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왕
1. 개요
효성왕은 신라의 제34대 왕으로, 737년부터 742년까지 재위했다. 당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도덕경을 하사받는 등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후궁과 왕비 족당 간의 갈등으로 파진찬 영종의 반란이 일어나는 등 왕실 내 혼란을 겪었다. 6년의 재위 기간 중 742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효성왕으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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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년 사망 -
이헌 (당)
이헌은 당 예종의 아들이자 당 현종의 형으로, 본래 이성기였으나 황태자 자리를 양보하고 현종의 신임을 받아 사후 양황제로 추존된 당나라 황족이다. -
8세기 한국의 군주 -
성덕왕
신문왕의 아들인 성덕왕은 36년간 신라를 다스리며 당과의 외교, 구휼 사업, 관료 기구 정비, 국방 강화 등 국내외 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
8세기 한국의 군주 -
효소왕
효소왕은 신라의 제30대 왕으로, 신문왕의 아들이자 신목왕후의 아들이며, 당나라로부터 신라왕으로 책봉받고 국내 통치를 시작하여 서시전과 남시전을 설치하고 일본 사신을 접견했으며 이찬 경영의 모반을 진압하다가 1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세기 출생 -
사조의
사조의는 안사의 난 시기 사사명의 아들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대연 황제에 올랐으나 당나라군의 반격과 부하들의 배신으로 몰락하여 자살하며 안사의 난 종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
8세기 출생 -
카롤루스 대제
카롤루스 대제는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 프랑크 왕국을 통치하며 서유럽 대부분을 통합하고 영토를 확장하여 800년에 서로마 황제로 대관된 인물이다.
2. 생애
739년 정월, 이찬 의충(義忠)이 사망하자 이찬 신충(信忠)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같은 해 2월에는 동모제(同母弟) 헌영(훗날 경덕왕)을 파진찬으로 삼고, 3월에는 김순원의 딸 혜명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5월에는 헌영을 태자로 책봉하였다.
2.1. 즉위와 당과의 관계
738년 2월, 선대 성덕왕을 조문하는 당나라 사신을 맞이하여 당나라로부터 <<개부의동삼사 신라왕>>으로 책봉되었다. 당나라와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여, 738년 4월에는 도덕경을 하사받았다.
2.2. 왕실 내 갈등과 정치적 혼란
740년 8월, 후궁의 아버지인 파진찬 영종(永宗)이 반란을 일으켰다. 효성왕이 후궁을 총애하자, 왕비 족당이 이를 시기하여 후궁을 모살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영종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왕비의 자리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은 외척 세력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왕권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2.3. 죽음
742년 5월 효성왕은 재위 6년 만에 사망하였으며, 효성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유언에 따라 법류사(미상) 남쪽에서 화장되었고, 동해에 산골되었다. 이는 문무왕과 같은 대우였으나, 문무왕과 달리 효성왕의 왕릉으로 비정되는 고분은 없다.
3.2. 부인 및 후손
| 구분 | 이름 | 비고 |
|---|---|---|
| 부인 | 왕후 박씨(王后 朴氏) | 739년 출궁 |
| 부인 | 혜명왕후 김씨(惠明夫人 金氏) | 이찬(伊飡) 김순원의 딸 |
| 후궁 | 박씨(朴氏) | 파진찬 영종의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