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외국인학교
1. 개요
평양외국인학교는 1900년 6월 평양에 설립된 외국인 자녀를 위한 학교이다. 당시에는 Pyeng Yang Foreign School로 불렸으며, 1914년 기숙사 설립 이후 뉴욕주 교육과정을 따르는 명문 학교로 성장했다. 중국, 일본 등 동양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이 다녔으며, 대천덕 신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1940년 11월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폐교되었으며, 학교 건물은 한국 전쟁 중 파괴되었다. 대전외국인학교가 평양외국인학교의 교육 정신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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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평양외국인학교 |
|---|---|
| 원래 이름 | 평양외국인학교 |
| 한자 표기 | 平壤外國人學校 |
| 로마자 표기 | Pyeongyang Oegugin Hakgyo |
| 문화어 표기 | P'yŏngyang Oegugin Hakkyo |
| 위치 | 평양시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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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개교 -
경기고등학교
1899년 고종의 칙명으로 설립된 한국 최초의 관립 중등교육기관인 경기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교명이 변경되었으나 1954년 중·고교 분리 후 현재의 교명을 갖게 되었으며, 1976년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 2010년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되어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여러 분야에 걸쳐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
1900년 개교 -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는 1901년 마포삼열이 평양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장로회 신학교로, 한국인 목회자 양성을 목표로 초기에는 평양연합신학교로 불리며 한국 개신교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로 폐교된 후 해방 이후 여러 신학교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2. 역사
1900년 6월 평양에서 학생 네 명과 루이스 오길비 교사 한 명으로 외국인 학교가 시작되었다. 당시 학교 이름은 영문으로 Pyeng Yang Foreign School이었다. 1914년 학생 기숙사가 세워지고 미국에서 유능한 교사들이 많이 오면서 뉴욕주 교육부의 교육과정을 따르게 되었다. 그 결과 평양외국인 학교 졸업생들은 미국 고등학교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입학할 수 있었고, 점차 명문 학교로 인정받았다. 평양이 동양의 기독교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당시 조선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 있는 선교사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자녀를 이 학교에 진학시켰다.
존 윌슨 박사가 제작한 평양외국인학교 40년사 앨범에 따르면, 40년 동안 이 학교에 등록한 학생은 584명, 졸업생은 188명이었다. 대천덕 신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졸업생 다수는 한국에 남아 이화여전 등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여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1940년 11월, 미국과 전쟁 중이던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학교는 폐교되었다. 평양외국인학교 졸업 후 남장로교 선교사로 일했던 로버트 윌슨의 후손 수십 명이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의 몬트릿 지역에 살고 있어 미국의 소리(VOA Korea) 기자가 방문하여 평양외국인학교를 소개한 바 있다. 몬트릿은 빌리 그레이엄과 루스 그레이엄 부부가 살던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
2.1. 설립 초기 (1900년 ~ 1910년대)
1900년 6월 평양에서 학생 네 명과 루이스 오길비 교사 한 명으로 외국인 학교가 시작되었다. 당시 학교 이름은 영문으로 Pyeng Yang Foreign School이었다. 1914년 학생 기숙사가 세워지고 미국에서 유능한 교사들이 많이 오면서 뉴욕주 교육부의 교육과정을 따르게 되었다. 그 결과 평양외국인 학교 졸업생들은 미국 고등학교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입학할 수 있었고, 점차 명문 학교로 인정받았다.
2.2. 발전과 번영 (1910년대 ~ 1940년)
1910년대에 평양이 동양의 기독교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평양외국인학교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의 선교사 및 외국인 자녀들이 다니는 명문 학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학생 기숙사가 세워지고 미국에서 유능한 교사들이 오면서, 뉴욕주 교육부의 규정을 따라 교육과정을 가르쳤기 때문에 졸업생들은 미국 고등학교로 어려움 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존 윌슨 박사가 제작한 평양외국인학교 40년사 앨범에 따르면, 40년 동안 584명이 등록하고 188명이 졸업했다. 대천덕 신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 등 저명한 인사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졸업생 다수는 한국에 남아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여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2.3. 폐교와 그 이후 (1940년 ~ 현재)
1940년 11월, 미국과 전쟁 중이던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학교는 폐교되었다. 한국 전쟁 중에 학교 건물이 파괴되었고, 그 부지는 현재 러시아 대사관 단지를 짓는 데 사용되었다. 1958년부터 관련된 선교 교직원들은 대전외국인학교에서 그들의 유산을 이어갔다. 1930년대에 빌리 그레이엄의 부인인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가 평양외국인학교에 다녔다. 평양외국인학교 졸업 후 남장로교 선교사로 일했던 로버트 윌슨의 후손 수십 명이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의 몬트릿 지역에 살고 있어 미국의 소리(VOA Korea) 기자가 방문하여 평양외국인학교를 소개한 바 있다. 몬트릿은 빌리 그레이엄과 루스 그레이엄 부부가 살던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