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사인 1세
1. 개요
후사인 1세는 1374년 형 하산이 살해된 후 타브리즈에서 자라이르 왕조의 술탄이 되었다. 즉위 후 무자파르 왕조의 침입과 흑양조와의 전쟁 등 대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으며, 내부적으로는 형제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382년 동생 아흐마드에게 처형당하고 왕위를 빼앗겼다.
후사인 1세
기본 정보
| 군주호 | 자라이르 왕조 제3대 군주 |
|---|---|
| 이름 | 후사인 1세 |
| 다른 이름 | 술탄 후사인 잘라이르 |
재위 기간
| 즉위 년도 | 1374년 |
|---|---|
| 퇴위 년도 | 1382년 |
출생과 사망
| 사망 년도 | 1382년 |
|---|
가문
| 왕조 | 자라이르 왕조 |
|---|---|
| 아버지 | 샤이프 우와이스 1세 |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자라이르 왕조 -
잘라이르 술탄국
잘라이르 술탄국은 1335년 일 칸국 분열 이후 잘라이르 부족이 아제르바이잔과 타브리즈 지역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이며, 셰이크 우와이스 1세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티무르의 침입과 흑양 왕조와의 전쟁으로 멸망했다. -
자라이르 왕조 -
우웨이스 1세
우웨이스 1세는 14세기 중반 자라이르 왕조를 통치하며 정복 활동과 페르시아 문화 융성을 통해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이다. -
1382년 사망 -
염제신
염제신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원나라 관료 생활 후 고려로 돌아와 기철 일파 숙청과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워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공민왕의 후궁 신비 염씨의 아버지로서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
1382년 사망 -
효자고황후 (명나라)
효자고황후는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의 황후로서, 홍건적의 난에서 주원장과 혼인하여 명나라 건국에 기여했으며, 검소하고 현명하게 내조하며 정치에도 관여하다 1382년에 사망한 후 효자황후로 추존되었다. -
사형된 사람 -
전봉준
전봉준은 조선 말기 동학 농민 혁명의 지도자로, 부패한 관리 처벌과 일본 세력 축출 등을 주장하며 농민 운동을 이끌었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 후 처형되었고, 그의 혁명 정신은 민주주의 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
사형된 사람 -
임꺽정
임꺽정은 조선 명종 시기에 양주와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며 관아를 습격하고 빈민을 구제한 의적으로, 관군에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 3대 도적으로 꼽힌다.
2. 생애
후사인 1세는 자라이르 왕조의 제2대 군주 셰흐 오웨이스 1세의 장남으로, 1374년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뒤를 이었다. 그러나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아버지와는 달리 나약하여 친족 간 권력 투쟁이 일어났고, 이를 억누를 힘이 없었다.
2.1. 즉위 과정
حسین بن اویس아랍어는 1374년, 형인 하산이 살해당한 후 타브리즈에서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 직후, 우웨이스 1세의 사위인 무자파르 왕조의 샤 마흐무트가 쳐들어와 타브리즈를 점령했지만, 질병 때문에 그곳을 포기했다. 샤 마흐무트가 떠나자 무자파르 왕조의 왕인 샤 슈자가 침입하여 타브리즈를 점령했으나, 본국의 반란 때문에 회군하였다. 무자파르 왕조의 군대가 떠난 후, 후사인 1세는 서쪽 변경을 괴롭히던 흑양조의 군대와 맞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