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
1. 개요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은 고려 시대에 제작된 석불좌상으로, 현재 함양중고등학교에 위치해 있다. 4m가 넘는 거대한 크기이며, 얼굴과 오른손, 무릎, 대좌 일부가 손상되었다. 얼굴은 마모되었지만 큼직하고 강건한 인상을 주며,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옷은 우견편단 형식이며, 오른팔은 굵고 우람하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좌는 사각형이며, 연꽃무늬, 안상, 구름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다. 고려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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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의 문화유산 -
함양 상림
함양 상림은 최치원이 함양 태수 시절 홍수 방지를 위해 조성한 숲으로, 과거 대관림이라 불렸으나 홍수 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며 역사적,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함양군의 문화유산 -
함양 남계서원
함양 남계서원은 조선시대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정유재란 때 소실 후 재건되었으며,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하여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정여창을 비롯한 여러 인물을 배향하고 있다. -
석불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김대성이 발원하여 조성된 불상으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옷 주름, 아미타정인 중 상품하생인의 수인, 주형 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명문을 통해 8세기 신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
석불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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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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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그 안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들로, 불상의 조형성과 조각적 완성도가 뛰어나며 조선 후기 복장 의례 연구, 불상 연대 추정, 직물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 상세
2.1. 외형
2.2. 대좌
3. 역사적 배경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석불좌상으로, 현재 함양중고등학교 안에 있다. 불상은 4m가 넘는 거대한 크기이며, 얼굴과 오른손, 무릎 및 대좌 일부가 손상된 상태이다.
얼굴은 많이 닳았고 머리 부분도 파손이 심하지만, 큼직하고 강건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얼굴 형태는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75호)과 유사하며, 밝은 미소를 띤 모습도 비슷하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는 우견편단 형식이며,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몸을 가로지르는 옷주름은 평행을 이루며 다소 형식적으로 처리되었다. 오른팔은 굵고 우람하며, 손끝이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대좌는 사각형으로, 윗부분의 앞뒷면은 깨졌고 양쪽 옆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대좌 중간 부분에는 안상(眼象)이, 아랫부분에는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고려 불상의 힘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3.1. 조성 시기 및 배경
3.2. 역사적 의의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함양중고등학교 안에 있다. 대좌 높이까지 포함하여 4m가 넘는 거대한 조각이나, 불상 뒤의 광배(光背)가 없어지고 불상의 얼굴과 오른손, 무릎 및 대좌(臺座) 일부가 파손된 상태이다.
얼굴은 마모가 심하고 머리 부분도 파손이 심해 세부적인 모습은 알 수 없지만, 큼직하고 강건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얼굴 형태는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75호)과 유사하며, 밝은 미소까지 닮았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는 우견편단 형식이며,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몸을 가로지르는 옷주름은 평행을 이루지만 다소 형식적으로 처리되었다. 오른팔은 굵고 우람하며, 손은 깨졌지만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대좌는 사각형인데 윗부분의 앞뒷면은 깨졌고, 양쪽 옆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대좌 중간 부분에는 안상(眼象)이, 아랫부분에는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고려 불상의 힘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4. 보존 및 관리
4.1. 현지 안내문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은 고려 시대 석불 좌상으로, 원래 청룡사터 또는 용산사터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시대 석조 불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불상은 대좌까지 포함하면 높이가 4m가 넘을 만큼 거대하며, 불상 뒤 광배, 얼굴 일부와 오른손, 무릎과 대좌 일부는 없어졌다.
얼굴은 몹시 닳았고 머리 부분도 심하게 파손되었지만 큼직하고 강건해 보인다. 이러한 얼굴은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과 비슷하며, 밝은 미소도 비슷하다. 목에는 세 줄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옷은 왼쪽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신체도 건장하고 당당한 편이다. 오른팔이 굵고 우람하며, 오른손은 깨져 없어졌지만 손끝이 땅을 가리키는 모양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대좌는 사각형이며 상대, 중대, 하대의 3부분으로 되어 있다. 상대(上臺)는 앞뒷면이 깨져 있지만 양쪽 옆면에는 연꽃무늬를, 중대(中臺)에는 눈 모양의 안상(眼象)을, 하대(下臺)에는 겹연꽃무늬를 새겼다.
영문 안내문에는 석불이 고려 시대의 조각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설명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