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케겔
1. 개요
헤르베르트 케겔은 독일의 지휘자이다.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성 십자가 합창단에서 활동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부상으로 지휘자로 전향했다.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의 지휘자를 역임했으며, 이후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지냈다. 동독 시대에 다양한 음악 녹음을 남겼으며, 현대 음악 보급에 힘썼다. 1990년 독일 재통일 직후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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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자살 -
델 섀넌
델 섀넌은 찰스 위던 웨스토버라는 본명으로 활동한 미국의 로큰롤, 컨트리 음악가로, 1961년 〈Runaway〉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
1990년 자살 -
질 베넷 (영국 배우)
영국의 배우 질 베넷은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여러 상을 받았으나, 존 오스본과의 결혼 생활 후 우울증을 겪다 19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독일의 자살한 사람 -
콘라트 슈만
콘라트 슈만은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 중 서베를린으로 탈출한 동독 군인으로, 냉전 시대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후 우울증을 겪다 1998년 자살했고, 그의 탈출 사진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독일의 자살한 사람 -
헤르만 에밀 피셔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에밀 피셔는 유기화학, 특히 퓨린, 당, 단백질 연구에 크게 기여하여 19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페닐히드라진 발견, 퓨린 유도체 합성, 당류의 입체 구조 규명, 아미노산 분리 및 펩타이드 결합 확립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
1990년 사망 -
조영래
조영래는 한국의 인권변호사이자 민주화운동가, 문필가로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변호사 활동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으며, 글쓰기를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등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90년 사망 -
윤보선
윤보선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국민주당 창당, 서울특별시장 및 상공부 장관 역임, 제2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리고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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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케겔은 드레스덴 출신으로, 어린 시절 성 십자가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본래 피아니스트를 지망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입은 부상으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휘는 Alfred Stier독일어, 카를 뵘, 쿠르트 슈트리그러 등에게, 작곡은 보리스 블라허, 파울 데사우에게 배웠다.
드레스덴 교외 Pirna독일어에서 지휘 활동을 시작하여 로스토크를 거쳐 1949년 라이프치히로 옮겼다. 이곳에서 헤르만 아벤트로트의 보조 지휘자로 활동하며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과 MDR-Rundfunkchor독일어을 지휘했다. 특히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956년 아벤트로트가 사망한 후부터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이후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했다.
1979년부터는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NHK 교향악단, 도쿄도 교향악단 등을 지휘했으며, 일부 연주는 CD로 발매되었다. 1990년 10월 독일 재통일 직후인 11월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케겔은 동독 시절의 방송 녹음을 포함하여 고전 음악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녹음으로 남겼다. 특히 현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 동구권에서 현대 음악 보급에 힘쓴 점은 주목할 만하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성 십자가 합창단의 단원이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를 지망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수류탄 파편에 맞아 부상당하면서 지휘로 전향했다. 지휘는 Alfred Stier독일어, 카를 뵘, 쿠르트 슈트리그러에게, 작곡은 보리스 블라허, 파울 데사우에게 사사했다.
2.2. 초기 경력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성 십자가 합창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수류탄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은 것을 계기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휘는 Alfred Stier독일어, 카를 뵘, Kurt Striegler독일어에게 배웠고, 작곡은 보리스 블라허와 파울 데사우에게 사사했다.
지휘자로서의 첫 활동은 드레스덴 교외의 Pirna독일어에서 시작했으며, 이후 로스토크로 활동지를 옮겼다. 1949년에는 헤르만 아벤트로트의 보조 지휘자로 라이프치히에 초청되어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과 MDR-Rundfunkchor독일어의 지휘를 맡았다. 특히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은 오늘날에도 뛰어난 합창단으로 평가받는데, 케겔은 이 합창단의 기틀을 마련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3.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 시절
1949년 헤르만 아벤트로트의 어시스턴트로 라이프치히로 초청되어,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과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은 오늘날에도 우수한 합창단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케겔은 그 초석을 다진 인물 중 한 명이다. 1956년 아벤트로트가 사망한 후,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했다.
2.4.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 시절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지낸 후,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기인 1979년 일본을 처음 방문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방문하여 NHK 교향악단과 도쿄도 교향악단 등을 지휘했다. 이때의 연주 일부는 CD로 발매되기도 했다.
2.6.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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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독일 재통일 직후인 11월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3. 음악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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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어릴 적 성 십자가 합창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수류탄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은 후 지휘자의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지휘는 알프레트 슈티어, 카를 뵘, 쿠르트 슈트리그러에게 배웠고, 작곡은 보리스 블라허, 파울 데사우에게 지도를 받았다.
지휘자로서의 경력은 드레스덴 교외의 피르나에서 시작했으나, 곧 로스토크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1949년에는 헤르만 아벤트로트의 보조 지휘자로 라이프치히에 초청되어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과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은 오늘날에도 뛰어난 합창단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케겔은 이 합창단의 기틀을 마련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1956년 아벤트로트가 세상을 떠난 후, 케겔은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드레스덴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자리를 옮겼다.
일본에는 1979년에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연주 활동을 펼쳤다. NHK 교향악단과 도쿄도 교향악단을 지휘한 연주 중 일부는 CD로 발매되기도 했다.
고전파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의 작품을 녹음으로 남겼으며, 특히 동독 시절의 방송 녹음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는 현대 음악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동유럽 소련형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현대 음악을 알리고 보급하는 데 힘썼다.
1990년 10월 독일 재통일이 이루어진 직후인 그해 11월,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4. 평가 및 유산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은 오늘날에도 우수한 합창단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케겔은 그 초석을 다진 인물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동독 시절의 방송용 녹음을 포함하여 고전파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녹음을 남겼다. 특히 현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동유럽 소련형 사회주의권에서 현대 음악의 보급에 힘쓴 점이 높이 평가받는다.
5. 참고 문헌
* Helga Kuschmitz, 헤르베르트 케겔 - 금기를 넘어선 전설. 20세기의 지휘자의 삶, Verlag Klaus-Jürgen Kamprad독일어, 2003. ISBN 3-930550-27-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