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뢰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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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리드리히 뢰플러는 독일의 세균학자로, 디프테리아균(Corynebacterium diphtheriae) 발견, 구제역 바이러스 발견, 뢰플러 혈청 개발 등 세균학 발전에 기여했다.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훔볼트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하며,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위생학 교수를 거쳐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그의 이름을 딴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와 프리드리히 뢰플러 의학 미생물학 연구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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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뢰플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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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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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852년 6월 24일 |
출생지 |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더 |
사망일 | 1915년 4월 9일 (향년 62세) |
사망지 | 베를린 |
국적 | 독일 |
분야 | 세균학 |
소속 기관 |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프리드리히 레플러 연구소 |
모교 |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
주요 업적 | 디프테리아균 발견 압토바이러스 |
참고 자료 | |
위키공용 | 프리드리히 뢰플러 |
2. 생애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에서 의학을 공부했다.[6] 1874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 군 의관을 거쳐[6] 1879년부터 1884년까지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베를린의 제국 보건소에서 조수로 일했다.[1][6] 1882년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인 오가타 마사요시를 지도했다.[6] 1884년에는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연구소의 직원이 되었고,[2] 1888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University of Greifswald)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다.[6] 1913년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6]
그는 독창적인 염색 방법을 개발하여 세균학에 중요하고 지속적인 공헌을 했다.[2] 초기에 기생충 질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3] 1884년에 에드빈 클렙스와 함께 디프테리아를 일으키는 세균(''Corynebacterium diphtheriae'')을 발견했다. 디프테리아 간균에 대한 그의 설명은 항독소 치료법의 기원이 되었다.[3] 그는 또한 박테리아 검출에 사용되는 응고된 혈청인 뢰플러 혈청을 개발했다. 그 외에도 구제역 바이러스 (피코르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 1887년에는 ''중앙 세균학 및 기생충학 저널''(Centralblatt für Bakteriologie und Parasitenkunde)을 창간했다.[2][4]
그리프스발트 인근의 리엠스 섬에 있는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와 그리프스발트 대학교의 그리프스발트 의과대학에 있는 [http://www2.medizin.uni-greifswald.de/mikrobio/institut/ 프리드리히 뢰플러 의학 미생물학 연구소]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에서 의학을 공부했다.[6] 1874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 군 의관을 거쳐[6] 1879년부터 1884년까지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베를린의 제국 보건소에서 조수로 일했다.[1][6] 1882년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인 오가타 마사요시를 지도했다.[6] 1884년에는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연구소의 직원이 되었고,[2] 1888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University of Greifswald)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다.[6]2. 2. 연구 경력
1874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6] 군 의관을 거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베를린의 제국 보건소에서 조수로 일했다.[1][6] 1882년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인 오가타 마사요시를 지도했다.[6] 1884년에는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연구소의 직원이 되었고, 4년 후에는 그리프스발트 대학교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다.[2][6] 1913년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6]그는 독창적인 염색 방법을 개발하여 세균학에 중요하고 지속적인 공헌을 했다.[2] 초기에 기생충 질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3] 1884년에 에드빈 클렙스와 함께 디프테리아를 일으키는 세균(''Corynebacterium diphtheriae'')을 발견했다. 디프테리아 간균에 대한 그의 설명은 항독소 치료법의 기원이 되었다.[3] 그는 또한 박테리아 검출에 사용되는 응고된 혈청인 뢰플러 혈청을 개발했다. 그 외에도 구제역 바이러스 (피코르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 1887년에는 ''중앙 세균학 및 기생충학 저널''(Centralblatt für Bakteriologie und Parasitenkunde)을 창간했다.[2][4]
그리프스발트 인근의 리엠스 섬에 있는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와 그리프스발트 대학교의 그리프스발트 의과대학에 있는 [http://www2.medizin.uni-greifswald.de/mikrobio/institut/ 프리드리히 뢰플러 의학 미생물학 연구소]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3. 주요 업적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군 의관을 거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국립위생연구소에 근무하며[6], 로베르트 코흐의 조수로 일했다. 1882년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인 오가타 마사요시를 지도했다. 1888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University of Greifswald)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으며, 1913년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884년에 에드빈 클렙스와 함께 디프테리아의 병원균(디프테리아균)을 발견했다. 그 외에도 구제역 바이러스 (피코르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그라이프스발트 근교의 림스 섬에 있는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와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의학부의 프리드리히 뢰플러 의료미생물연구소는 그의 업적을 기려 명명되었다.
3. 1. 디프테리아균 발견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군 의관을 거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국립위생연구소에 근무하며[6], 로베르트 코흐의 조수로 일했다. 1882년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인 오가타 마사요시를 지도했다. 1888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University of Greifswald)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으며, 1913년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1884년에 에드빈 클렙스와 함께 디프테리아의 병원균(디프테리아균)을 발견했다. 그 외에도 구제역 바이러스 (피코르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
3. 2. 구제역 바이러스 발견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훔볼트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군 의관을 거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국립위생연구소에 근무하며[6], 로베르트 코흐의 조수로 일했다. 1888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University of Greifswald)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으며, 1913년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884년에 에드빈 클렙스와 함께 디프테리아의 병원균(디프테리아균)을 발견했다. 그 외에도 구제역 바이러스 (피코르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3. 3. 뢰플러 혈청 개발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군 의관을 거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국립위생연구소에 근무하며[6], 로베르트 코흐의 조수로 일했다. 1882년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인 오가타 마사요시를 지도했다. 1888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University of Greifswald)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으며, 1913년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6]1884년에 에드빈 클렙스와 함께 디프테리아의 병원균(디프테리아균)을 발견했다.[6] 그 외에도 구제역 바이러스 (피코르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그라이프스발트 근교의 림스 섬에 있는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와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의학부의 프리드리히 뢰플러 의료미생물연구소는 그의 업적을 기려 명명되었다.
3. 4. 기타 업적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훔볼트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군 의관을 거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국립위생연구소에 근무하며[6], 로베르트 코흐의 조수로 일했다. 1882년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인 오가타 마사요시를 지도했다. 1888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University of Greifswald)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으며, 1913년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6]1884년에 에드빈 클렙스와 함께 디프테리아의 병원균(디프테리아균)을 발견했다. 그 외에도 구제역 바이러스 (피코르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그라이프스발트 근교의 림스 섬에 있는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와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 의학부의 프리드리히 뢰플러 의료미생물연구소는 그의 업적을 기려 명명되었다.
4. 사후
5. 주요 저서
- 로베르트 코흐와 게오르크 테오도어 아우구스트 가프키: "Ueber die Verwerthbarkeit heißer Wasserdämpfe zu Desinfectionszwecken." (소독 목적을 위한 뜨거운 수증기의 유용성에 관하여). ''Mitteilungen aus dem Kaiserlichen Gesundheitsamte.'' 1, 1881, pp. 322–340.
-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liche Entwicklung der Lehre von den Bakterien.'' (세균 이론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강의) 라이프치히 1887.
- 파울 프로쉬와 함께: ''Summarische Bericht über die Ergebnisse der Untersuchungen der Kommission zur Erforschung der Maul- und Klauenseuche bei dem Institut für Infektionskrankheiten in Berlin.'' (베를린 감염병 연구소의 구제역 연구 위원회 조사 결과에 대한 요약 보고서) In: ''Centralblatt für Bakteriologie und Parasitenkunde.'' 22권, 1897, pp. 257–259 (1부) 및 23권, 1898, pp. 371–391 (2부).
- ''Zur Immunitätsfrage.'' (면역 문제에 관하여) In: ''Mitteilungen aus dem Kaiserlichen Gesundheitsamte.'' 1, 1882, pp. 134–187.
- ''Untersuchungen über die Bedeutung der Mikroorganismen für die Entstehung der Diphtherie beim Menschen, bei der Taube und beim Kalbe.'' (사람, 비둘기 및 송아지의 디프테리아 발생에 대한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 In: ''Mitteilungen aus dem Kaiserlichen Gesundheitsamte.'' 2, 1884, pp. 421–499.
참조
[1]
서적
Asimov's Biographical Encyclopedia of Science and Technology
[2]
간행물
Loeffler, Friedrich
[3]
간행물
Löffler, Friedrich
[4]
서적
Centralblatt für Bakteriologie und Parasitenkunde
https://www.biodiver[...]
Verlag von Gustav Fischer
[5]
간행물
Löffler, Friedrich
[6]
간행물
Loeffler,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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