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니 샌드
1. 개요
하이니 샌드는 미국의 야구 선수로, 1918년부터 1934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유격수로서 세 차례 삼중살에 관여했으며, 삼진을 많이 당했지만 볼넷도 많이 얻어냈다. 1924년에는 지미 오코넬의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으나 연루되지는 않았다. 샌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활약했으며, 1926년에는 99득점으로 내셔널 리그 3위에 올랐다. 은퇴 후 배관 사업에 종사하다 1958년 사망했다.
| 선수명 | 하이니 샌드 |
|---|---|
| 원어명 | Heinie Sand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본명 | John Henry Sand |
|---|---|
| 국적 | 미국 |
| 출생일 | 1897년 7월 3일 |
| 출신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 사망일 | 1958년 11월 3일 |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 신장 | 173 |
| 체중 | 72 |
| 투구 | 우 |
| 타석 | 우 |
| 수비 위치 | 유격수 |
| 첫 출장 | MLB / 1923년 4월 17일에베츠 필드PHP 대 BKN 전 |
| 마지막 경기 | MLB / 1928년 9월 30일에베츠 필드PHP 대 BKN 전 |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23~1928) |
-
1958년 사망 -
찰스 케터링
찰스 케터링은 전기식 계산대, 자동차용 전기 시동 장치, 점화 및 조명 시스템을 개발하여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하고 GM 연구소 부사장을 역임한 미국의 발명가, 엔지니어, 사업가이다. -
1958년 사망 -
최린
최린은 3·1 운동의 주요 기획자였으나, 이후 친일 행보를 보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는 등 극렬한 친일 활동을 펼쳤고, 광복 후 체포되었다가 석방,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북한에서 사망, 남북 모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으며 친일파 명단에 등재된 인물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유격수 -
알렉스 로드리게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유격수 -
호너스 와그너
호너스 와그너는 독일 이민자 출신으로 21시즌 동안 내셔널 리그에서 활약하며 여러 차례 타격왕, 타점왕, 도루왕을 차지했고,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미국의 야구 선수이다. -
캘리포니아주 출신 야구 선수 -
재키 로빈슨
재키 로빈슨은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하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초의 흑인 선수로 데뷔, 뛰어난 야구 실력과 용기로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었으며 은퇴 후에도 인권 운동가와 사업가로 활동하며 사회적 정의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
캘리포니아주 출신 야구 선수 -
지미 윌리엄스
지미 윌리엄스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및 감독으로 활동한 미국인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 보스턴 레드삭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을 역임하며 1995년과 2008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1999년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 선수 경력
샌드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팀을 거쳤으며, 뛰어난 수비와 준수한 타격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위 섹션에서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선수 경력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선수 경력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만 간단하게 언급한다.
샌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뛰면서 삼진을 많이 당했지만, 볼넷도 많이 얻어내는 타자였다. 1926년에는 99득점으로 내셔널 리그(NL) 3위에 올랐고, 매 시즌 120경기 이상 출전하며 400타수 이상을 기록했다.
2.1. 마이너 리그
샌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며, 1918년부터 1922년까지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의 솔트레이크시티 비스에서 뛰었다. 솔트레이크시티 시절 무보살 삼중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1929년 인터내셔널 리그의 로체스터 레드윙스에 영입되었고, 한 시즌 후인 1929년 11월에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팔렸다. 볼티모어에서는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뛰었으며, 1934년 시즌 PCL의 미션 레즈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2. 메이저 리그
샌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뛰면서 여러 기록을 남겼다. 특히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자였는데, 1923년부터 1928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던 모든 시즌에서 삼진 부문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볼넷도 많이 얻어내는 타자였다. 1926년에는 99득점으로 내셔널 리그 3위에 올랐으며, 매 시즌마다 최소 12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400타수 이상을 기록했다.
| 연도 | 기록 | 순위(내셔널 리그) |
|---|---|---|
| 1923년 | 56삼진 | 5위 |
| 1924년 | 57삼진 | 3위 |
| 1925년 | 65삼진 | 2위 |
| 1926년 | 56삼진 | 6위 |
| 1927년 | 59삼진 | 3위 |
| 1928년 | 49삼진 | 9위 |
| 연도 | 기록 | 순위(내셔널 리그) |
|---|---|---|
| 1923년 | 82볼넷 | 2위 |
| 1924년 | 52볼넷 | 10위 |
| 1925년 | 64볼넷 | 6위 |
| 1926년 | 66볼넷 | 2위 |
수비에서도 샌드는 프로 커리어 동안 유격수로 세 차례 삼중살에 관여했다. 1924년 7월에는 하이니 그로의 타구를 삼중살로 만드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2.2.1. 지미 오코넬 승부조작 사건
샌드는 1924년 시즌 말미에 발생했던 도박 승부조작 사건으로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 커미셔너가 두 명의 선수에게 영구 제명 조치를 내린 사건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샌드는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에서 뛸 당시 지미 오코넬과 아는 사이였다. 1924년 9월 23일,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우승 경쟁에서 멀어져 있던 상황에서 뉴욕 자이언츠 소속의 오코넬은 샌드에게 "경기를 봐줄 경우" 500USD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를 알게 된 랜디스 커미셔너는 청문회를 열었다. 오코넬은 뇌물 제안을 했던 사실을 인정했고, 코지 돌란 자이언츠 코치도 이 계획에 연루되어 있음을 밝혔다. 결국 랜디스 커미셔너는 오코넬과 돌란을 영구 제명했다. 이 사건은 당시 스포츠계에 만연했던 승부조작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샌드는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지만 오코넬과의 친분 때문에 언급되었다.
3. 은퇴 이후
야구계에서 은퇴한 뒤 샌드는 배관 사업에 종사했으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가장 오래된 배관 회사 중 한 곳에서 일했다.
1958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4. 플레이 스타일
샌드는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자였다. 1923년 루키 시즌부터 1928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던 모든 시즌에서 삼진 부문 10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볼넷도 많이 얻어내는 타자였다.
1926년에는 99득점으로 내셔널 리그 3위에 올랐으며, 매 시즌마다 최소 12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400타수 이상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프로 커리어 동안 유격수로 세 차례 삼중살에 관여했다. 1924년 7월에는 하이니 그로의 타구를 삼중살로 만드는 데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