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아쿠냐
1. 개요
후안 아쿠냐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아 코루냐에서 태어나 스포르팅 코루녜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38년부터 1955년까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뛰었다. 그는 4차례 라리가 최우수 골키퍼인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하며, 안토니 라마예츠, 빅토르 발데스와 함께 이 상을 가장 많이 받은 선수 중 한 명이다. 1950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주전 골키퍼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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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후안 아쿠냐 나야 |
|---|---|
| 로마자 표기 | Juan Acuña Naya |
| 애칭 | Xanetas |
| 출생일 | 1923년 2월 14일 |
| 출생지 | 아코루냐 |
| 사망일 | 2001년 8월 30일 |
| 사망지 | 아코루냐 |
| 키 | 179cm |
| 몸무게 | 88kg |
| 포지션 | GK |
| 주발 | 미상 |
| 연도 | 미상 |
|---|---|
| 클럽 | 스포르팅 코루녜스 |
| 출전 | 미상 |
| 득점 | 미상 |
| 연도 | 미상 |
| 클럽 | 에우레카 |
| 출전 | 미상 |
| 득점 | 미상 |
| 연도 | 1938-1955 |
| 클럽 | 데포르티보 |
| 출전 | 278 |
| 득점 | 0 |
| 연도 | 1941 |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
| 출전 | 1 |
| 득점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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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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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2001년 사망 -
달릴라 (무용가)
달릴라는 스페인 출신의 무용가로 발레, 플라멩코, 벨리댄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으며, 1950년대 이집트에서 벨리댄서로 공연하고 멕시코와 미국에서 댄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2001년에 사망했다. -
2001년 사망 -
박윤종
박윤종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승주군수, 나주군수, 광주광역시장을 역임했으며, 전라남도 기획관리실장, 교육위원, 도정 자문위원장, 대한체육회 상임부회장 등을 지냈고, 제11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
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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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그는 선수 경력 대부분을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에서 보냈다. 1938년 페롤과의 경기에 처음 출전했고, 이듬해 데포르티보와 계약하여 월 300 ESP를 받았다.
잦은 부상과 과체중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사모라 트로피를 4회 수상하여 안토니 라마예츠, 빅토르 발데스에 이어 역대 최다 수상 2위를 기록했다.
1961년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와 오우렌세 간의 헌정 경기가 열렸고, 1990년 데포르티보는 그의 이름을 딴 트로피를 제정했다.
2.1. 클럽 경력
아 코루냐에서 태어난 그는 스포르팅 코루녜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유레카를 거쳐 1938년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에 입단하여 1955년까지 활약했다.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첫 경기를 치른 것은 1938년 페롤과의 경기였다. 이듬해 그는 데포르티보와 월 300ESP의 급여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역 시절, 그는 과체중으로 인한 잦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안토니 라마예츠와 빅토르 발데스를 제외하고 최우수 골키퍼로 최다 선정된 골키퍼로, 1941-42 시즌, 1942-43 시즌, 1949-50 시즌, 1950-51 시즌에 4차례 선정되었다.
1961년, 그는 데포르티보와 오우렌세 간의 헌정 경기를 치렀다. 1990년, 데포르티보는 그의 이름을 딴 트로피를 제작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50 FIFA 월드컵에도 참가했지만, 주전 골키퍼 자리는 안토니 라마예츠에게 밀려 출전 기회는 없었다.
3. 수상 내역
* 사모라 트로피 4회 수상 (1941–42, 1942–43, 1949–50, 1950–51)
3.1. 개인
그는 잦은 부상과 과체중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안토니 라마예츠와 빅토르 발데스를 제외하고 최우수 골키퍼로 가장 많이 선정된 선수이며, 1941-42 시즌, 1942-43 시즌, 1949-50 시즌, 1950-51 시즌에 4차례 선정되었다.
1961년, 데포르티보와 오우렌세 간의 헌정 경기가 열렸다. 1990년, 데포르티보는 그의 이름을 딴 트로피를 제작했다.
4. 기타
그는 잦은 부상과 과체중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안토니 라마예츠와 빅토르 발데스를 제외하고 최우수 골키퍼로 가장 많이 선정된 골키퍼로, 1941-42 시즌, 1942-43 시즌, 1949-50 시즌, 1950-51 시즌에 4차례 선정되었다.
1961년, 데포르티보와 오우렌세 간의 헌정 경기가 열렸다. 1990년, 데포르티보는 그의 이름을 딴 트로피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