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호 침몰 사고
1. 개요
평해호 침몰 사고는 1949년 10월 5일 추석을 앞두고 인천항에서 강화도 사기리로 향하던 발동기선 평해호가 물치도 인근에서 전복된 사건이다. 정원 50명인 배에 200여 명이 과승하여 발생했으며, 71명이 사망하고 86명이 생존했다. 사고 원인으로는 정원 초과, 승객 혼란, 선장의 음주 등이 지목되었다. 선주와 선장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되어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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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재난 -
맨 협곡 화재 사고
1949년 8월 5일 몬태나 주 맨 협곡에서 발생한 산불 사고인 맨 협곡 화재 사고는 번개로 시작되어 급격히 확산, 열 폭발과 함께 13명의 스모크점퍼의 사망을 초래하며 소방관 훈련 및 안전 절차 개선에 큰 영향을 미쳤고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어졌다. -
대한민국의 해양 사고 -
페스카마 15호 사건
페스카마 15호 사건은 1996년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참치잡이 원양어선 선상 살인 사건으로, 조선족 선원들이 선상 생활의 어려움과 귀국 요구 거절에 불만을 품고 한국인 선원 등을 살해한 후 대한민국으로 인도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당시 열악한 원양어선 선원들의 노동 환경과 외국인 선원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대한민국의 해양 사고 -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서남쪽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여 4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어뢰 공격을 원인으로 발표했으나, 여러 의혹과 논란이 지속되며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 고조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정부 대응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
대한민국의 사건에 관한 -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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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건에 관한 -
김대중 납치 사건
2. 사고 경위
1949년 추석 전날이었던 10월 5일, 2백여 명의 귀향객을 가득 싣고 인천항에서 강화도 사기리로 향하던 개인 소유 발동기선(일명 똑딱선) 평해호가 운항 도중 물치도에서 100m 떨어진 지점에서 전복되었다. 평해호는 17톤급으로 법정 정원이 50명이었으나, 명절을 앞두고 이를 초과한 2백여 명이 승선하였다. 12시 12분에 인천항을 출발한 평해호가 운행 40분 후 작약도 부근에서 전복되어 승객 다수가 바다에 떨어졌고, 이에 놀란 승객들의 혼란으로 다시 뒤집혔다. 뒤따르던 동양기선 소속의 갑제환호가 96명의 승객을 구조하였다. 11월 3일 인천지검에서는 승객 중 생존자가 86명, 사망자는 71명이었다고 발표하였다.
3. 수색 및 사고 처리
인천수산경찰서에서 현장에 출동하였으나, 사고 지점은 조류가 강한 곳이어서 작업이 어려웠다고 보도되었다.
1971년 11월 3일 인천지검에서는 선주와 선장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하였다. 12월 9일 진행된 공판에서 담당 검사는 선주와 선장에 대하여 각각 3년의 금고를 구형하였다. 12월 22일 열린 공판에서 선주와 선장에 각각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금고 2년이 선고되었다.
4. 원인 분석 및 논란
해사국에서는 정원 초과를 원인으로 추측하였다. 인천수상서에서는 정원 초과와 승객의 혼란을 원인으로 추측하였다. 사고 당시 선장은 만취한 상태였다고 보도되었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선장의 무책임한 태도, 경찰관과 헌병의 불찰, 권한 관계의 불명확 등이 지적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