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건수
1. 개요
한건수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군 출생으로,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세계일보사 편집국 차장, 비판신문 주필 등을 거쳐, 감찰위원회 정보과장, 조사과장, 홍익대학교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제6, 8, 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당, 민중당, 신민당 등에서 원내 부총무, 위원장, 원내총무 등을 역임했다. 1982년 정계 은퇴 후 실업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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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18년 10월 16일 |
|---|---|
| 사망 | 1993년 8월 22일 (향년 74세) |
| 본관 | 청주(淸州) |
| 호 | 봉암(鳳巖) |
| 배우자 | 김명신 |
| 자녀 | 3남 3녀 |
| 학력 | 보성전문학교 법과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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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경력 | 제4대 국회의원 제5대 국회의원 제6대 국회의원 제7대 국회의원 제8대 국회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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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정당 | 자유당 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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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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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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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사망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1994년 사망 -
정한주
정한주는 대한민국의 교육인이자 노동운동가, 정치인으로, 노동조합 활동과 공공 부문, 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헌신한 인물이다. -
대한민국의 제8대 국회의원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제8대 국회의원 -
김영삼
3. 경력
| 연도 | 직책 |
|---|---|
| 세계일보사 편집국 차장 | |
| 비판신문사 주간 | |
| 1948년 | 감찰위원회 초대 정보 및 조사과장 |
| 1951년 | 정계공론 주필 |
| 1952년 | 홍익대학교 사무처장 |
| 민의원 전문위원 | |
| 삼민회 원내총무 | |
| 민주당 원내부총무 | |
| 민중당 충남 제8지구당 위원장 | |
| 1963년 | 제6대 국회의원(국민의 당, 충남 예산군) |
| 1971년 | 제8대 국회의원(신민당, 충남 예산군) |
| 1973년 | 제9대 국회의원(신민당, 충남 청양군·홍성군·예산군) |
| 1978년 | 제10대 국회의원(신민당, 충남 청양군·홍성군·예산군) |
| APU 제1ㆍ2회 총회 한국대표 | |
| 민중당 의원총회 부총무 | |
| 신민당 원내부총무ㆍ충남도당위원장ㆍ정무위원 및 중앙정치훈련원장 | |
| 신한민주당 정무위원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예산농업학교(현재는 폐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여, 이 선거의 개표 부정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으나, 의 사직으로 인한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어서 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1982년에 정계를 은퇴하고 실업가로 활동했다.
4. 정치 활동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예산농업학교(현재는 폐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세계일보사 편집국 차장, 비판신문 주필 등을 지낸 후, 1948년부터 감찰위원회(2022년 현재 감사원) 정보과장, 조사과장, 1951년부터 정계공론 주필, 1952년부터 홍익대학교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이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국민의 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여, 이 선거의 개표 부정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으나, 박병선의 사직으로 인한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어서 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직으로는 민주당 원내 부총무, 민중당 충남 제8지구당 위원장·의원총회 부총무, 삼민회·민주당·국민의 당·자유민주당 원내총무, 신민당 원내총무·충남도당 위원장·정무위원·중앙정치훈련원장·외무국방위원장, 신한민주당 정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4.1. 제6대 국회의원 선거
한건수는 1963년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1963 후보로 충남 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20,355표(38.02%)를 얻어 1위로 당선되어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4.2. 제7대 국회의원 선거와 부정선거 소송
한건수는 1967년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남 예산군에 출마했으나 27,442표(45.26%)를 얻어 낙선했다. 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여 개표 부정 관련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나, 박병선의 사직으로 인한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라 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4.3. 제8, 9, 10대 국회의원 활동
한건수는 제8대, 제9대, 제1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충남 예산군에서, 제9대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충남 청양군·홍성군·예산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APU 제1, 2회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신민당에서 원내부총무, 충남도당 위원장, 정무위원, 중앙정치훈련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 선거명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8대 | 국회의원 | 충남 예산군 | 신민당 | 29,874표 | 51.67 | 1위 | 당선 | 재선 | |||||||||
| 9대 | 국회의원 | 충남 청양군·홍성군·예산군 | 신민당 | 58,651표 | 40.81 | 2위 | 당선 | 3선 | |||||||||
| 10대 | 국회의원 | 충남 청양군·홍성군·예산군 | 신민당 | 44,663표 | 28.40 | 2위 | 당선 | 4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