 대한 주권을 양도했고, 아라스 강이 새로운 국경선이 되었다. 또한 이란은 러시아에게 20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카스피해 함대 유지 독점권과 치외 법권을 인정해야 했다.
이 조약으로 러시아는 캅카스 지역에서 확고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남하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제15조에 따라 이란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라스 강 북쪽의 러시아 통제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면서, 1828년부터 1831년까지 45,000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이란에서, 100,000명이 오스만 제국에서 러시아령 아르메니아로 이주했다. 1829년 10월부터는 7,668가구가 러시아령 아르메니아로 이주했으며, 결국 총 14,047가구, 90,000~100,000명이 이주했다.
일부 학자들은 1813년 굴리스탄 조약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인해 이란 영토가 할양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인과 탈리쉬인이 이란의 동족과 분리되었다고 주장한다.
4.3.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에 미친 영향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이란은 굴리스탄 조약으로 러시아에 합병된 지역 외에도 예레반 칸국, 나흐치반 칸국 등 여러 지역에 대한 주권을 러시아에 넘겨주어야 했다. 아라스강이 이란과 러시아의 새로운 국경선이 되면서, 이란 영토였던 곳이 러시아와 이후 소련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에는 이 지역에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포함한 독립 국가들이 세워졌다.
이 조약으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이란에 남은 동족과 분단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는 아제르바이잔 민족 정체성 문제로 이어졌다.
한편, 투르크만차이 조약 제15조에 따라 이란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라스강 북쪽의 러시아 통제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었다. 1828년부터 1831년까지 45,000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이란에서, 100,000명이 오스만 제국에서 러시아령 아르메니아로 이주했다. 이러한 이주는 아르메니아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5. 역사적 평가와 논란
투르크만차이 조약은 체결 이후 여러 역사적 평가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는 각기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이 조약으로 인해 코카서스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특히 예레반 칸국, 나흐치반 칸국 등 여러 지역을 러시아에 할양하면서 아라스강이 새로운 국경선이 되었다. 이란은 이들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계속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웠다.
조약 체결 이후 페르시아 내 반러시아 감정이 고조되면서 1829년에는 테헤란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 대사이자 유명 극작가였던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가 사망했으며, 이란 국왕은 사죄의 의미로 샤 다이아몬드를 러시아 황제에게 바쳤다.
5.1. 이란의 시각
알렉산더 미카베리제 교수에 따르면, 투르크만차이 조약은 페르시아(이란)가 코카서스 지역을 러시아에 상실했음을 최종적으로 인정한 조약이다. 이 조약 제4조에 따라 이란은 굴리스탄 조약(1813)으로 러시아에 합병된 지역 외에도 예레반 칸국, 나흐치반 칸국, 탈리쉬, 오르두바드, 무간의 칸국에 대한 주권을 양도해야 했다. 아라스강은 이란과 러시아 사이의 새로운 경계가 되었다.
케임브리지 이란 역사에 따르면, 고원 지대의 통치자들은 아라스 강 너머에 대한 종주권을 행사할 힘이 부족했지만, 인접한 칸국들은 여전히 이란의 속국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 주에 가장 가까운 예레반 칸국, 나흐치반 칸국, 카라바흐 칸국, 탈리쉬 칸국은 이란의 종주권을 다시 부과하려는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1813년 굴리스탄 조약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인해 이란의 영토가 할양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인과 탈리쉬인이 이란의 동족과 분리되었다고 일부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 두 조약 이후, 이전의 이란 영토는 러시아와 소련의 통제하에 약 180년 동안 놓였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굴리스탄 조약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에서 양도된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세 국가가 독립을 획득했으며, 다게스탄은 오늘날까지 러시아 연방의 구성 공화국으로 남아있다.
5.2. 아제르바이잔의 시각
굴리스탄 조약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인해 이란의 영토가 할양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인과 탈리쉬인이 이란의 동족과 분리되었다고 일부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 두 조약 이후, 이전의 이란 영토는 러시아와 소련의 통제하에 약 180년 동안 놓였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굴리스탄 조약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에서 양도된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세 개의 독립 국가가 탄생했다.
5.3. 아르메니아의 시각
Туркманчайский договор러시아어은 이란이 코카서스 지역을 러시아에 상실했음을 최종적으로 인정한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알렉산더 미카베리제 교수에 따르면, 조약 제4조에 따라 이란은 예레반 칸국, 나흐치반 칸국 등 여러 지역에 대한 주권을 러시아에 양도했다. 케임브리지 이란 역사에서는 이란이 아라스 강 너머 칸국들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했지만, 이들 칸국은 여전히 이란의 속국으로 간주되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예레반 칸국과 나흐치반 칸국은 아제르바이잔 주에 가장 가까이 위치하여 이란의 종주권 주장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일부 학자들은 1813년 굴리스탄 조약과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인해 이란 영토가 할양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인과 탈리쉬인이 이란의 동족과 분리되었다고 주장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조약으로 양도된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르메니아를 포함한 세 개의 국가가 독립을 획득했다.
5.4. 테헤란 주재 러시아 대사관 학살 사건
조약 체결 후, 페르시아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1829년 2월 11일, 분노한 폭도들이 테헤란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습격하여 안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살로 새로 임명된 페르시아 주재 러시아 대사이자 유명한 극작가였던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도 사망했다. 그리보예도프는 조약 조건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었다. 이란 국왕은 러시아 대사 살해에 대해 사죄하는 의미로 러시아 황제에게 가장 귀중한 왕관 보석 중 하나인 샤 다이아몬드를 바쳤다.
6. 조약 이후의 상황
투르크만차이 조약 체결 이후의 상황은 현재까지도 관련국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