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감영
1. 개요
함경감영은 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행정, 군사, 사법을 관할하던 관청이다. 1416년 함흥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영흥으로 이전되었다가 다시 함흥으로 옮겨졌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폐지되어 함흥부로 개편되었고, 이듬해 13도제 시행에 따라 함경남도 관찰사 소재지가 되었다. 함경감영에는 선화당, 징청헌, 내아, 지락정, 문소관, 영리청, 포정문 등의 건물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함경남도 도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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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년 설치 -
삭녕군
삭녕군은 고구려 소읍두현에서 시작하여 조선 시대 경기도에 속했던 군으로, 승녕현 편입, 안협현과의 합병 및 분리 과정을 거쳐 1895년 삭녕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폐지되어 연천군과 철원군에 편입되었고 한국 전쟁 이후 남북 분단으로 그 경계가 변화한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
1416년 설치 -
예천군
예천군은 신라 시대부터 예천으로 불린 경상북도에 위치한 지역으로, 2개의 읍과 10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북도청 신도시 건설과 교통망을 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
조선의 감영 -
경기감영
경기감영은 조선시대 경기도의 행정 중심지로, 경기도 설치와 함께 수원에 처음 설치된 후 광주와 한성부 등으로 이전되었으며, 관찰사의 업무 및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다 감영 제도 폐지 후 철거되었다. -
조선의 감영 -
전라감영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도의 행정 중심지로, 관찰사의 업무 및 생활 공간과 주요 시설로 구성되어 약 500년간 존속했으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일부 소실되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연혁
1416년(태종 16년) 함흥에 감영이 설치되었다. 1470년(성종 원년) 영흥으로 이전하였다가, 1509년(중종 4년) 다시 함흥으로 이전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23부제 시행에 따라 감영이 폐지되고 함흥부(咸興府)로 개편되었다. 1896년(고종 33년) 13도제 시행에 따라 함경남도 관찰사 소재지가 되었다.
2.1. 조선 전기
1416년(태종 16년) 9월, 함흥에 감영이 설치되었다. 1470년(성종 원년) 2월, 감영을 영흥으로 이전하였다. 1509년(중종 4년), 감영을 다시 함흥으로 이전하였다.
2.2. 조선 후기
1895년(고종 32년) 5월, 23부제 시행에 따라 감영이 폐지되고 함흥부(咸興府)로 개편되었다. 1896년(고종 33년) 8월, 13도제 시행에 따라 함경남도 관찰사 소재지가 되었다.
3. 감영 건물
함흥에 있던 함경감영에는 다음과 같은 건물들이 있었다.
| 건물명 | 설명 |
|---|---|
| 선화당(宣化堂) | 종2품 관찰사의 업무 공간이었다. |
| 징청헌(澄淸軒) | 관찰사의 업무 공간이었다. |
| 내아(內衙) | 관찰사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다. |
| 지락정(知樂亭) | 감영 내 정자였다. |
| 문소관(聞韶館) | 종5품 도사의 업무 공간이었다. |
| 영리청(營吏廳) | 감영에서 일하는 아전의 업무 공간이었다. |
| 포정문(布政門) | 감영 정문이었다. |
| 객사(客舍) |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감영을 방문한 관원의 숙박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
| 함흥부(咸興府) | 함흥 지역의 행정, 사법, 치안을 담당하는 종5품 함흥판관(咸興判官)의 관청이었다. |
| 중영(中營) | 감영 소속 군사를 지휘하는 정3품 중군(中軍)의 근무 공간이었다. |
| 창의사(彰義祠) | 임진왜란 때 순절한 윤탁연(尹卓然), 유응수(柳應秀) 등 인물을 모신 사당이었다. |
* 감영 남쪽에 객사(客舍)가 위치했다.
* 감영 서남쪽에 함흥부(咸興府)가 위치했다.
* 감영 남쪽, 객사 북쪽에 중영(中營)이 위치했다.
* 함흥성 남문 밖에 창의사(彰義祠)가 위치했다.
3.1. 주요 건물
* 선화당(宣化堂) : 종2품 관찰사의 업무 공간이었다.
* 징청헌(澄淸軒) : 관찰사의 업무 공간이었다.
* 내아(內衙) : 관찰사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다.
* 지락정(知樂亭) : 감영 내에 있던 정자였다.
* 문소관(聞韶館) : 종5품 도사의 업무 공간이었다.
* 영리청(營吏廳) : 감영에서 일하는 아전의 업무 공간이었다.
* 포정문(布政門) : 감영 정문이었다.
3.2. 감영 인근 시설
함경감영 인근에는 객사, 함흥부, 중영, 창의사 등의 시설이 있었다. 객사는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감영을 방문한 관원의 숙박 용도로 사용되었고, 함흥부는 함흥 지역의 행정, 사법, 치안을 담당했다. 중영은 감영 소속 군사를 지휘하는 중군의 근무 공간이었으며, 창의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윤탁연, 유응수 등을 모신 사당이었다.
3.2.1. 객사
객사는 각종 의례를 행하거나 감영을 방문한 관원의 숙박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감영 남쪽에 위치하였다.
3.2.3. 중영
감영 소속 군사를 지휘하는 정3품 중군(中軍)의 근무 공간으로, 감영 남쪽, 객사 북쪽에 위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