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 (동프랑크 왕자)
1. 개요
후고는 동프랑크 왕국의 왕족으로, 작센의 백작이었다. 독일인 루트비히의 손자이자 루트비히 3세 청년의 서자였으며, 870년대 이후 마자르족, 노르만족과의 전투에 참여하여 동프랑크 왕국을 수비했다. 876년부터는 작센을 통치하는 아버지 루트비히 3세를 대신하여 작센 지역을 통치했다. 880년 2월 바이킹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로쉬 수도원에 안치되었으나 19세기에 석관이 실종되었다.
| 이름 | 휴 |
|---|---|
| 작위 | 작센 공작 |
| 사망 | 880년 2월 |
| 아버지 | 루트비히 3세 |
| 가문 | 카롤링거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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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프랑크 왕국 -
독일 왕국
독일 왕국은 동프랑크 왕국에서 시작되어 프랑크족 외 여러 부족의 정착지를 포함하며 발전, 9세기부터 10세기 작센 왕조 시대에 이르러 동프랑크 왕국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이며 독일 왕국으로 이행했다는 견해가 있다. -
동프랑크 왕국 -
메르센 조약
메르센 조약은 870년에 체결되어 카롤링거 제국을 분할하고 로타링기아 영토를 분할했으며, 동프랑크와 서프랑크로 프랑크 왕국을 재편하고 이탈리아 왕국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 -
880년 사망 -
카를로마누스 바바리아이
카를로마누스 바바리아이는 동프랑크 왕국의 왕 루트비히 2세의 아들로 바이에른을 상속받고 이탈리아 왕이 되었으나, 반란, 왕위 획득 실패, 건강 악화 등으로 복잡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다 사망했다. -
880년 사망 -
장직방
장직방은 당나라 시대 인물로, 노룡군 절도사를 거쳐 금군 대장이 되었으나 황소의 난 당시 황소에게 투항했다가 배신하려다 처형되었다. -
카롤루스 대제 -
루도비쿠스 2세 게르마니쿠스
루도비쿠스 2세 게르마니쿠스는 카롤링거 왕조 출신으로 동프랑크 왕국을 건설하고 바이에른을 통치했으며, 형제들과의 분쟁과 서프랑크 왕국과의 갈등 속에서 동프랑크 왕국의 기반을 다졌다. -
카롤루스 대제 -
카를로마누스 1세
카를로마누스 1세는 768년 프랑크 왕국 분할로 부르군디와 남 아우스트라시아를 상속받았으나, 형 카를과의 갈등 속에 771년 사망하고 그의 영토는 샤를마뉴에게 상속되었다.
2. 생애
후고는 동프랑크 왕국의 왕족으로, 루트비히 3세 청년의 서자이자 독일인 루트비히의 손자였다. 그는 작센의 백작으로 임명되어 왕국의 동쪽 국경 지역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870년대 이후에는 마자르 족과 노르만 족의 침입에 맞서 싸웠으며, 아버지 루트비히 3세 청년을 대신해 작센 지역 통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880년 2월, 바이킹 족과의 전투 중 작센 공작 브루노 등 여러 귀족과 함께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묻힌 로쉬 수도원Kloster Lorsch독일어에 안치되었으나, 훗날 석관은 실종되었다.
2.1. 초기 생애
동프랑크의 왕족으로, 아버지는 작센의 군주 루트비히 3세 청년이었으나 그의 서자였다. 할아버지는 독일인 루트비히이다. 그는 할아버지인 독일인 루트비히의 치세 기간 무렵에 태어났다.
작센의 백작에 임명되어 동프랑크 왕국 작센의 변방 지역에 파견되었다. 870년대 이후 변방을 수비하며 동프랑크 왕국을 침략한 마자르 족, 노르만 족과의 전투에 여러 번 참가하였다. 876년부터는 자신의 영지인 작센을 자주 찾지 않는 아버지 루트비히 3세 청년을 대신하여 작센 지역의 통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880년 2월 바이킹의 침략 때 작센 공작 브루노를 비롯한 작센의 귀족들과 함께 바이킹과 교전하던 중 전사했다. 위그의 시신은 할아버지 독일인 루트비히가 안치되고, 2년 뒤 아버지 루트비히 3세 청년이 안치될 로쉬 수도원Kloster Lorsch독일어에 함께 안치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무렵 위그와 루트비히 3세 청년이 안치된 석관은 실종되었다.
2.2. 동프랑크 왕국 수호
작센의 백작으로 임명되어 동프랑크 왕국 작센의 동쪽 국경 지역 방어 임무를 맡았다. 870년대 이후 동프랑크 왕국을 침략해오는 마자르 족, 노르만 족과의 전투에 여러 번 참여하며 변방을 수비했다. 876년부터는 아버지 루트비히 3세 청년이 자신의 영지인 작센을 자주 방문하지 않자, 그를 대신하여 작센 지역의 통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880년 2월, 바이킹 족이 침략했을 때 작센 공작 브루노를 비롯한 작센의 여러 귀족들과 함께 이들과 교전하던 중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할아버지 독일인 루트비히와 2년 뒤 아버지 루트비히 3세 청년이 함께 묻히게 될 로쉬 수도원Kloster Lorsch독일어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무렵 후고와 아버지 루트비히 3세의 석관은 실종되었다.
2.3. 최후
880년 2월 바이킹 족의 침략 때 작센 공작 브루노를 비롯한 작센의 귀족들과 함께 바이킹 족과 교전하던 중 전사했다. 위그의 시신은 할아버지 독일인 루트비히와 아버지 소 루트비히가 안치된 로쉬 수도원(abbey of Lorsch)에 함께 안치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무렵 위그와 소 루트비히가 안치된 석관은 실종되었다.
3. 가족 관계
* 할아버지: 루트비히 2세 독일인 (Ludwig II the German, 802년? – 876년)
* 할머니: 엠므 (Emme, 803년 – 876년)
* 아버지: 루트비히 3세 청년 (Ludwig III the Younger, 830년 – 882년)
* 적모: 리우트가르트 (Liutgard von Saxony, 845년 – 885년)
이복 동생: 루트비히 (Ludwig, 876년/877년 – 879년)
이복 동생: 베른하르트 (Bernhard, 880년 이전 사망)
이복 여동생: 힐데가르트 (Hildegard, 875년 – 900년 이후)
이복 여동생: 기셀라 (Gisela)
이복 여동생: 리우트가르트 (Liutgard)
* 어머니: 이름 미상
동생: 아달하르트 (Adalhard)
* 부인: 이름 미상
4. 기타
그의 아버지 루트비히 3세 청년은 작센족의 부족공작 리우돌프의 딸 리우트가르트와 결혼하여 루트비히, 베른하르트 등의 아들과 힐데가르트, 아델라이드 등의 딸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모두 일찍 사망했다. 루트비히 3세가 기대를 걸었던 서자 후고마저 사망하자, 결국 루트비히 3세의 영지는 그의 동생이자 후고의 삼촌인 뚱보왕 카를 3세에게 넘어갔다.
중프랑크 왕국의 로타르 2세에게도 이름이 같은 서자 후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