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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노 노리미츠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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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와라노 노리미츠의 딸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인물로, 두 명의 딸이 각각 준토쿠 천황의 텐지였다. 코우노스케는 우에몬노카미노츠보네로도 불렸으며, 사도로 유배된 준토쿠 천황을 따라갔다고 전해진다. 아제치노스케는 슈메이몬인을 모셨으며,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의 『메이게츠키』에 기록되어 있다. 후지와라노 노리미츠 가문은 황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조큐의 난 이후 황실 영지 상속 문제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슈메이몬인 사후 영지가 노리미츠의 딸이 낳은 요시무네 친왕에게 상속되면서, 다른 준토쿠 천황의 자녀들과의 갈등이 발생하여 정치적 문제로까지 번졌다.

2. 코우노스케 (督典侍)

'''코우노스케'''(督典侍) 또는 '''히가시노온카타'''(東御方)로 불린 후지와라노 노리미츠의 딸은 준토쿠 천황의 텐지(典侍)였다.[2] 아버지 노리미츠가 우에몬노카미(右衛門督) 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우에몬노카미노츠보네'''(右衛門督局)라고도 불렸다.[2] 준토쿠 천황이 사도가시마로 유배될 때 동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후 코가 미츠히로의 아내가 되었다고 『존비분맥』(尊卑分脈)에 기록되어 있다.[3]

3. 아제치노스케 (按察典侍)

'''아제치노스케 (按察典侍)''' 또는 '''보몬노츠보네 (坊門局)'''라고 불린 후지와라노 노리미츠의 딸도 준토쿠 천황의 텐지였다.[3] 『존비분맥』에 따르면 이름은 미츠코(光子)이다.[3] 준토쿠 천황의 어머니인 슈메이몬인을 모셨으며,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의 『메이게츠키』 간기 2년 9월 19일 조에는 "슈메이몬인 보몬노츠보네 노리미츠의 딸 아제치노스케"라고 기록되어 있다.[3]

4. 후지와라노 노리미츠 가문과 황실의 관계

노리미츠 가문은 황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노리미츠의 아버지인 노리카네는 동생 노리스에를 양자로 삼아 길렀다. 노리카네가 사망한 후, 노리스에는 형의 남겨진 자녀들인 한시, 켄시, 그리고 노리미츠를 양육했다. 노리미츠는 노리스에의 친딸 스에코와 혼인했다.

노리미츠의 누이 한시켄시고토바 천황의 유모가 되었다. 이후 한시는 츠치미카도 천황의 외할머니가 되었으며, 켄시는 종2위의 품계를 받고 '쿄노츠보네(京の局)'로 불렸다. 또한 노리스에의 친딸이자 켄시의 양녀[4]인 쥬시(슈메이몬인)는 고토바 천황의 비(妃)가 되어 준토쿠 천황을 낳았다. 노리미츠의 딸 중 한 명인 노리코(範子) 역시 준토쿠 천황의 유모를 맡았다.[3]

이러한 황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배경으로 노리미츠의 다른 두 딸인 코우노스케(督典侍)와 아제치노스케(按察典侍)가 숙모뻘인 슈메이몬인과 그녀의 아들 준토쿠 천황을 모시는 텐지(典侍)가 된 것으로 보인다.


  • '''코우노스케'''(督典侍): '히가시노온카타(東御方)'라고도 불렸다. 아버지 노리미츠가 우에몬노카미(右衛門督)였기에 '우에몬노카미노츠보네(右衛門督局)'라고도 불렸다.[2] 준토쿠 천황이 사도로 유배될 때 동행했다고 전해지나, 후에 코가 미치미츠의 아내가 되었다고 『존비분맥』은 기록하고 있다.[3]
  • '''아제치노스케'''(按察典侍): '보몬노츠보네(坊門局)'라고도 불렸다. 『존비분맥』에 따르면 이름은 미츠코(光子)이다.[3] 준토쿠 천황의 어머니인 슈메이몬인을 모셨으며,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의 일기 『메이게츠키(明月記)』 간키(寛喜) 2년(1230년) 9월 19일 조(條)에는 "슈메이몬인노 보몬노츠보네 노리미츠경의 딸 아제치노스케(修明門院坊門局 範光卿女按察典侍)"라고 명확히 언급되어 있다.[3]

5. 조큐의 난 이후의 황실 영지 상속 분쟁

슈메이몬인(시게코)은 고토바 천황의 생모인 시치죠인과 후견인이었던 사촌 켄시(쿄노쓰보네)로부터 소령과 장원을 물려받았다. 조큐의 난 이후 사도에 유배된 준토쿠 천황을 대신하여 그의 자녀들을 양육했다.

그러나 슈메이몬인 사후, 그녀가 물려받은 소령은 후지와라노 노리미츠의 딸이 낳은 요시무네 친왕(젠토 친왕)에게만 상속되었다. 이는 요시무네 친왕의 어머니인 노리미츠의 딸이, 슈메이몬인에게 소령을 물려준 켄시의 조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결정은 다른 준토쿠 천황 자녀들의 반발을 산 것으로 보이며, 슈메이몬인 사후 요시무네 친왕의 이복형인 타다나리 왕을 시조로 하는 이와쿠라노미야와 요시무네 친왕을 시조로 하는 요츠츠지노미야 사이에 소령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했다. 이 다툼은 점차 확대되어, 이와쿠라노미야지묘인통이, 요츠츠지노미야를 다이카쿠지통이 각각 지원하면서 조정과 가마쿠라 막부까지 끌어들이는 정치 문제로 비화되었다.[5]

한편, 다른 시각에서는 타다나리 왕과 이와쿠라노미야 세력이 시조 천황 사망 후의 정변(닌지 3년, 1242년)부터 궁 소동, 호지 합전에 이르기까지 고사가 천황 및 그를 지지하는 가마쿠라 막부·호조 도쿠소 가문과 대립 관계에 있었던 것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즉, 타다나리 왕 측은 장래의 황위 계승이나 황실령 계승에 필수적인 친왕 선하를 받기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소령의 유지 및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요시무네 친왕에게 영지가 상속되었다는 견해도 있다.[6]

참조

[1] 서적 天皇皇族歴史伝説大事典 勉誠出版 2008
[2] 서적 天皇皇族歴史伝説大事典 勉誠出版 2008
[3] 서적 天皇皇族歴史伝説大事典 勉誠出版 2008
[4] 간행물 卿二位と尼二位 1985
[5] 논문 七条院領の伝領と四辻親王家-中世王家領伝領の一形態- 2001
[6] 서적 中世王家の政治と構造 同成社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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