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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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핑거 선착장은 1911년부터 1915년까지 시드니 항만 신탁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20세기 대부분 동안 운영되다가 1970년대 새로운 항구 개발로 사용 빈도가 감소했다. 1987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는 선착장 철거를 결정했으나, 지역 사회의 반발로 무산되어 부티크 호텔로 개조되었다. 울루물루 핑거 부두는 시드니 최초의 어시장 부지에 건설되었으며, 주요 양모 발송 지점 및 군인들의 출항 지점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호텔과 아파트 단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뉴사우스웨일스 주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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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11년부터 1915년까지 시드니 항만 신탁(Sydney Harbour Trust)에 의해 핑거 선착장이 건설되었다.[15] 20세기까지 활발히 운영되던 선착장이었으나, 1970년대 컨테이너와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구가 개발되며 항구의 사용 빈도가 급감하자 1987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NSW Government)는 이 선착장을 이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16]
울루물루 만에 선착장을 대체할 새로운 복합 시설을 건축하기로 승인하고 1991년 1월 발파 작업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환경 보호 단체들의 반대에 막혀 계획이 무산되었다.[17] 울루물루 핑거 부두는 대형 핑거 부두 건설 시대에 등장했다. 이 부두는 시드니 항만 신탁을 위해 시드니 최초의 어시장(1872–1910) 부지에 건설되었으며, 1900년에 항구 전역의 혼란스러운 부두 상태를 정리하고 대대적인 재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1][2] 부두는 1910년에 착공되어 1913년까지 대부분 완공되었다. 신탁의 수석 엔지니어인 헨리 D. 왈시/Henry D. Walsh영어가 이 거대한 해안가 건물을 설계했다.[3]
핑거 부두는 20세기 대부분 동안 운영되는 작업 부두였다. 각 2층짜리 창고는 선박의 정박지와 연결되었으며, 이 정박지는 동쪽에 6번과 7번, 서쪽에 8번과 9번으로 번호가 매겨졌다.[1] 1916년에 부두의 연장 부분이 추가되었다. 도로 건설, 부두 및 말뚝 수리, 창고 건설과 같은 추가 개발이 1920년대 초까지 계속되어 이미 만들어진 패턴을 확장했다. 이후 주요 양모 발송 지점 중 하나가 되었으며, 시드니 유일의 양모 보관소(양모 묶음을 유압 플러그로 압축하는 곳)와 시드니 항구에 들어오는 가장 큰 선박 중 일부의 터미널이 되었다.[1]
1926년에 북쪽 끝 창고는 창고와 목수 작업장으로 건설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부두는 전쟁터로 수송하기 위해 개조된 여객선에 탑승하는 군인들의 출발 지점이었다.[1]
핑거 부두는 20세기 대부분 동안 운영되는 작업 부두였다. 약 70년 동안 주로 양모 수출을 처리했다. 유럽과 미국, 태평양에서 온 해외 선박을 처리했다. 또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군대 배치와 호주에 도착하는 새로운 이민자들의 하선 지점으로도 사용되었다.[1][4] 창고 7번은 1956년에 여객 터미널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변경되었다. 부두의 이 부분은 시드니의 주요 여객 부두 중 하나였으며 호주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 첫 번째 접촉 지점 중 하나였다.[5][1]
1970년대에 도시 주변에 더 큰 부두 시설과 크루즈 라이너 터미널을 갖춘 새로운 컨테이너 항만이 생기면서 부두의 사용량이 감소했다. 1980년대에 부두는 버려지고 비어 있었으며, 1987년에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는 부두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3]
울루물루 만에 부두를 대체할 새로운 마리나와 리조트 단지가 승인되었지만, 1991년 1월에 철거 작업이 시작되자 지역 주민들이 현장 입구를 막았다. 노조는 철거반이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막는 그린 밴을 시행했다.[6]
이러한 강력한 대중의 반발로 인해 기존 부두를 104개의 객실, 로프트 스타일 스위트 및 개인 레지던스를 갖춘 부티크 호텔로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워커 코퍼레이션(Walker Corporation)이 그 개조 작업을 수행했다. 이 호텔에는 인기 있는 워터 바를 포함하여 여러 레스토랑과 바가 있으며, 많은 방문하는 지역 및 국제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다. 이 호텔은 "W 시드니 – 울루물루"로 공식적으로 출시되었으며, W 호텔(W Hotels)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부동산이었다. 스타우드 호텔 앤 리조트(Starwood Hotels and Resorts)에 대한 호텔의 라이선스는 2007년에 만료되었으며 타지 호텔(Taj Hotels)이 관리하는 "블루 호텔"로 브랜드가 변경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호텔 단지는 오볼로 호텔(Ovolo Hotels)에 임대되었다.[7]
아파트의 저명한 거주자로는 배우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 랭 워커(Lang Walker), 미디어 인물 존 로(John Laws)가 있다.[8][9][10]
2. 1. 건설 배경 및 초기 역사 (1910년대~1920년대)
1911년부터 1915년까지 시드니 항만 신탁(Sydney Harbour Trust)에 의해 핑거 선착장이 건설되었다.[15] 1900년에 설립된 시드니 항만 신탁은 시드니 최초의 어시장(1872–1910) 부지에 부두를 건설하였으며, 항구 전역의 혼란스러운 부두 상태를 정리하고 재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1][2] 신탁의 수석 엔지니어인 헨리 D. 왈시(Henry D. Walsh)가 설계를 맡았다.[3]1910년에 착공되어 1913년까지 대부분 완공되었으며, 1916년에는 부두의 연장 부분이 30m 추가되었다.[1] 1920년대 초까지 도로 건설, 부두 및 말뚝 수리, 창고 건설과 같은 추가 개발이 계속되었다.[1] 핑거 부두는 주요 양모 발송 지점 중 하나이자 시드니 항구에 들어오는 가장 큰 선박의 터미널 역할을 했다.[1] 1926년에는 북쪽 끝 창고가 창고와 목수 작업장으로 건설되었다.[1]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군인들의 출발 지점으로 사용되었다.[1]
핑거 부두는 약 70년 동안 주로 양모 수출을 처리하고 유럽, 미국, 태평양에서 온 해외 선박을 처리했다.[1][4] 또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군대 배치와 호주에 도착하는 새로운 이민자들의 하선 지점으로도 사용되었다.[1][4]
1970년대 컨테이너와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구가 개발되며 항구의 사용 빈도가 급감했고, 1987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NSW Government)는 부두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16][3] 1991년 1월 철거 작업이 시작되려 했으나, 지역 주민들과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7][6]
2. 2. 양모 수출 및 군사적 활용 (1920년대~1970년대)
핑거 선착장은 시드니 항만 신탁(Sydney Harbour Trust)에 의해 1911년부터 1915년까지 건설되었다.[15] 1910년에 착공되어 1913년까지 대부분 완공되었으며, 신탁의 수석 엔지니어인 헨리 D. 왈시(Henry D. Walsh)가 설계했다.[3] 1916년에는 부두의 연장 부분이 30m 추가되었다.[1] 1920년대에는 도로 건설, 부두 및 말뚝 수리, 창고 건설과 같은 추가 개발이 계속되었다.[1]핑거 선착장은 20세기 대부분 동안 운영되는 작업 부두였으며, 약 70년 동안 주로 양모 수출을 처리했다. 유럽과 미국, 태평양에서 온 해외 선박을 처리했으며, 시드니 유일의 양모 보관소와 시드니 항구에 들어오는 가장 큰 선박 중 일부의 터미널이 되었다.[1] 1926년에는 북쪽 끝 창고가 창고와 목수 작업장으로 건설되었다.[1]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부두는 전쟁터로 수송하기 위해 개조된 여객선에 탑승하는 군인들의 출발 지점이었다.[1] 1957년에는 제7 부두가 여객 터미널로 전환되었다.[1][5] 부두는 시드니의 주요 여객 부두 중 하나였으며 호주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 첫 번째 접촉 지점 중 하나였다.[5][1]
1970년대 컨테이너와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구가 개발되며 부두의 사용량이 감소했고, 1987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NSW Government)는 부두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16][3]
2. 3. 쇠퇴와 보존 운동 (1970년대~1990년대)
1911년부터 1915년까지 시드니 항만 신탁에 의해 건설된 핑거 선착장은[15] 20세기 동안 활발히 운영되었으나, 1970년대 컨테이너와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구가 개발되면서 사용 빈도가 급감하였다.[16] 1926년에 북쪽 끝 창고는 창고와 목수 작업장으로 건설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부두는 전쟁터로 수송하기 위해 개조된 여객선에 탑승하는 군인들의 출발 지점이었다.[1] 1956년에는 창고 7번이 여객 터미널로 개조되어 시드니의 주요 여객 부두 중 하나이자 호주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 첫 번째 접촉 지점 중 하나가 되었다.[5][1]1987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NSW Government)는 선착장을 철거하기로 결정했으나,[3] 1991년 1월 울루물루 만에 선착장을 대체할 새로운 복합 시설 건축 승인 및 발파 작업이 환경 보호 단체와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7][6] 이들은 철거반이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막는 그린 밴을 시행했다.[6]
이러한 강력한 대중의 반발로 인해 기존 부두는 104개의 객실, 로프트 스타일 스위트 및 개인 레지던스를 갖춘 부티크 호텔로 개조되었다.[7] 워커 코퍼레이션(Walker Corporation)이 개조 작업을 수행했으며, 호텔은 W 호텔(W Hotels)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W 시드니 – 울루물루"로 공식 출범했다.[7] 이후 타지 호텔(Taj Hotels)이 관리하는 "블루 호텔"로 브랜드가 변경되었고, 최근에는 오볼로 호텔(Ovolo Hotels)에 임대되었다.[7] 호텔에는 인기 있는 워터 바를 포함하여 여러 레스토랑과 바가 있으며, 많은 방문하는 지역 및 국제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다. 아파트의 저명한 거주자로는 배우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 랭 워커(Lang Walker), 미디어 인물 존 로(John Laws)가 있다.[8][9][10]
2. 4. 재개발과 현재 (1990년대 이후)
1911년부터 1915년까지 시드니 항만 신탁(Sydney Harbour Trust)에 의해 핑거 선착장이 건설되었다.[15] 20세기까지 활발하게 운영되었으나, 1970년대 컨테이너와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구가 개발되면서 사용 빈도가 급감했고, 1987년 주 정부는 선착장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16]1991년 1월, 울루물루 만에 선착장을 대체할 새로운 복합 시설 건축이 승인되어 발파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환경 보호 단체들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되었다.[17] 이는 대중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기존 부두를 호텔로 개조하는 결정으로 이어졌다.[6][7]
핑거 부두는 시드니 항만 신탁(Sydney Harbour Trust)을 위해 시드니 최초의 어시장(1872–1910) 부지에 건설되었다.[1][2] 1910년에 착공되어 1913년까지 대부분 완공되었으며, 신탁의 수석 엔지니어인 헨리 D. 왈시(Henry D. Walsh)가 설계했다.[3] 1916년에는 30m가량 부두의 연장 부분이 추가되었다.[1] 1920년대 초까지 도로 건설, 부두 및 말뚝 수리, 창고 건설과 같은 추가 개발이 계속되었다.[1] 이후 주요 양모 발송 지점 중 하나이자 시드니 항구에 들어오는 가장 큰 선박들의 터미널이 되었다.[1]
1926년에는 북쪽 끝 창고가 창고와 목수 작업장으로 건설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부두는 전쟁터로 수송하기 위해 개조된 여객선에 탑승하는 군인들의 출발 지점이였다.[1]
핑거 부두는 약 70년 동안 주로 양모 수출을 처리하고 유럽, 미국, 태평양에서 온 해외 선박을 처리했다. 또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군대 배치와 호주에 도착하는 새로운 이민자들의 하선 지점으로도 사용되었다.[1][4] 1956년에 창고 7번이 여객 터미널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시드니의 주요 여객 부두 중 하나이자 호주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 첫 번째 접촉 지점 중 하나였다.[5][1] 1957년에는 제7 부두가 여객 터미널로 전환되었다.[1][12]
1980년대에 부두는 버려지고 비어 있었다.[3] 1993년에는 해안 쪽 끝의 사무실 구역이 현대화되었다.[1][12]
워커 코퍼레이션(Walker Corporation)이 부두 개조 작업을 수행하여 104개의 객실, 로프트 스타일 스위트 및 개인 레지던스를 갖춘 부티크 호텔로 개조했다.[7] 호텔에는 여러 레스토랑과 바가 있으며, 많은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는다. 이 호텔은 "W 시드니 – 울루물루"로 공식 출시되었으며, W 호텔(W Hotels)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부동산이었다.[7] 2007년 타지 호텔(Taj Hotels)이 관리하는 "블루 호텔"로 브랜드가 변경되었고, 최근에는 오볼로 호텔(Ovolo Hotels)에 임대되었다.[7] 아파트의 저명한 거주자로는 배우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부동산 개발업자 랭 워커(Lang Walker), 미디어 인물 존 로(John Laws)가 있다.[8][9][10]
3. 건축적 특징

울루물루 핑거 선착장은 길이 410m, 폭 64m인 테레빈 나무 더미 선착장이다.[11] 선착장의 건물은 중앙 덮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2층 창고[1] 두 채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건물 중간 지점에는 선착장의 양쪽 외부를 연결하는 개방된 횡단면이 교차한다. 선착장 입구의 문, 문기둥, 창 울타리는 19세기 코퍼 선착장 단지의 유일한 잔재일 가능성이 있다. 건물은 두 창고와 도로의 세 개의 평행하고 매우 긴 경사진 평행 박공 지붕과 구조 그리드의 반복적인 선과 충전 패널의 번갈아 나타나는 리듬으로 패턴화된 평평한 벽 표면을 특징으로 한다.[1]
시드니 항은 1.7m에 불과한 작은 조수 간만의 차이와 세계 최고의 경재에 대한 접근성을 활용하여 견고한 목재 더미 구조물과 목재 창고를 건설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목재 더미 부두로 남아 있다고 하며, 시드니에서 목재 더미에 중앙 도로가 있는 유일한 부두이자 시드니에서 건설된 가장 큰 전체 더미 핑거 선착장이다.[1]
선착장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산업 고고학적 유물이 있다. 원래 8개의 전동 베일 엘리베이터와 4개의 전기 리프트가 제공되었다. 오늘날에는 중앙 도로에서 상부 층으로 연결되는 전동 화물 컨베이어의 주에서 유일한 예와 시드니에서 가장 오래된 작동 전기 리프트 중 하나가 있다.[5][1] 북쪽 끝에는 목공 작업장이 있었으며 현재는 주요 선착장 건물과 분리된 콘크리트 및 강철 아파트 건물로 대체되었다. 서쪽에는 선착장 전체를 따라 산책로가 있으며, 해안가에는 마리나, 남쪽 끝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동쪽에는 거주자를 위한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차량 진입로가 있다.
오볼로 호텔(구 ''W'' & "블루" 호텔)은 선착장 건물의 남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파트는 나머지 구조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1998년 12월 4일 기준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다.[1][12] 해당 부두는 호텔 및 주거 시설로의 용도 변경을 위한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다.[1]
3. 1. 산업 고고학적 유물
울루물루 핑거 선착장은 길이 410m, 폭 64m인 테레빈 나무 더미 선착장이다.[11] 선착장의 건물은 중앙 덮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2층 창고[1] 두 채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건물 중간 지점에는 선착장의 양쪽 외부를 연결하는 개방된 횡단면이 교차한다. 선착장 입구의 문, 문기둥, 창 울타리는 19세기 코퍼 선착장 단지의 유일한 잔재일 가능성이 있다.[1]
시드니 항은 1.7m에 불과한 작은 조수 간만의 차이와 세계 최고의 경재에 대한 접근성을 활용하여 견고한 목재 더미 구조물과 목재 창고를 건설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목재 더미 부두로 남아 있다고 하며, 시드니에서 목재 더미에 중앙 도로가 있는 유일한 부두이자 시드니에서 건설된 가장 큰 전체 더미 핑거 선착장이다.[1]
선착장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산업 고고학적 유물이 있다. 중앙 도로에서 상부 층으로 연결되는 전동 화물 컨베이어의 주에서 유일한 예와 시드니에서 가장 오래된 작동 전기 리프트 중 하나가 있다.[5][1] 북쪽 끝에는 목공 작업장이 있었으며 현재는 주요 선착장 건물과 분리된 콘크리트 및 강철 아파트 건물로 대체되었다. 서쪽에는 선착장 전체를 따라 산책로가 있으며, 해안가에는 마리나, 남쪽 끝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동쪽에는 거주자를 위한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차량 진입로가 있다.
1998년 12월 4일 기준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다.[1][12]
4. 문화유산적 가치
울루물루 핑거 선착장은 희소성, 규모, 건설 방식, 산업 고고학 유물, 다양한 사용 및 사건의 역사로 인해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다.[12][1] 19세기와 20세기 초 호주에서 울루물루의 역사와 양모 산업의 주요 역할을 그 형태와 내용에 반영하며, 시드니 항구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목재 부두 건물을 포함한다.[12][1]
이 선착장은 호주에서 유례없고 세계적으로도 예외적인 규모의 목재 공학 구조의 사례로서 중요하다. 호주산 목재를 사용하고, 그 내구성과 기타 특성을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구조는 엔지니어링 및 건설 과정을 보여주며, 남아있는 장비에는 주(State)에서 유일하게 전기로 작동되는 화물 컨베이어와 시드니에서 가장 오래된 전기 리프트 3개가 포함되어 있어 과거의 화물 취급 과정을 보여준다.[5][1]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호주가 참여한 것과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구조물의 규모, 건설 품질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뛰어나며, 선착장 철거 제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이러한 특성에 대한 광범위한 지역 사회의 존경이 있음을 보여준다.[5][1]
울루물루 핑거 선착장은 2000년 4월 18일 뉴사우스웨일스 주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1]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울루물루에 건설되고 재건된 유일한 핑거 선착장으로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며, 군인의 출항 지점이었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산업 발달의 패턴을 보여주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13] 시드니 항만 신탁(1900-1936)이 건설한 가장 큰 선착장이며, 울루물루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구조물 중 하나로, 이 교외의 상업 역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7번 선석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시드니에 건설된 두 번째 여객 부두였다.[1][13]
디자인, 형태 및 규모, 시드니 항구에서 가장 큰 목재 말뚝 부두에서 훌륭한 사례로서 건축학적 중요성을 지닌다. 시드니 항만 신탁의 엔지니어들이 외국 부두 설계를 호주에 혁신적으로 적용하고 화물 처리 과정을 합리화했다.[12][1] 구조물 철거 제안에 대한 광범위한 지역 사회의 반응으로 입증된 사회적 중요성을 지닌다.[1]
원주민 Eora의 영토의 일부로, 이 지역의 이전 원주민 점유를 반영하는 "울루물루"라는 이름에 반영되어 있다. 고고학적 잠재력이 있는 장소를 포함하고 있다. 시드니 항구에 건설된 모든 핑거 선착장 중 가장 크고, 에드워드 시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였다. 또한 20세기 초의 기계 부품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상당한 양의 호주산 경재를 포함하고 있다.[12][1] 국가적 중요성을 지닌다.[1]
5. 현대적 활용
참조
[1]
웹사이트
Woolloomooloo Finger Wharf
2018-10-13
[2]
서적
The Architecture of East Australia
Edition Axel Menges
[3]
웹사이트
The Finger Wharf History
http://www.maju.com.[...]
Maju Sequence
2007-02-11
[4]
뉴스
Wentworth Courier
2014
[5]
문서
RNE 016335
[6]
뉴스
Live and let lie policy for wha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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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01-15
[7]
웹사이트
Ovolo Woolloomooloo
https://ovolohotels.[...]
Ovolo Hotels
[8]
뉴스
Russell Crowe pulls his Finger Wharf apartment off the market, says no to $25m
https://www.domain.c[...]
2017-02-05
[9]
뉴스
On the move with Russell and Danielle
http://www.smh.com.a[...]
2003-06-01
[10]
뉴스
Crowe's new waterfront pad breaks the apartment price record
http://www.smh.com.a[...]
2003-04-10
[11]
문서
Nos. 6, 7 and 8, 9
[12]
문서
CSHI 3041
[13]
문서
Sydney City Council
Sydney City Council
null
[14]
웹사이트
On the move with Russell and Danielle
http://www.smh.com.a[...]
Sydney Morning Herald
[15]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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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hive.org/[...]
Edition Axel Menge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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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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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u Sequence
[17]
서적
Live and let lie policy for wharf
The Sydney Morning Herald
199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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