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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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타나는 쿠샤라의 왕이었으며, 아들 아니타와 함께 중앙 아나톨리아를 정복했다. 아시리아 상인들의 교역 거점이었던 카네슈를 공략하여 왕 와르샤마를 굴복시키고 히타이트 제국 건국의 기반을 다졌다. 피타나와 아니타가 실제로 히타이트인이었는지는 논란이 있으나, 후세 히타이트인들은 이들을 조상으로 여겼고, 피타나는 히타이트 제국의 시조로 여겨진다. 쿠샤라의 위치는 불분명하지만, 하투실리 1세가 시리아에서 하투사로 돌아가는 길에 쿠샤라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아 중앙-남동 아나톨리아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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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피트하나 |
직업 | 쿠사라의 왕 |
자녀 | 아니타 |
부모 | 알려지지 않음 |
개인 정보 | |
이름 (로마자 표기) | Pitḫana |
2. 사적
피타나는 쿠샤라의 왕으로, 아들 아니타와 함께 중앙 아나톨리아 정복에 나섰다. 아시리아 상인들의 중요 교역 거점이었던 카네슈(현재의 귈테페 유적)를 공략하여 그 왕 와르샤마를 굴복시키고, 훗날 히타이트 제국의 기반을 다졌다.[1]
피타나와 아니타가 실제로 히타이트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후세의 히타이트인들은 이 두 사람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피타나는 히타이트 제국의 시조로 여겨진다. 쿠샤라의 위치는 불분명하지만, 훗날의 하투실리 1세가 시리아에서 하투사로 돌아가는 길에 쿠샤라에 들러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아, 중앙-남동 아나톨리아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1. 중앙 아나톨리아 정복
피타나는 쿠샤라의 왕이었다. 그는 아들 아니타와 함께 중앙 아나톨리아 정복에 나섰다.[1] 아시리아 상인들의 중요한 교역 거점이었던 카네슈(현재의 귈테페 유적)를 공략하여 그 왕 와르샤마를 굴복시키고, 훗날 히타이트 제국이 될 국가의 기반을 다졌다.[1]2. 2. 카네슈 공략
아시리아 상인들의 중요 교역 거점이었던 카네슈(현재의 귈테페 유적)를 공략하여 그 왕 와르샤마를 굴복시켰다.3. 히타이트 제국과의 관계
쿠샤라의 왕이었던 피타나는 아들 아니타와 함께 중앙 아나톨리아 정복에 나섰다. 아시리아 상인들의 중요한 교역 거점이었던 카네슈(현재의 귈테페 유적)를 공략하여 그 왕 와르샤마를 굴복시키고, 훗날 히타이트 제국이 될 국가의 기반을 다졌다.[1]
3. 1. 히타이트인의 조상?
피토하나와 아니타가 실제로 히타이트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후세의 히타이트인들은 이 두 사람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겼으며, 그 때문에 피토하나가 히타이트 제국의 시조로 여겨진다.[1] 쿠샤라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훗날의 하투실리 1세가 시리아에서 하투사로 돌아가는 길에 쿠샤라에 들러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아, 그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중앙-남동 아나톨리아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3. 2. 히타이트 제국의 시조
후세의 히타이트인들은 피타나와 아니타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겼으며, 그 때문에 피타나는 히타이트 제국의 시조로 여겨진다.[1]4. 쿠샤라의 위치
쿠샤라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훗날의 하투실리 1세가 시리아에서 하투사로 돌아가는 길에 쿠샤라에 들러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아, 그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중앙-남동 아나톨리아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조
[1]
서적
Indo-European Language and Culture
Blackwell Publishing
[2]
서적
The Ancient Near East, Volume I
https://archive.org/[...]
Routledge
1995
[3]
서적
The Ancient Near East, Volume I
https://archive.org/[...]
Routledge
1995
[4]
간행물
Pithana, an Anatolian ruler in the time of Samsuiluna of Babylon: New data from Tell Rimah (Iraq)
https://www.jstor.or[...]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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